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 적립금의 9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몰리면서 수익률이 다른 퇴직연금 제도보다 낮은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기업이 임금 상승률 등을 고려해 목표수익률을 설정하고 퇴직급여 부채와 연계해 자산을 배분하도록 운용 개선을 유도하기로 했다.
2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DB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228조9000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501조4000억원의 45.7%를 차지했다. 퇴직연금 제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이다.
DB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급여가 사전에 정해져 있고 기업이 외부 퇴직연금사업자에 재원을 적립해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 책임과 손익은 기업에 귀속된다.
정부는 DB형 적립금의 체계적 운용을 위해 2022년부터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립금운용위원회 구성과 적립금운용계획서(IPS) 작성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DB형 적립금의 91.9%는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된 것으로 집계됐다.
수익률도 다른 퇴직연금 제도보다 낮았다. 지난해 DB형 연간 수익률은 3.5%로 확정기여형(DC) 8.5%, 개인형퇴직연금(IRP) 9.4%를 밑돌았다.
최근 5년간 누적으로 봐도 DB형 수익률은 임금 상승률에 미치지 못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DB형의 누적 수익률은 15.9%였지만 같은 기간 누적 임금 상승률은 18.9%로 3%p 차이가 났다.
DB형은 퇴직 시점의 임금 등을 기준으로 지급할 퇴직급여가 정해지는 만큼, 임금 상승에 따라 기업이 마련해야 할 재원도 함께 늘어난다. 적립금 운용 수익률이 임금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 기존 적립금만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어려워져 그 차이만큼 기업의 추가 납입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고용부와 금감원은 이에 따라 기업이 DB형 적립금의 목표수익률을 최소 임금 상승률 이상으로 설정하고, 퇴직급여 부채의 특성을 반영해 자산 배분 전략도 함께 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퇴직급여 부채와 운용자산의 듀레이션을 맞추는 방식을 제시했다. 듀레이션은 자산과 부채의 금리 변동 민감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퇴직급여 지급 시점을 고려해 부채와 운용자산의 듀레이션을 비슷하게 맞추면 할인율 변동에 따른 자산·부채 간 변동 폭 차이를 줄일 수 있다.
지난해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7.1년인 반면 DB형이 투자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가운데 만기 3년 이내 상품의 비중은 83%에 달했다. 정부는 개별 기업의 퇴직급여 부채 구조에 맞춰 자산 듀레이션을 조정하면 할인율 변동에 따른 추가 적립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운용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자문을 활용하도록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목표수익률과 적립금 운용 방법 등을 담은 적립금운용계획서(IPS)를 작성해야 하며, 퇴직연금사업자는 기업별 상황을 분석해 목표수익률 설정과 자산 배분 방안 등을 지원한다.
300인 미만 사업장도 퇴직연금사업자에 컨설팅을 요청할 수 있다. 별도의 적립금 운용 담당 인력을 두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대표자와 담당 직원, 퇴직연금사업자가 함께 운용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퇴직연금사업자의 자문을 받아 운용 방식을 바꾼 사례도 공개됐다. 해당 기업은 기존 채권 위주의 투자에서 실적배당형과 원리금보장형 상품 등으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했고, 수익률은 5.9%에서 7.4%, 이후 25.5%로 높아졌다.
고용부는 연말 DB형 적립금 운용 모범 사용자와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해 포상할 예정이다. 동시에 올해부터 DB형 사업장 가운데 최소적립금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 감독을 실시하고, 위반 시 최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등 제재도 병행한다.
금감원은 퇴직연금사업자에 별도 문서를 보내 기업 대상 컨설팅을 강화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발표할 예정인 퇴직연금 가이드북에도 DB형 적립금 운용 관련 내용을 포함한다.
정부가 수익률 제고를 위한 운용 개선과 최소적립금 관리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치우친 기업의 DB형 운용 관행에도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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