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AI 반도체 시대…'물'이 새로운 생산 경쟁력이다

2026.07.16 14:01:42

AI·HBM 생산 확대에 용수 수요 증가…초순수 공급·재이용 중요성 커져
삼성, 2030년 국내 취수량 증가 제로…SK 재이용률 35%→43% 확대
업계 “용수 확보·재이용 기술 핵심…물 이용 네트워크 구축 필요”

 

(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전력만큼 중요해지는 자원이 있다. 바로 물이다.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에 따라 물 사용량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업들은 더 많은 물을 끌어오는 대신 재이용과 초순수 관리 기술로 대응하고 있었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반복해서 만들고 씻어내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공정 중 발생한 미세 입자나 화학물질이 웨이퍼 표면에 남으면 제품 품질과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일반적인 공업용수가 아닌 불순물을 극도로 제거한 초순수(UPW·Ultra Pure Water)가 필요하다.

 

공정 미세화와 신규 생산시설 확대로 반도체 산업의 물 수요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업들은 필요한 물을 계속 외부에서 끌어오는 방식만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공정에서 사용한 물을 회수해 다시 정제하고, 하수처리수를 대체 수원으로 활용하며, 설비 운영을 개선해 생산량 증가와 취수량 증가를 분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물 관리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을 넘어 생산시설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바뀌고 있다.

 

◇ 반도체는 왜 물을 많이 사용할까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여러 층의 회로를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회로 모양을 새기는 포토·식각 공정과 막을 형성하는 증착 공정, 웨이퍼 표면을 평탄하게 만드는 화학적기계연마(CMP) 등이 반복된다.

 

각 공정이 끝날 때마다 웨이퍼 표면에 남아 있는 화학물질과 미세 입자를 제거하기 위한 세정 과정도 이어진다. 회로 선폭이 미세해질수록 작은 불순물도 수율과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세정에 사용하는 물의 순도 역시 중요해진다.

 

반도체 공장이 사용하는 초순수는 원수에 포함된 이온과 유기물, 미세입자 등을 여러 단계의 정수 과정을 통해 제거한 물이다. 단순히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조공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 일정한 품질로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초순수 공급 시스템은 원수를 정수해 초순수를 생산한 뒤 제조공정에 공급하고, 사용된 물 가운데 일부를 회수해 초순수 생산 공정에 다시 투입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스크러버 등에서 나온 일부 폐수는 설비 냉각수 등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한 물 순환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취수한 물을 초순수로 정제해 제조공정에 공급한 뒤 일부는 다시 회수해 초순수 생산에 재투입한다. 사용을 마친 용수는 고도처리를 거쳐 재이용하거나 최종 방류한다.

 

앞서 반도체 폐수 속 불소 관리 체계를 취재한 결과, 식각과 세정 과정에서 사용된 불산은 폐수 처리 과정에서 불소 형태로 관리되고 있었다.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한 초순수와 재이용 시스템은 공정에 투입되기 전 물부터 사용 후 폐수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 있었다.

 

◇ 생산 확대에 물 사용도 증가…재이용량도 함께 늘어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한 생산시설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들이 공개한 수자원 지표에서도 취수량과 초순수 공급·사용량이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의 국내외 총수자원 취수량은 2023년 1억6009만톤에서 2024년 1억6958만톤, 지난해 1억7901만톤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DS부문의 초순수 공급량은 6938만9000톤에서 7242만3000톤, 7668만4000톤으로 증가했다.

 

취수량과 초순수 공급량이 증가한 가운데 재이용 규모도 함께 확대됐다. DS부문의 수자원 재이용량은 2023년 1억1942만1000톤에서 2024년 1억2525만7000톤, 지난해 1억3130만7000톤으로 늘었다. 초순수 회수량도 2023년 2200만4000톤에서 2024년 2302만5000톤, 지난해 2515만6000톤으로 증가했다. 삼성전자 보고서의 DS부문 수치는 국내외 사업장을 합산한 기준이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국내 이천·청주와 중국 우시·충칭 생산사업장의 총취수량은 2022년 1억1163만9000㎥에서 지난해 1억1701만5000㎥로 약 4.8% 증가했다. 초순수 사용량은 같은 기간 3951만5000㎥에서 4116만3000㎥로 늘었다.

 

취수량이 늘어나는 동안 재이용량은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내외 생산사업장 전체의 용수 재이용량은 2022년 4787만7000㎥에서 지난해 7358만7000㎥로 약 53.7% 늘었고, 재이용률은 35%에서 43%로 8%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사업장만 보면 같은 기간 37%에서 47%로 상승했다.

 

공개된 수치상 두 회사 모두 최근 취수량과 초순수 공급·사용량이 증가했다. 동시에 회수와 재이용 규모를 확대하며 취수량 증가를 최소화하려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 삼성, 생산 늘려도 취수량은 2021년 수준으로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증설에도 2030년 국내 제조사업장의 취수량을 2021년 수준으로 유지하는 '취수량 증가 제로화' 목표를 세웠다.

