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의 강도는 유지하면서도 은행권의 과도한 대출 축소로 발생한 실수요자의 자금 공백은 별도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전면적인 규제 완화 대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원칙은 지키되 이미 주택 계약을 체결한 입주 예정자와 청년·신혼부부 등에 대해서는 대출 통로를 세밀하게 조정하겠다는 접근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실수요자의 금융 불편을 줄일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한성숙 국무총리 주재로 열렸다.
이 위원장의 발언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정부의 대출 규제와 은행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대출 한도를 구분했다는 점이다. 최근 불거진 잔금대출 차질이 새로운 규정의 소급 적용보다는 은행들이 연간 가계대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대출 문턱을 추가로 높인 결과라고 진단한 것이다.
◇ 규정상 가능한 대출까지 막혔다…은행 총량관리 점검
금융당국은 대출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입주자 모집공고가 이미 이뤄진 단지에는 원칙적으로 종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계약 당시 예상하기 어려웠던 제도 변경으로 기존 계약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일종의 경과조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일부 입주 예정자가 잔금대출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은행들이 총량관리 과정에서 취급 한도와 심사 기준을 자체적으로 더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 위원장은 잔금대출 문제를 은행권과 신속하게 협의해 실제 대출 현장에서 발생하는 제약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국의 첫 번째 조치는 대출 규제 자체를 낮추기보다 현행 규정상 가능한 잔금대출이 은행의 내부 한도 때문에 일률적으로 차단되는 상황을 줄이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총량 목표는 유지하면서도 이미 계약을 마친 입주자의 자금 수요를 은행들이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도록 할지가 협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청년과 신혼부부 등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해서도 별도의 지원 기준이 검토된다. 금융당국은 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대출 규제를 넓게 풀 경우 주택 가격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수요자 지원을 내세운 일괄적인 규제 완화에는 선을 긋고, 지원 필요성이 명확한 계층을 선별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의미다. 금융위가 앞서 제시한 주택금융 토론 의제에도 청년 등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 규제 조정과 정책대출 지원 문제가 포함됐다.
◇ 생애최초 예외는 개별 심사…기준의 객관성 관건
미성년 시절 상속으로 일부 주택 지분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 혜택에서 제외된 사례도 보완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 위원장은 생애최초 구입자에 대한 기본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은행 여신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취득 경위와 실제 주택 보유 여부를 살펴 타당한 경우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정책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다만 개별 심사 방식이 확대되면 은행이나 민원 제기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향후 대책에서는 무주택 기간과 주택 지분 취득 경위, 기존 계약 시점, 소득 및 상환 능력 등 예외 인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형평성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주택 수요를 직접 늘릴 수 있는 대출과 신규 공급을 뒷받침하는 금융도 분리해 접근할 방침이다. 이 위원장은 수요자 금융은 주택시장 과열로 이어질 위험이 있지만, 공급자 금융은 실제 주택 물량을 늘린다면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비아파트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자금 지원이 신규 사업을 촉진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청년·신혼부부와 기존 계약자의 대출 공백은 선별적으로 메우고, 금융회사의 자금은 주택 공급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이중 전략이다.
이번 보완책은 가계대출 총량관리의 틀을 유지한 채 잔금대출과 생애최초 대출 등 현장에서 확인된 문제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전망이다. 은행의 자체적인 한도 축소와 일률적인 심사로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까지 제약받는 사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향후 대책의 실효성은 실수요자 인정 기준과 은행권의 대출 취급 원칙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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