(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올해 첫 해외신탁 신고 의무신고제가 시행되면서 자산가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국내 전문가들은 해외신탁제도 투명성 강화 및 신탁제도 개선이 오히려 K-신탁 붐을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조언한다.
당국의 고강도 검증이 예측되는 가운데, 신탁 관련 법제는 모호하고, 다소 규제에만 집중하고 있어 해외신탁으로 빠져나가는 실질적 유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은퇴세대가 점차 늘어날 전망이라서 돈은 쌓이고, 자산관리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산관리 체계가 선진화되려면, 이러한 유인의 해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투명성 강화와 혜택 부여를 통해 숨은 재산을 투명하게 끌어 올리고, 낡은 신탁제도를 고쳐 국내신탁에 돈이 머물 수 있게 하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한국을 선진 자신관리국가로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고도 강조한다.
김명준 태평양 고문은 7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해외신탁 신고제도 시행 원년-보완 입법 방향과 과제 정책 세미나’에서 현재 한국 신탁제도를 진단하고, 해외 신탁제도를 비교한 후 K-가족오피스 붐을 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 해외로 떠나는 돈, 국세청의 거센 반격
해외신탁 투명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2023년 말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해 해외신탁 보유자(거주자 및 법인)는 올해 6월 말까지 해외신탁명세서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위탁자‧수탁자‧수익자 인적사항 및 해외신탁 자산 내역 및 운용, 계약 조건 및 실질 소유자(명의상 소유자 아닌 실질 재산 귀속 대상자 및 관계)를 각각 신고해야 한다.
국내 과세당국 입장에서보면, 해외신탁은 매우 까다로운 존재다. 외국에 있어 위탁자(돈의 출처)‧수탁자(중간에 자산을 맡아서 관리하는 자들, 주로 신탁업자 및 페이퍼컴퍼니)‧수익자(최종적으로 돈 받는 사람) 존재 및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해외신탁을 악용하는 경우 조세회피처‧페이퍼컴퍼니 세트(명목상 소유자=수탁자, 신탁회사 등)를 여러 개 겹치기식으로 끼워 넣어 실질적 귀속대상(수익자)을 숨긴다.
국경을 넘나드는 역외탈세에 골치를 앓았고, 각국 과세당국들은 전격적인 공동 대응에 나섰다. 한미 금융정보 정기교환(FATCA), 다국가 간 금융계좌 자동정보교환(CRS), 2026년을 기점으로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의 단기적 확대 등이 그 수단이다.
한국의 해외신탁 의무신고제도는 여기에 더해 역외과세 패러다임을 180도 바꾸었다.
국세청은 과거에는 신탁을 단순한 통로, 도구로만 보아 운용하는 자들(신탁회사 및 페이퍼컴퍼니)과 실제 이익을 받는자(수익자) 관계를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현재는 신탁에 돈을 대는 자들, 위탁자를 타깃으로 맞추고 있다.
신탁은 돈 대는 사람 없이 성립조차 될 수 없고, 위탁자(물주)는 통상 신탁의 실질적 통제권한(신탁 설정·유지 권한)을 가진다. 위탁자가 결정적 통제권이 있어야 수익자까지 돈이 간다는 목적이 보장된다.
따라서 위탁자에게 해외신탁 신고의무를 부여하면, 신탁의 실체가 수면 위로 올라가게 되고,국세청은 수탁자와 수익자를 찾기 위해 조세회피처‧페이퍼컴퍼니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할 수고가 월등히 줄어들게 된다.
위탁자 입장에선 해야 할 일이 부쩍 늘어나게 되는데, 역외거래는 부과제척기간이 최장 15년, 원천자금 소명기간도 10년에 달한다. 이에 따라 세무조사 리스크도 급증했는데, 미제출‧허위 신고 시 과태료(최대 1억원), 미소명 금액 20% 추가 과태료, 여기에 조세범처벌법 적용의 여지까지 있다.