 

회사는 이를 위해 고효율 설비 도입과 세정공정 내 재사용수 확대, 냉각수 시스템 최적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재이용 설비도 증설하고 지역사회·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하수처리수를 대체 수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정 미세화 등으로 용수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고효율 설비 도입과 세정공정 내 재사용수 확대, 냉각수 시스템 최적화 등을 통해 물 사용량을 체계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이용 설비 증설과 지역사회·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하수처리수를 안정적인 대체 수자원으로 활용하며 전 사업장의 물 순환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초순수 공급시설의 운영 효율도 개선하고 있다. 초순수 공급설비의 실제 운전 상태를 분석해 펌프 가동 대수와 밸브 개도 조건을 조정하고, 일부 불필요한 펌프 가동을 중단해 전력 소비를 줄였다. 이는 초순수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사용을 줄여 설비 운영 효율을 높인 사례다.

 

삼성전자는 물 관리 기술을 반도체 생산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평가했다. 안정적인 수량 확보뿐 아니라 공정에 필요한 품질을 유지하고 사용한 물을 다시 생산 과정에 투입하는 기술까지 생산 기반에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 반도체 생산이 늘어나면 물 사용량도 증가하겠지만 반도체 업계가 관련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 기술 발전을 통해 줄일 수 있는 부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 SK, 국내외 재이용률 43%…청주서는 하수처리수 활용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 누적 수자원 절감량 6억톤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2026년까지 2020년 대비 취수량 집약도를 35% 줄인다는 목표도 추진하고 있다.

 

취수량 집약도는 생산 규모나 매출 등 기업 활동 단위당 사용하는 물의 양을 의미한다. 생산량 자체가 증가하더라도 단위 생산에 필요한 물의 양을 줄여 물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SK하이닉스는 사업장과 공정에서 사용하는 용수 절감과 폐수 재이용 확대를 위해 ‘용·폐수 절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에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가스를 처리하는 사용 지점 스크러버(POU Scrubber)의 내부 구조를 개선했고, 2024년에는 신규 생산시설 가동에 맞춰 분사 방식과 공급 경로를 변경해 용수 사용량을 줄였다.

 

지난해에는 방지시설과 냉각탑의 운전 조건을 최적화해 추가로 용수를 절감했다. 용수 공급부터 사용, 처리, 재이용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면서 생산시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물 사용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 사용하는 사례도 확대되고 있다. SK하이닉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부터 물 스트레스가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 청주 사업장에 하수 재이용수가 공급됐다. 국내 중수 취수량은 2023년 237만5000㎥에서 2024년 458만1000㎥, 지난해 1080만㎥로 증가했다. 국내 중수 취수량은 청주 사업장에 하수 재이용수 공급이 시작된 이후 큰 폭으로 증가했다.

 

SK하이닉스가 공개한 용수 흐름도에서도 하수 재이용수는 초순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농축수 등과 함께 별도 저수시설에 모인 뒤 냉각과 기타 유틸리티 설비에 공급된다. 초순수 수준의 품질이 필요하지 않은 공정에는 재이용수를 활용하고, 고순도가 필요한 제조공정에는 별도로 정제한 초순수를 공급하는 구조다.

 

◇ 댐에서 하수처리수까지…물 공급 방식도 바뀐다

 

기업 내부의 재이용만으로 모든 수요를 충당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산업단지에는 대규모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댐과 정수장, 송수관, 하수처리시설 등 외부 인프라도 필요하다.

 

그동안 대형 산업단지 용수는 주로 하천과 다목적댐, 용수댐을 활용해 공급됐다. 하지만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의 수요가 커지면서 농업용수와 발전용수, 하수 재이용수, 해수담수화 등 다양한 수원을 연계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서남권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 용수 공급 방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산업단지에는 하루 65만톤의 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는 동복댐 증고와 주암·장흥댐 여유량, 보성강댐 발전용수 전환, 나주댐 농업용수 조정 등을 통해 필요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광주 제1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역삼투막으로 처리해 일반 공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공급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용수 가운데 약 50%가 일반 공정용수라고 설명하고, 초순수 수준의 수질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에 하수 재이용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용수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세부적인 규모는 반도체 종류와 생산설비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기업이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수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수원 사이를 연계할 수 있는 물 이용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농업용수와 발전용수 등 기존 수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해수담수화와 같은 대체 수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뭄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중장기적으로 재이용 기술 개발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자원이 풍부한 시기에는 공급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가뭄이 장기화하면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산업용수 사이의 배분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에는 안정적인 용수 공급이 요구되는 만큼 특정 수원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수원을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 물은 환경 비용 넘어 생산 인프라

 

AI 시대 반도체 경쟁은 생산시설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을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신규 생산거점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이 늘고 생산량이 증가하면 물 사용량 증가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취수량과 초순수 사용량도 최근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공정에 투입된 물 일부는 회수해 초순수 생산 과정에 다시 투입하고, 농축수와 처리수 등은 냉각수나 기타 유틸리티 용수로 재이용할 수 있다. 하수처리수와 같은 대체 수원을 활용하면 댐과 하천에서 공급받는 원수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물 경쟁력은 단순히 많은 물을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공정별로 필요한 수질을 구분하고 사용한 물을 회수·정제해 다시 활용하며, 가뭄이나 공급시설 장애에도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반도체 경쟁력이 미세공정과 생산능력으로 설명됐다면 AI 시대에는 안정적인 용수 공급과 물 재이용 기술도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초순수 생산시설과 공장 내부 재이용 설비, 외부 하수처리장과 송수관을 잇는 물 이용 네트워크까지 반도체 생산 경쟁력의 범위는 이제 생산라인 밖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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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기자 lupin7@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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