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회사가 세법상 손실로 인정받은 개인 연체채권에 대해 소멸시효를 반복 연장하며 회수 가능성을 열어두던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앞으로 금융회사가 대손인정을 받으려면 상각한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의 최초 소멸시효가 도래했을 때 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세금상으로는 손실 처리해 법인세 부담을 줄이면서도, 채권 자체는 계속 살려 추심 여지를 남겨두는 구조를 손보겠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기관채권대손인정업무세칙’ 개정안을 사전예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지난 2월 발표한 ‘연체자 보호와 신속한 재기 지원을 위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방안’의 후속 조치다. 금융위는 오는 7월 중 개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9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금융회사가 연체채권을 추정손실로 분류한 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대손인정을 받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이라도 해당 채권을 세법상 손실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손실 처리해 법인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치다.
문제는 대손인정을 받은 뒤에도 소멸시효 연장을 통해 채권 회수와 추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이미 세제 혜택을 받은 채권임에도 장기간 시효를 살려두는 방식으로 채무자에게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번 개정안은 대손인정의 조건을 바꾸는 방식으로 이 같은 관행을 차단한다. 금융회사가 상각한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에 대해 대손인정을 받으려면 최초 소멸시효 도래 시점에 시효를 완성해야 한다. 사실상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채권을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금융회사의 반복적·기계적 시효 연장 관행을 줄이고 장기 연체채권 정리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장기 연체채권은 회수 가능성이 낮아졌음에도 시효 연장과 채권 매각 등을 거치며 채무자에게 장기간 부담으로 남는 경우가 있었다.
적용 대상은 우선 소액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으로 제한된다. 은행·보험사는 5000만원 이하, 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회사 등은 3000만원 이하 채권이 대상이다. 금융위는 해당 기준으로도 계좌 수 기준 대상 업권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의 90% 이상이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향후 제도 운영 경과를 점검해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모든 채권에 대해 일률적으로 시효 완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의 은닉재산이 발견된 경우, 파산·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이행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소멸시효 연장이 허용된다.
채권 매각 과정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금융회사가 시효 완성을 조건으로 대손인정을 받은 채권을 매각할 경우 매매계약서에 소멸시효 완성 예정일과 시효 완성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원채권 금융회사는 채권을 넘겨받은 양수인이 해당 의무를 이행했는지도 점검하고 보고해야 한다.
이는 대손인정을 받은 채권이 매각 이후에도 다시 추심 대상으로 남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채권이 여러 차례 재매각되는 과정에서 채무자 보호 조건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당초 시효 완성을 전제로 부여한 세제 혜택의 취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별 관리 실적도 공개된다. 금융위는 금융회사별 채무조정 실적, 채권 매각 현황, 소멸시효 완성 실적 등을 공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업계 협의를 거쳐 보고 양식과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올해 상반기 실적부터 공시할 계획이다.
채권 재매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채무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후속 조치도 추진된다. 금융위는 오는 7월 ‘채권추심 및 대출채권 매각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불법추심 점검 의무와 재매각 시 채무자 보호조건 승계 의무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업권별 ‘소멸시효 관리 모범규준’도 개정된다. 앞으로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완성하고, 예외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연장하도록 관리 체계를 정비한다. 금융회사가 시효 완성을 결정한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이를 통지하도록 하고, 시효를 연장하더라도 3년마다 재심사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세제 혜택은 받고 채권 추심은 계속하는 기존 관행을 개선해 장기 연체자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고 채권 관리의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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