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금감원장 퇴임 후 처음 직접 수임한 중앙그룹 채권 사건에서 발행과 유통에 참여한 금융회사들의 검증 책임을 쟁점으로 꺼냈다. 발행사의 재무 및 상환 위험에 대한 주관사의 심사와 판매 단계의 정보 제공이 적정했는지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전 원장은 13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중앙그룹 채권투자 피해자 기자간담회에서 발행사와 주관사, 판매사, 운용사, 신용평가사에 이르는 각 참여자가 위험을 제대로 검증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신평사가 어떤 근거로 신용등급을 매겼는지, 주관사는 무엇을 근거로 발행사의 상환 능력을 판단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주관사의 검증 책임을 둘러싼 쟁점은 올해 2월 JTBC가 발행한 공모 회사채로 거슬러 올라간다. JTBC는 2월 13일 930억원 규모의 제42회 무보증사채를 발행했다. 만기는 2028년 2월 11일, 표면금리는 연 8.10%였다. 신용등급은 투자적격 등급의 하단에 해당하는 BBB급이었고 등급전망에는 ‘부정적’ 평가가 붙었다. 신한투자증권이 대표주관사를 맡았고 한양증권도 인수단에 참여했다.
발행 이후 실제 유동성 위기가 드러나기까지는 약 넉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JTBC는 6월 12일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조달한 유동화 차입금 206억원을 만기에 갚지 못했다. JTBC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뒤 중앙그룹 계열사들의 회생 신청이 이어졌다. 중앙홀딩스와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가 6월 14일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JTBC도 다음 날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은 JTBC에 대해서는 채권자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하도록 회생절차 개시 판단을 7월 30일까지 보류했다. 이외 중앙홀딩스와 콘텐트리중앙, 중앙피앤아이, 메가박스중앙, 콘텐트리중앙의 최대주주인 중앙피앤아이에는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 ‘상환 무난’ 판단, 무엇을 근거로 했나
이 전 원장 측과 법무법인 창천 등이 참여한 중앙그룹 채권투자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이하 공동변호인단)은 회사채 발행 당시 주관사가 JTBC의 재무 위험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올해 2월 회사채 발행 당시 투자설명서에는 2025년 3분기 연결 기준 자본총계가 278억원에 그치고, 부채비율은 1741.7%에 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공개된 2025년 말 연결재무제표상 자본총계는 190억원으로 자본금 5751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공동변호인단은 자본총계 190억원에서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된 신종자본증권 1544억원을 단순 차감하면 마이너스 1354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식 재무제표상의 자본총계를 다시 산정한 수치가 아니라, 신종자본증권에 따른 이자 지급과 콜옵션 관련 부담을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투자자 측 분석이다.
반면 신한투자증권은 공모 회사채 발행과 매출채권 회수,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 등을 근거로 단기 유동성 위험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인수인의 의견에는 제42회 무보증사채의 원리금 상환이 무난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금감원이 대표주관사의 기업실사 적정성을 검사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상환 재원과 차환 위험을 어느 수준까지 확인했는지가 주요 확인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어떤 방식으로 기업실사를 진행했는지도 향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신한투자증권은 2021년 이후 JTBC 공모채 발행을 여덟 차례 주관했지만 직접 방문한 실사는 두 차례였고, 올해 2월 발행 때는 유선회의로 대체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 방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실사 의무 위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제출받은 자료의 범위와 추가 질의 내용, 내부 심사 과정 등을 종합해 절차의 적정성을 판단해야 한다.
이와 관련 신한투자증권은 관련 법령과 내부 절차에 따라 필요한 실사를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향후 책임 판단에서는 주관사가 당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무 위험을 충분히 파악했는지, 이를 토대로 상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했는지가 함께 고려될 전망이다. 발행 이후 회사 상황이 악화됐다는 결과만으로 과거의 심사가 곧바로 부실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주관사가 상환 가능성을 판단할 때 고려한 계열 지원과 자금조달 구조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이 전 원장이 계열사 간 신종자본증권 거래를 별도 쟁점으로 언급한 이유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이자 지급 부담이 있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조달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공동변호인단은 이러한 부담이 회사채 발행 당시 상환 능력 평가와 신용등급 산정에 충분히 반영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취득 경로 따라 달라지는 손해배상 책임
이번 분쟁은 채권을 취득한 방식이 투자자마다 다르다는 점에서도 복잡하다.