이 때문에 법조~세무시장에선 지난해 말~연초를 중심으로 해외신탁 의무신고 제도가 시행되면, 빠져 나갈 수 없다고 고객들에게 조언해왔다. 국세청 역시 올해 1월 23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경고한 것처럼 ‘이제는 숨길 데가 없는 셈’이다.
◇ 빈틈없는 교차검증 대응체계
국세청은 해외신탁 신고가 마무리되면, 하반기부터 재무제표, 신고자료, 외환 등 거의 즉각적인 각종 정보 대조 및 검증에 착수하게 된다. 해외신탁 보유자들도 교차검증은 필수이다.
정부가 80% 소명 세이프룰을 통해 20% 정도 여유를 뒀긴 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단, 1%라도 자금출처 소명을 미달하면 미달 분의 20%를 과태료로 부과받게 된다.
가장 첫 번째 고민은 소명 수준이다. 신고 의무자가 소명한 게 전부 과세당국에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소명하는 게 좋다.
신고 의무자가 85% 정도를 소명했고, 국세청 검증과정에서 3% 정도 미소명으로 판단됐다면, 2% 정도 추가 소명한 것이 인정되어 과태료를 물지 않을 수 있다. 너무 80%로 맞춰서 했다가 조금이라도 미소명 분이 생기면, 과태료 외에도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증빙 준비는 검증 리스크를 좌지우지한다. 10년 치 소득금액증명원, 은행 차입 증빙, 상속‧증여 신고내역, 외국환 송금 기록 등 다양한 증빙을 준비해야 한다.
물주(위탁자)에게 해지권, 수익자 변경권이 있는지, 최종 수익자가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지도 따져야 한다.
해외신탁 의무 대상 기준인 거주자 판단도 검증대상에 들어가는데, 형식적인 183일 거주요건 충족은 이젠 옛말이다. 현재는 비거주자로 위장하지 못하도록 거주자성(체류일수, 주거기반) 등을 집중 검토한다.
회계 장부상 실질 지배력이 있다는 신탁 관련 해외 특수목적회사를 신고하지 않는다면,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 세무조사를 피하려면, 국세청 검증을 받듯 회계 장부와 신고 자료를 대조해야 하며, 전 세계 해외법인이 보유한 모든 신탁과 재단 등을 전수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필요도 있다. 해외신탁 등에 자금을 보낼 때 세무적 사전 승인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외신탁 송금 시 의무적으로 정상적인 대차계정 증빙 및 투자결의서 보관 절차를 만드는 것도 소명 부담을 줄이는 길이 된다.
김명준 고문은 “해외신탁은 완벽한 안전지대가 될 수 없으며, 투명한 글로벌 조세 질서가 구축되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역외 지배구조를 재평가하고, 80% 자금출처 입증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과세된 근로‧사업소득 증명원, 대출금 증빙, 적법한 증여‧상속 기록, 외국환 신고내역 등을 사전에 보관(Archiving)하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한, 세무, 회계, 외환 데이터 간의 불일치는 즉각적인 세무조사 타겟이 되며, 특히 연결재무제표 상 지배력 있는 회사로 공시했으면서도 국세청에는 해외신탁 신고를 누락하는 경우 즉각적인 회계 부정 혐의 및 세무조사 타겟이 되기에 재무팀과 세무팀의 교차검증 역시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 신탁 투명성, 신탁 활성화의 기회
해외신탁 투명성 강화는 자산관리 측면에서 꼭 위기라고 볼 필요는 없다.
당국에서 검증을 강화하다 보면, 자연 현행 법체제의 부족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현재 신탁제도는 거의 2011년에 개정된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금전‧부동산 신탁에 쏠려 있다. 효과적인 자산관리 수단으로 가기까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김명준 고문은 투명성과 한국 신탁 활성화를 통해 K-가족오피스와 자본유턴에 이르는 획기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 기회라고 강조했다.
