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수입자가 중국산 건조고추를 들여오며 품질이 낮은 이른바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이유로 유사물품 가격의 절반 안팎으로 신고하자 세관이 제동을 걸었다. 수입품의 실제 상태와 거래 관행에 비춰 볼 때 신고가격이 객관적인 상거래 가격인지 검증해야 한다는 취지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한 농산물 수입업체는 2022년 11월 중국 수출자로부터 건조고추 20톤을 수입했다. 당초 이 업체는 물품을 관세·통계통합품목분류표(HSK) 제0904.22-0000호로 신고했다. 하지만 세관 분석 결과 ‘꼭지와 씨를 제거하고 불규칙하게 절단된 건조고추’로서 ‘부수지도 잘게 부수지도 않은 것’에 해당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에 따라 업체는 HSK 제0904.21-0000호로 세번을 정정해 신고했다.
문제는 가격에서 불거졌다. 건조고추는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270%의 높은 관세율과 kg당 6,210원 중 높은 세액이 적용되는 민감 품목이다. 그런데 수입자가 적어낸 단가는 지나치게 낮았다. 세관이 선적일 전후 30일 이내에 들어온 유사 건조고추들과 비교해 보니, 쟁점물품의 신고가격은 유사물품 가중평균가격의 45.7%, 최저가격의 55.2% 수준에 불과했다.
평택세관은 이 신고가격의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이를 부인했다. 대신 관세법 제32조에 따라 유사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다시 매겨 관세를 부과했다. 수입자는 이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했다.
관세는 원칙적으로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지며, 그 출발점은 수입자가 물품을 사기 위해 실제로 지급했거나 지급해야 할 가격이다. 가격이 낮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신고가격을 곧바로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격이 유사물품 가격과 현저히 다르고, 수입자가 그 이유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세관은 신고가격을 부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수입자가 주장한 대로 정말 저렴하게 살 만한 하품이었는지, 거래 과정에 투명성이 확보됐는지, 세관이 선정한 유사물품이 비교 기준으로 타당한지 여부였다. 조세심판원의 결정이 짚은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① 증빙 없는 ‘못난이 고추’ 주장…현품은 1급 수준
수입자는 자신들이 들여온 쟁점물품이 1급 10%, 2급 30%, 3급 60% 비율로 뒤섞인 혼합물이라고 주장했다. 크기와 색이 고르고 단단한 1급 고추가 아니라, 모양이 기형적이고 색이 바랬으며 표면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고추들이 섞여 있는 하품이라 가격이 쌀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수입자가 주장한 등급별 혼합 비율이 계약서와 송장, 그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세관이 확보한 현품 시료 역시 혼합 등급이 아닌 1급 수준으로 확인됐다. 결국 심판원은 “하품이라 쌌다”는 수입자의 해명이 실제 물품 상태와 객관적 증빙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② 계약 수량 불일치와 불투명한 가격 결정 과정
수입자는 관세평가의 출발점이 실제 지급가격인 만큼, 외화로 전액 송금한 금액을 과세가격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세법이 따지는 가격은 단순한 은행 이체 내역이 아니다. 가격이 합리적인 상거래 조건을 거쳐 투명하게 결정됐는지가 핵심이다.
수입자는 24톤(MT)을 계약하고 돈을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제출된 판매계약서에는 20톤(MT)으로 적혀 있었다. 만약 돈을 보내기 전 계약 수량이 줄어든 것이라면 차액을 수출자로부터 돌려받았다는 증빙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서류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수출자가 장기간 국내 다른 업체들에게 판 건조고추 가격은 모두 톤당 2,522~2,526달러로 일정했다. 유독 이 업체 물품만 가격이 턱없이 낮은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심판원의 판단이다.
③ 합리적인 유사물품 선정…건조 방식·길이 차이 주장 배척
수입자는 세관이 애초에 엉뚱한 물품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고 항변했다. 자신들의 고추는 열풍으로 말린 화건(火乾) 방식인데 세관은 햇볕에 말린 양건(陽乾) 방식의 물품을 골랐고, 길이와 등급, 혼합 비율, 수입 수량의 차이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관세법상 유사물품은 모든 면에서 완벽히 똑같은 물품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대체 사용이 가능할 만큼 비슷한 특성을 갖췄다면 유사물품으로 인정된다. 심판원은 세관이 선적일 전후 30일 이내에 수입된 물품 중 품명, 생산지(중국 산동성), 운송 형태(선박 컨테이너) 등이 일치하는 대상을 합리적으로 비교 기준으로 삼았다고 판단했다.
건조 방식이나 길이 차이도 결정적 변수로 보지 않았다. 건조고추 가격은 단편적인 가공 방식만이 아니라 수분, 길이, 광택, 등급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결정되며, 쟁점물품에 수량 차이로 인한 가격할인이 있었다고 볼 자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관은 가격에 영향을 미칠 변동 요소가 없는 기간 내의 유사물품 중 ‘가장 낮은 가격’을 골라 과세 기준으로 삼아 수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심판원은 신고가격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충분하고, 이를 해명할 객관적 소명은 부실하다고 판단했다. 심판원은 세관이 쟁점물품의 신고가격을 부인하고 유사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관세를 부과한 처분에 잘못이 없다고 보아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참고 심판례: 평택세관-조심-2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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