공동변호인단이 금감원에 제출한 1차 의견서에는 250명, 약 325억2000만원의 투자 내역이 포함됐다. 장내에서 회사채를 매수한 사람이 211명으로 가장 많았고, 투자일임사를 통해 편입한 투자자는 29명, 전자단기사채를 산 투자자는 10명이었다. 공동변호인단은 피해자 측 자체 집계 결과 중앙그룹 관련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계좌가 450여개, 투자금액은 약 760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주관사가 공모 물량을 기관에 넘겼더라도 이후 투자일임사나 장내 거래를 거쳐 개인 계좌에 편입됐다면 책임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신한투자증권은 해당 회사채를 개인에게 직접 판매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반면 투자자 측은 기관 명의로 인수된 물량이 사실상 개인을 상대로 재판매되는 구조였고 주관사도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인수 목적과 물량 배분 과정, 주관사와 일임사 사이의 연락 내용 등이 이 주장을 가를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을 어떤 경로로 취득했는지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방식도 달라진다. 대법원은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에 거짓 내용이 기재됐거나 중요 사항이 빠진 경우, 자본시장법 제125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투자자는 원칙적으로 발행시장에서 증권을 취득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장내 유통시장에서 채권을 매수한 투자자는 이 조항을 근거로 직접 배상을 청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보의 허위 및 누락과 금융회사의 고의 및 과실, 손실과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해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방안은 별도로 검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도 모든 투자자가 같은 법적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모 단계에서 취득했는지, 장내에서 매수했는지, 투자일임사를 거쳤는지에 따라 책임 주체와 입증할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발행 당시 투자설명서에 중요 정보가 빠졌는지뿐 아니라 해당 정보가 개인의 투자 결정까지 어떤 경로로 전달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자단기사채 투자자에 대해서는 판매 과정에서 위험이 충분히 고지됐는지와 투자자 보호 절차가 적정하게 이행됐는지가 별도 쟁점이다. 키움증권은 투자 권유 없이 고객이 온라인에서 직접 매수한 상품으로, 매수 단계에서 신용위험과 원금 손실 가능성을 고지하고 사후 확인 절차도 거쳤다는 입장이다. 불완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투자자 측은 상담원이 해피콜을 받지 않도록 등록하는 방법을 안내한 녹취를 확보했다며, 투자자 보호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험 고지와 사후 확인 절차가 적정하게 이행됐는지는 당시 상품 안내 화면과 통화 녹취, 내부 업무지침 등을 토대로 가려질 전망이다.
◇ 금감원 검사와 손해배상 책임은 별개
금감원은 지난 2일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에 대한 현장검사에 들어갔다. 신한투자증권에서는 주관사의 실사와 위험평가가 적절했는지를, 키움증권에서는 전자단기사채를 개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위험 고지와 투자자 보호 절차를 준수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후 8일부터는 회사채 인수단에 참여한 한양증권도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공동변호인단은 금감원이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 한양증권뿐 아니라 투자일임사와 신용평가사, 장내 거래를 중개한 증권사의 역할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 여러 금융회사와 부서에 흩어진 민원을 함께 처리하고 거래 기록과 이메일 등 전자자료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금감원에 전달했다.
이번 사건의 책임 범위를 가르려면 주관사의 기업실사 자료와 내부 심사 기록, 신용평가사의 등급 산정 근거, 개인투자자에게 이르는 유통·판매 과정을 각각 확인해야 한다. 금융회사별 책임 여부는 금감원 검사와 이후 분쟁조정·소송 절차를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금감원 검사에서 내부통제나 위험 고지상의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곧바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별 손실이 금융회사의 행위에서 비롯됐는지는 분쟁조정과 민사소송에서 별도로 따져야 한다. 형사책임 여부 역시 적용 죄명과 고의성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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