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를 두 배로 높인 가운데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에 실수요자 대출 공급을 주문했다. 다만 총량 확대가 시장에서 대출 규제 완화 신호로 읽혀 투기 수요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출 공급 여력은 넓히되 그 자금을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실수요에 우선 배분하고, 신용대출과 투기성 자금에 대한 관리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4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관계기관 합동 ‘확대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이번에 가계대출 총량목표가 합리적으로 조정된 만큼 확대된 금융권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으로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실수요 자금이 적시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총량목표 조정이 시장에서 대출관리 기조의 완화로 인식돼 투기적 수요를 자극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실수요는 차질 없이”…금융사별 대출 한도 다시 짠다
정부는 전날 발표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에서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 수준으로 높였다.
상반기 중 일부 은행이 연간 대출 증가 한도를 이미 소진하면서 실수요자 대출까지 위축되자 공급 여력을 일부 복원한 것이다.
지난달 15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정책대출 제외 가계대출 잔액은 649조661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6851억원 증가했다.
이는 5대 은행에 배정된 올해 연간 증가 한도 4조3363억원보다 3488억원 많은 수준이다. 연말까지 5개월 이상 남겨둔 시점에 이미 연간 허용 폭을 넘어선 셈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하반기 들어 대출모집인 채널을 제한하거나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접수를 줄이고 자체 한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 속도를 조절해왔다.
금융당국은 이번 총량 조정을 계기로 금융회사별 한도를 다시 산정한다. 이 위원장은 이날 금융감독원에 금융회사별 총량목표 조정을 위한 금융권 협의를 신속히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금융권 전체 목표가 1.5%에서 3%로 높아졌다고 해서 개별 은행의 기존 한도가 일률적으로 두 배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각 금융회사의 상반기 대출 실적과 기존 관리 목표, 향후 집단대출 수요 등을 반영해 추가 취급 가능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 총량 늘리면서도 경계하는 당국…7개월 새 작년 1년치 92.9%
당국이 총량을 확대하면서도 대출 관리 기조를 거듭 강조하는 배경에는 여전히 빠른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있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2000억원 증가했다. 5월 9조3000억원, 6월 8조3000억원에 이어 월별 증가 폭은 두 달 연속 줄었다.
주택담보대출은 3조5000억원 늘어 전월 4조5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1조원 축소됐다. 기타대출도 3조80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으로 증가 폭이 줄었다. 신용대출 증가액이 2조6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그러나 누적 증가액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올해 1~7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35조3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연간 증가액 38조원의 약 92.9%다. 올해가 아직 5개월 가까이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총량 확대와 별개로 증가 속도를 계속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위원장은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과거 평균치 대비 여전히 높고, 연간 총량관리 목표 기준으로도 한도 소진 속도가 다소 빠르게 나타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 ‘더 빌려주되 아무 데나 빌려주진 말라’
이번 조정으로 금융회사의 대출 공급 여력은 늘어나지만 차주에게 적용되는 규제가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가격별 주담대 한도 등 차주 단위 규제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대신 금융당국은 늘어난 총량을 주택 공급과 실수요 분야에 우선 배분한다는 방침이다.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연합회도 이날 “주택공급과 관련된 자금공급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금융권에서도 노력을 강화하되 신용대출 등에 대한 자율적인 관리 노력은 일관되게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주비 대출 LTV 산정방식 개편과 PF 사업자 보증공급 확대 등 즉시 시행 가능한 조치를 이달 중 시행할 예정이다.
이주비 대출의 경우 LTV 산정 때 신축주택의 가치 추산액인 종후자산평가액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한다. 이에 따라 일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이주비 대출 한도도 기존보다 늘어날 수 있다.
결국 하반기 금융권의 과제는 대출을 일괄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여력을 실수요 자금에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데 있다.
총량 한도에 막혀 있던 공급 여력은 일부 되살리되, 늘어난 자금이 신용대출이나 투기적 주택 수요로 흐르지 않도록 대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실수요자 자금 공급과 투기 수요 억제를 동시에 강조한 것도, 확대된 총량을 실수요에 집중시키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