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위원회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제재안을 금융감독원에 돌려보내면서 은행권 과징금 수위가 다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감원이 제재심에서 의결한 1조4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안이 금융위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1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융위는 정례회의를 통해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관련 은행 및 증권사 검사 결과 조치안을 의논한 뒤 금감원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과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및 증권사 검사 결과 조치안의 일부 사실관계와 적용 법령·법리 등을 보완해줄 것을 금감원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일정 지연을 넘어 금융위가 금감원 제재안의 법리적 완성도와 과징금 산정 방식에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위가 대형 제재 사안에서 금감원 안에 제동을 건 것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기준 위반 관련 재감리 요구 이후 8년 만이다.
◇ 4조원에서 1.4조원까지 낮췄지만
홍콩 ELS 제재의 핵심 쟁점은 과징금 규모다. 당초 금감원이 검토한 과징금은 약 4조원 수준이었다. 이후 은행권에 사전 통보되는 과정에서 약 2조원대로 낮아졌고, 지난 2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 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대해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통상 금감원 제재심을 통과한 안건은 금융위 안건조위원회 검토를 거쳐 정례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금융위로 넘어간 뒤 석 달 가까이 결론을 내지 못했다. 4월 마지막 정례회의에서도 안건 상정이 불발됐고, 결국 5월 정례회의에서 ‘보안 요구’라는 형태로 다시 금감원으로 돌아갔다.
금융위가 문제 삼은 지점은 일부 사실관계와 법령 적용, 양정 기준 등으로 전해진다. 은행의 위험등급 분류 및 적용 문제, 증권사의 설명의무 위반 사례, 서로 다른 일반 행위에 유사한 과징금 기준이 적용된 부분 등이 재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 법리 부담 커진 금융위…행정소송 패소 경험 변수
금융위가 재검토를 요구한 배경에는 향후 행정소송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홍콩 ELS 사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첫 대형 불완전판매 제재 사례다. 과징금이 1조원이 넘는 만큼 제재 대상 금융회사들이 불복 소송에 나설 수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일부 제재 취소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재 근거가 충분히 정교하지 않거나 양정 기준에 허점이 드러날 경우, 홍콩 ELS 제재 역시 법정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위 내부에서 커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과징금 산정 기준 자체도 쟁점으로 보고 있다. 불완전판매 관련 과징금긍ㄹ 실질 수익이 아닌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적정한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가중 및 감경 규정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 등이 향후 논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 자율배상 반영 어디까지…‘솜방망이’ 비판도 부담
은행권은 이미 상당수 투자자에 대해 자율배상을 진행한 만큼 이를 제재 수위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 금소법상 피해 구제 노력 등을 고려하면 과징금은 최대 75%까지 감경될 수 있다.
금융위도 이 지점을 외면하기 어렵다. 대규모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은행의 자본 여력이 줄고, 기업금융이나 취약계층 지원 등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포용적 금융 확대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과징금을 지나치게 낮출 경우 금융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콩 ELS 사태는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가르는 대표 사례다. 첫 조 단위 금소법 제재가 큰 폭으로 낮아질 경우 ‘사후 배상만 하면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 수천억 감경?…금감원 재심 여부 주목
금감원은 금융위의 보완 요구에 따라 기존 검사 결과를 토대로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다. 추가 현장검사보다는 과징금 산정 논리와 적용 법령을 보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다만 새로운 조치사항이 생기면 제재심을 다시 열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반려를 사실상 추가 감경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감원 단계에서 이미 4조원대에서 1조4000억원까지 낮아졌지만, 금융위가 법리 보완을 요구한 이상 최종 과징금은 수천억원대로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감경 폭이 커질수록 금융소비자 보호 원칙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금융위는 법적 안정성, 은행권 자본 여력, 피해 구제 노력, 제재 실효성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홍콩 ELS 제재는 이제 과징금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금소법 시행 이후 대형 불완전판매 사건을 당국이 어떤 기준으로 처분할지 가르는 시험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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