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감독원이 상장사 회계 심사·감리 체계를 손질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현재 상장사 평균 심사·감리 주기가 약 20년에 달해 회계부정을 제때 걸러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고의적이고 중대한 회계부정이 드러난 기업에 대해서는 감리 결과를 상장폐지 절차와 빠르게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 테이블에 올랐다.
금감원은 24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한국회계학회, 국회, 금융위원회, 기업·회계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계 심사·감리제도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의 핵심은 회계감독의 무게중심을 사후 적발에서 예방 중심으로 옮기는 데 있다. 금감원은 2017년 회계개혁 이후 감사품질 개선 등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최근에도 회계부정 사건이 반복되면서 시장 신뢰를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2017년 회계개혁 이후 감사품질 등에 의미 있는 발전이 있었으나 반복되는 회계부정 사건이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구조적 위협이 되고 있다”며 “회계부정을 조기에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적 감독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발표를 맡은 박경진 명지대 교수와 오명전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회계 심사·감리 주기가 해외와 비교해 길어 적발의 적시성과 억제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현재 평균 약 20년 수준인 상장사 감리 주기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10년, 코스닥 상장사는 5년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감리 주기 단축을 위해서는 조직과 권한 보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연구진은 현재 2개인 회계감리 전담 부서를 4개로 늘리고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봤다. 또 회계 심사 단계에서는 현행 임의조사 방식을 유지하되, 감리 단계에서는 강제 조사수단을 일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의적·중대 회계부정 기업에 대한 퇴출 장치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연구진은 회계부정이 확인된 뒤에도 시장 퇴출까지 시간이 걸릴 경우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감리 결과가 상장적격성 심사와 상장폐지 절차로 신속히 이어지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근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한국거래소의 퇴출 재량 확대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분식회계 등 사회적 파장이 큰 회계부정이 확인된 경우 거래소가 보다 빠르게 상장폐지 판단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국회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심사·감리 주기를 단축하면 회계부정의 신속한 적발·조치가 가능해져 투자자 신뢰와 기업의 예측 가능한 성장을 강화할 수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입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영 한국회계학회장은 “회계정보의 신뢰성은 자본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며 “회계오류를 적시에 발견하고 시정하기 위해서는 회계 심사·감리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한편, 기업과 감사인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균형 잡힌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감리 주기 단축이 기업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상장사 전반을 짧은 주기로 들여다보려면 감독 인력 확충이 전제돼야 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자료 제출과 대응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석자들은 단계적 시행과 위험도 기반의 차등 감리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감리 대상 선별 방안도 거론됐다. 모든 상장사를 같은 강도로 점검하기보다 회계 위험도가 높은 기업을 먼저 추려 심사 주기를 달리 적용하면 감독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이번 세미나에서 나온 연구 결과와 업계 의견을 바탕으로 금융위원회와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회계 심사·감리 주기 단축 로드맵을 마련하고, 인력 확충과 감리수단 고도화, 관련 법령 개정 과제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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