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미국의 관세정책을 이해하려면 관세율표보다 미국의 공장을 먼저 봐야 한다.
지난 8월 3일 미국의 25개 주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24일부터 60개 교역상대국에 부과된 10~12.5%의 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위법한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정부는 해당 국가들이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제대로 막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무역법 제301조1)에 따라 관세를 부과했다.
1) 무역법 제301조는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해 미국 대통령(USTR)이 조사를 거쳐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통상법 조항이다.
이 소송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미국은 왜 관세의 명분과 법적 근거를 계속 바꾸면서까지 수입을 억제하려 하는가. 명분이 매번 달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단일한 법적 논리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어떤 목표가 그 뒤에 있음을 시사한다.
강제노동, 국가안보, 불공정무역, 과잉생산, 공급망 안보…. 겉으로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상당 부분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의 생산기반을 미국 안으로 되돌리는 것, 즉 재산업화와 리쇼어링2)이다.
2) 리쇼어링은 "공장을 다시 데려오는 개별 행위"이고, 재산업화는 그런 리쇼어링들이 모여 이루는 "산업 기반 전체를 되살리는 큰 목표"를 말한다.
2026년 3월 USTR은 중국·EU·한국·일본 등 16개 경제권의 '구조적 과잉생산'에 대한 301조 조사를 시작했고, 바로 다음 날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강제노동 관련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7월 23일, 그 결과를 바탕으로 60개 경제권에 10% 또는 1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산 제품은 기존 한미 합의를 반영해 MFN(최혜국) 관세와 301조 관세를 합산한 총부담이 12.5%가 되도록 설계됐다.
이 흐름만 보면 인권과 공정무역을 위한 조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설계를 보면, 미국이 원하는 건 그보다 훨씬 단순하다.
관세는 투자를 유도하는 가격표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알루미늄이다. 미국은 지난 7월 20일 무역확장법 232조3) 알루미늄 관세를 수정하면서 '온쇼어링 플랜'을 도입했다. 즉, 미국 내 제련시설을 신설·확장하겠다고 약속한 기업은 요건 충족 시 해당 생산능력에 상응하는 물량에 대해 기존 관세율의 절반만 부담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혜택을 철회하고 소급 과세도 가능하다.
3) 무역확장법 제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통상법 조항이다.
관세가 단순한 수입 억제 장치였다면 이런 제도는 필요 없다. 그러나 관세를 '미국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가격표'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 밖에서 생산하면 높은 관세를,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낮은 관세를 부담한다. 기업은 자연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비용과, 밖에서 생산해 관세를 내는 비용 중 어느 쪽이 싼가. 이 순간 관세는 세금에서 투자 의사결정의 변수로 바뀐다.
같은 구도는 다른 조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과잉생산’에 대해선 301조로 조사 중이고, ‘강제노동’은 이미 301조 관세로 이어졌다. ‘철강·알루미늄·구리’에는 232조 관세가 매겨진다.
지난 7월 20일에는 방위산업의 핵심 소재·부품을 국내 또는 동맹국에서 조달하도록 하고 주요 공급망을 포괄적으로 매핑·추적하도록 하는 행정명령도 함께 발표됐다. 법적 근거와 명분은 저마다 다르지만 방향은 한결같다. 미국 밖 생산은 더 비싸게, 미국 안 생산은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강제노동 문제 자체가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USTR은 2,100건이 넘는 의견을 검토하고 공청회까지 거쳤다. 다만 정책의 명분과 기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명분이 인권이더라도, 그 정책이 외국 생산 비용을 높이고 미국 생산의 상대적 경쟁력을 높인다면 동시에 산업정책으로도 기능한다.
법원이 막아도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이번 소송에서 주목할 대목은, 법원이 대통령의 관세 권한에 제동을 걸더라도 보호무역정책 자체가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2026년 2월 연방대법원이 IEEPA만으로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뒤, 행정부는 301조라는 다른 법적 근거를 꺼내 들었다. 이번 새로운 관세 역시 소송 대상이 됐다.
결국 법적 수단은 바뀔 수 있어도 정책의 목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01조가 막히면 232조를, 특정 품목 조사가 막히면 원산지·우회수출 규제를, 그래도 부족하면 환율정책4)까지 꺼낼 수 있다. 이번 소송 결과만 보고 "관세정책이 끝났다"고 판단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4) 환율정책 수단에는 저평가 통화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 지정, 통상협정 내 환율 조항 신설 등이 있다.
한국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과거 미국 수출기업의 관심사는 HS Code, 관세율, FTA 적용 여부 세 가지였다. 앞으로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제품의 공급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중국산 원재료·부품은 얼마나 들어가는가, 실질적 생산활동은 어느 국가에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미국 시장을 계속 공략하려면 한국 생산이 최선인지, 미국 현지 생산이 유리한지를 물어야 한다. 더 이상 통관전략이 아니라 투자의사 결정의 문제다.
기업은 첫째, 최종 생산국뿐 아니라 원재료·부품의 공급국과 생산공정까지 원산지 기준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같은 한국산 제품이라도 어떤 원재료를 어디서 조달하느냐에 따라 향후 미국 통상조치에 대한 노출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미국의 통상조치를 '국가별 관세율표'가 아니라 '품목·국가·공급망별 리스크 지도'로 관리해야 한다. 셋째, 한국·중국·동남아·미국 생산거점을 인건비가 아니라 관세·물류비·투자비·세제·원산지·공급망 안정성을 포함한 '총비용' 관점에서 비교해야 한다.
넷째, 정부 차원에서도 관세 협상과 별개로 한국의 생산기반을 어떻게 지킬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미국이 관세를 이용해 기업의 생산시설을 끌어들이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해외투자만 확대한다면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같은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공장의 위치가 승패를 가른다
앞으로도 어떤 관세는 법원에서 살아남고 어떤 관세는 무효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지금 미국이 바꾸려는 것은 관세율표가 아니라, 기업이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경제적 계산식이다. 트럼프에게 관세는 정부가 걷는 세금이 아니라 기업에 보내는 가격표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비용을 줄여주겠다, 밖에서 생산하려면 이만큼 부담하라." 이 가격표가 투자 결정을 움직인다면 관세는 더 이상 국경의 장벽이 아니라, 공장의 위치를 바꾸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미국이 다음에 몇 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관세를 보고 세계의 기업들이 어디에 공장을 짓게 될 것인가"이다. 관세전쟁의 진짜 승패는 관세율표가 아니라 결국 공장의 위치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 지금 던져야 할 질문도 같은 자리에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넘어, "미국이 공장을 끌어가는 시대에, 한국은 어떤 산업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남길 것인가."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경기TP, 인천TP 등 기관 전문위원
• (전)월드클래스 300, NCS워킹그룹 심의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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