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의 외화채권 발행 주간사 수수료가 15년 가까이 사실상 ‘고정값’으로 운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 만기나 시장 상황이 달라져도 발행액의 0.3%(30bp)를 일률적으로 적용했고, 2023년에는 주간사를 선정할 때 수수료율을 따지는 평가항목마저 없앴다. 감사원은 이 같은 방식 때문에 최근 5년간 최대 301억원의 비용을 줄일 기회를 놓친 것으로 판단했다.
18일 감사원이 공개한 한국수출입은행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수은은 2010년 이후 외화채권 발행을 맡기는 투자은행(IB)에 발행액의 30bp를 주간사 수수료로 지급해 왔다. 1bp는 0.01%p로 30bp는 발행금액의 0.3%다.
◇ 30bp 고정에 경쟁도 실종…굳어진 주간사 수수료
감사원이 주목한 대목은 수수료가 단순히 높고 낮은 문제가 아니라 가격을 정하는 구조였다. 채권 발행 수수료는 만기와 발행자의 신용도, 시장 여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수은은 이를 반영해 수수료를 조정하는 별도의 기준을 두지 않고 동일 요율을 적용했다.
게다가 수은은 대규모 채권을 꾸준히 발행하는 만큼 주간사 IB와의 수수료 협상에서도 협상력이 큰 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수은의 채권 발행 규모는 국내 1위, 아시아 2위 수준이다. 또한 정부·국제기구·공공기관·정부보증기관 등이 포함되는 SSA(Sovereigns, Supranationals and Agencies) 시장의 주요 발행기관으로,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런 조건을 감안해 수은이 주간사 IB를 상대로 충분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수수료 경쟁을 유도할 장치는 오히려 축소됐다. 수은은 2023년부터 주간사 선정 평가에서 수수료율 항목을 삭제했다. 주간사 후보들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평가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인이 사라진 셈이다.
수은이 주간사 IB에 지급한 수수료 규모도 상당했다. 수은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총 28차례에 걸쳐 47조7505억원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했고, 이 기간 주간사 IB에 1424억원을 수수료로 지급했다.
감사원은 수은의 주간사 수수료율이 적정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해외 유사 발행기관의 사례와 비교했다.
미국 시장에서 수은과 같은 SSA 발행자 6곳과 AA급 발행자 30곳이 글로벌 IB 7곳에 지급한 수수료를 분석한 결과, 만기가 짧고 발행자의 신용도가 높을수록 수수료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수은이 발행한 채권 가운데 만기 5년 이하 비중이 81%에 달한다는 점도 감안됐다.
이를 토대로 감사원은 시장가격을 반영해 만기 등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적용했을 경우 최근 5년 동안 약 85억~301억원을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301억원은 실제 발생한 손실액이 아니라 감사원이 산출한 비용 절감 가능액의 최대치다.
감사원은 수은에 시장조사를 거쳐 합리적인 주간사 수수료 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주간사 후보 간 가격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선정 방식을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 대출금리·여신심사·부실관리도 줄줄이 지적
외화채권 수수료 외에도 수은의 대출·여신 관리 과정 곳곳에서 문제점이 확인됐다. 대출금리를 산정하면서 차주가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떠넘긴 사례가 있었고, 기업 신용등급을 상향하는 과정과 부실여신 발생 이후 책임을 가리는 절차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수은은 자체 부담해야 할 비이자수입 관련 교육세를 대출금리에 가산하는 방식으로 차주에게 떠넘겼다. 감사원은 최근 5년간 이 과정에서 77억8000만원이 과다 징수된 것으로 파악하고 환급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기업 신용평가 과정에서도 허점이 확인됐다. 수은은 차입 과다나 자본잠식 등 재무위험이 확인되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신용등급을 낮추는 ‘필터링’ 절차를 운영한다. 다만 필터링으로 등급이 낮아진 이후에도 기타 특기사항 등을 반영해 최종 등급을 다시 조정할 수 있다.
감사원은 최근 5년간 필터링으로 등급이 제한됐다가 이후 상향 조정된 198건을 점검했다. 이 가운데 71건은 평가 담당자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큰 항목을 적용한 사례였고, 세부적으로 들여다본 결과 18개 기업은 객관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신용등급이 상향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이 발생한 뒤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절차도 늦었다. 2015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수은에서 발생한 부실여신은 334건, 11조50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부책심의를 완료한 132건을 분석한 결과 부도 발생 이후 부책심의 착수까지 평균 1333일이 걸렸다. 기업은행의 192일과 비교하면 약 6배, 산업은행의 98일보다는 약 14배 긴 기간이다.
심의가 장기간 미뤄지면서 관련자가 회사를 떠난 뒤에야 책임을 따지는 사례도 발생했다. 부책심의가 완료된 60건에서는 관련자 36명이 심의 전에 이미 퇴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출자전환을 이유로 부책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부실여신도 64건 확인됐다.
한편 수은은 앞서 지난 5월 공개된 감사원의 ‘공공기관 자체감사활동 심사’에서도 금융·연기금 부문 최하위인 D등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감사원은 수은이 최근 3년 연속 하위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번 정기감사에서 확인된 문제와 관련해 수은에 주의 3건, 통보 7건 등 모두 10건의 처분을 요구했다. 외화채권 수수료 산정 기준과 주간사 선정 방식을 손질하는 한편 대출금리 산정, 신용평가, 부실여신 사후관리 관련 제도도 정비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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