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국내 증시가 하루 만에 급랭했다. 전날 사상 최고가를 다시 썼던 코스피는 23일 장중 8% 넘게 밀리며 유가증권시장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지수 상승을 이끌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급락장을 피하지 못했다. 반도체 대장주에 집중됐던 매수세가 일제히 약해지면서 지수 전반의 변동성을 키웠다.
하지만 증권가의 시각은 주가 흐름과 달랐다. 주요 리포트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낮추기보다 오히려 상향했다. 주가 급락을 곧바로 업황 훼손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단기 과열 부담과 차익실현 매물, 레버리지 상품 청산 압력이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지만,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라는 큰 흐름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특히 증권가가 주목한 지점은 이번 주가 급락의 성격이다. 주가 하락이 반도체 업황 둔화의 신호인지, 단기 과열 이후 나타난 가격 조정인지에 따라 향후 전망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시장은 그동안 반도체 대장주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부담을 가격에 반영한 반면, 애널리스트들은 아직 실적 추정치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 반도체 대장주도 못 피한 급락장
한국거래소는 23일 오후 2시 33분 44초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발동 당시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739.24포인트, 8.11% 하락한 8375.31을 기록했다. 이미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는 이날 오전 중 이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가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제한하는 조치라면, 서킷브레이커는 시장 전체 거래를 멈추는 더 강한 안정 장치다.
이날 코스피 하락의 중심에는 반도체 대장주가 있었다. 오후 2시42분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8.77% 내린 32만2500원, SK하이닉스는 11.55% 떨어진 258만2000원에 거래됐다. 전날까지 코스피 상승을 밀어 올렸던 시가총액 1·2위 종목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지수 하락 폭도 커졌다.
충격은 단일 종목에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락률을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도 직격탄을 맞았다. ‘KODEX 삼성전자단일종목레버리지’와 ‘TIGER 삼성전자단일종목레버리지’는 17%대 하락률을 보였고, SK하이닉스 기초자산 상품은 24% 안팎까지 밀렸다. 본주 하락 폭이 레버리지 상품을 통해 더 크게 증폭된 것이다.
해외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거래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추종 무기한 선물은 국내 현물보다 더 큰 낙폭을 나타냈다. 24시간 거래되는 데다 레버리지 배율도 큰 상품인 만큼 국내 증시의 급락 충격은 해외 파생상품 가격에도 빠르게 옮겨붙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을 곧바로 반도체 업황 둔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반도체주 약세로 투자심리가 흔들린 가운데 국내 시장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이어졌다. 여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상품의 변동성과 해외 거래소의 주가 추종 무기한 선물 가격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낙폭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 반도체 랠리, 마이크론 실적이 첫 관문
주가는 크게 흔들렸지만 증권가의 실적 전망은 아직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리포트는 이번 급락을 업황 둔화 신호라기보다 실적 시즌을 앞두고 나타난 단기 가격 조정으로 해석했다.
첫 관문은 미국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가 될 전망이다. 오는 24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을 시작으로 7월 초 삼성전자, 7월 중순 이후 SK하이닉스와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가격 흐름과 장기공급계약(LTA) 조건, HBM 수요와 공급 여력, 주주환원 가능성 등이 차례로 시장의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다올투자증권은 최근 반도체 리포트 브리핑에서 실적 시즌을 앞두고 다시 바텀업 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지뿐 아니라 고객사와의 장기공급계약(LTA) 조건, 향후 가격 방향성 등이 실적 추정치의 추가 상향 여부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특히 LTA 조건에 따라 올해 3분기와 내년 상반기 실적 눈높이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메모리 수급이 빠듯하게 유지되고 있는 점도 증권가의 긍정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업계에서는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이 각각 36조3000억원, 26조3000억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공급 부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경우 실적 추정치가 한 차례 더 올라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주주환원 확대 가능성도 주가를 다시 움직일 재료로 거론된다. 메모리 가격 상승과 HBM 수익성 개선으로 현금창출력이 커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할 여지도 커질 수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58만5000원, 420만원으로 상향했다. 주가 급락에도 목표가를 높인 것은 이번 하락을 반도체 업황 둔화 신호로 보기보다 실적 시즌을 앞두고 나타난 단기 변동성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iM증권 역시 삼성전자의 단기 조정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업황과 실적 호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며 목표가를 48만원으로 올렸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과거와 같은 극심한 이익 변동성을 보이는 회사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목표주가를 430만원으로 상향했다.
◇ 목표가보다 실적 확인이 관건
다만 증권가의 긍정적인 전망이 곧바로 주가 반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에는 이미 메모리 가격 상승과 HBM 기대가 적지 않게 반영돼 있다. 실적이 좋아도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치거나, 앞으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근거가 약하면 주가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향후 ‘삼전닉스’의 방향은 증권가 목표주가보다 앞으로 나올 실적 발표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이 이익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HBM4 성과가 기존 할인 요인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SK하이닉스는 HBM 강점이 계속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높아진 시장 기대를 실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날 서킷브레이커는 반도체 랠리가 끝났다는 신호라기보다, 반도체 대장주에 집중된 매수세가 얼마나 빠르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업황 전망은 아직 꺾이지 않았지만 주가에는 이미 상당한 기대가 반영돼 있다. 이제 시장은 목표주가 상향보다 실제 실적의 질, 메모리 가격 협상력, HBM 공급 능력을 더 엄격하게 확인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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