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질타를 계기로 20년 넘게 유지돼 온 카드대란 장기추심 구조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2003년 카드사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설립됐던 민간 유동화회사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상록수)’가 보유 채권을 정리하기로 하면서 약 11만명의 장기연체채무자에 대한 추심도 중단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신진창 사무처장 주재로 상록수 사원사들을 긴급 소집해 장기연체채권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기관들은 상록수가 보유 중인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새도약기금으로 넘기는 방향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관 대상은 금융회사 보유분 가운데 7년 이상 연체됐고 채권액이 5000만원 이하인 장기연체채권이다. 상록수 측은 새도약기금 편입 대상 외 남은 채권에 대해서도 캠코 매각을 추진해 추가 추심을 멈추기로 했다.
상록수는 카드대란 당시 카드사 부실채권을 한데 모아 정리하기 위해 금융권 공동 출자로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다. 하지만 설립 이후에도 채권 회수와 추심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금융취약계층의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금융당국은 현재 상록수 관련 채무자를 약 11만명 규모로 파악하고 있다. 새도약기금 편입 대상 채권부터 순차적으로 추심 중단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새도약기금으로 채권이 넘어가면 해당 차주에 대한 추심은 즉시 중단된다. 이후 소득·재산 등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채무조정이나 소각 절차가 진행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별도 심사 없이 채권을 정리하고,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1년 안에 소각 절차를 밟는다.
이번 조치는 이 대통령의 공개 발언 직후 속도를 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상록수 관련 보도를 공유하며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요하면 입법해서라도 해결 방안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상록수 최대 주주인 신한카드는 보유 지분에 해당하는 채권 전량을 새도약기금으로 넘기기로 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다른 참여 금융사들도 잇따라 채권 정리 방침을 내놨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카드 등은 상록수 보유 채권을 새도약기금으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제적 어려움 속에 놓인 차주들의 상황을 더 일찍 헤아리지 못한 점을 깊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채권 전액 매각을 결정했으며 앞으로 포용금융의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도 “이번 결정을 내리며 그동안 장기 연체 채무자들이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도 취약계층들이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례를 계기로 유동화회사 형태로 장기연체채권을 보유한 업체 전반에 대한 실태 점검에도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장기 연체채권을 대규모로 보유한 대부업체들의 새도약기금 참여 확대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장기연체자를 양산하는 금융권의 연체채권 관리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2월 발표한 연체채권 관리절차 개선방안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완·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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