해외신탁 의무신고‧국제 정보교환을 통해 역외 자산 투명화가 이뤄진 만큼, 이를 위해선 합법적인 신고를 마친 해외신탁에는 세무조사 면제 등 확실한 혜택과 보장을 주어 ‘한 만큼 보답받는 시스템’ 및 안심하고 신탁에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싱가포르‧일본의 신탁 활성화 대책을 참고해 한국 신탁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도 고려사항이다. 싱가포르는 가족 전용 신탁사(PTC, Privatetrust company) 면허 면제와 위탁자 경영 참여를 보장하면, 가업승계 수요를 국내 신탁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일본은 여러 자산을 포괄수탁하게 허용했다. 고령자들에게 신탁은 노후보장과 사후자산 정리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효과적 창구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굳이 해외신탁을 찾을 필요가 없도록 신탁제도를 개선해 자금관리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하려면, 제도적 실효성 및 투명성 제고 및 납세자 수용성 및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일단 한국 신탁법은 규칙 중심의 대륙법 체계인데, 신고 받는 해외신탁에는 사례 중심의 유연하고 다양한 영미 쪽 신탁이 다수 신고될 전망이다. 재량신탁은 수익자 권리가 유동적인데, 현행 법제에선 특정 시점에 지배권 보유자가 누군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현재 해외신탁 의무신고 대상은 한국 신탁법과 유사한 외국신탁으로 두고 있어, 해석에서 다수의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김명준 고문은 이를 해소하려면, 법령에 신탁 지배자 범위에 보호자까지 넣어 실질적 지배자의 정의를 명확히 히고, 실질적 지배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법에 명시하는 한편, 위탁자가 사망하는 등 신고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 수익자 신고의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과세당국 역시 좀 더 촘촘한 투명성 수단을 갖출 필요가 있다. 다국가간 정보교환, 각종 신고제도를 두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어서 시기성이 다소 부족하다. 고도의 검증이 필요한 반면 투입 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과태료의 경우 상한을 1억원으로 두고 고액 자산가에게 과연 실효적인 제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밖에 형평성 문제 등도 제기된다. 신탁자산에 따라 중복신고 의무가 있고, 신탁신고에는 관련 금융계좌 신고면제는 있지만, 금융계좌 신고에는 신탁 신고 면제가 없다.
김명준 고문은 고액 해외신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금융계좌 신고와 마찬가지로 과태료 상한을 10억원 수준으로 올리고, 위반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할 경우 형사처벌 및 명단 공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영국식 신탁등록부 제도를 신설해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구축할 것을 조언했다.
당국은 효율과 효과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면, AI기반 해외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제조세 및 분석조직 확대, AI‧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하고, 국제공조를 부동산과 비상장주식 소유권 정도까지로 확대하는 한편, 조세회피처에 대해 조세정보교환협정을 확대하는 것도 방안이다.
국내 신탁 활성화를 위한 ‘당근’으로는 주요 국가 신탁 유형‧사례별 체크리스트와 예시를 제공하고, 시행초기에는 제재보다 수정신고 유도 및 안내에 집중, 생애주기에 따른 신탁(유언대용신탁) 등에 해외신탁 신고 미리채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김명준 고문은 “신탁 규제를 장벽이 아닌 신뢰의 원천으로 만들면, 투명성이 자본을 이끄는 대한민국 자산관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해외신탁 개념 및 신고범위 재정비하고, 그만큼 신고편의와 혜택을 주어 납세자수용성 및 법적 안정성 확보하면, 현행 법제에서 모호한 부분, 세원관리 인프라의 한계, 제도간 정합성 등을 극복할 수 있다”며 “역외자산의 투명화, 조세중립성 보장, 국내 신탁제도의 현대화, K-가족오피스 육성이 선순환하는 자본 유턴 구조가 정립되면, 한국이 아시아 1위의 투명 자산관리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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