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그동안 중국의 여러 산을 다녔지만 백두산은 늘 맨 뒷자리에 두고 ‘나중에 가야 할 산’으로 미뤄 두었다. 많은 이들이 다녀오니 언젠가는 가야 할 산이라 여기면서도, 조급할 것 없이 시간이 될 때 천천히 찾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기대가 크지 않은 산이었다. 애국가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민족의 영산, 천지나 한 번 보고 오면 되는 산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다녀오고 나니, 백두산이야말로 가장 먼저 찾았어야 할 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올해는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해 친구들과 ‘Again 83’ 경주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올해는 시간이 되는 벗들이 다시 모여 백두산에 오르자고 뜻을 모았다. 연초에 희망자를 모집하니 26명이 참가를 신청했고, 기다림 끝에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장춘(長春)으로 향하는 비행 시간은 제주도 가는 길보다 조금 더 걸리는 정도였다. 다시 기차로 갈아타 장백산역에 내린 뒤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여장을 풀었다. 도착하던 날 비가 많이 내려, 함께 간 친구들은 백두산 탐방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싸여 있었다.
◆ 열여섯 봉우리 사이로 펼쳐진 신비로운 천지
다행히 이튿날은 날씨가 맑았다. 북파(北坡) 코스와 장백폭포가 열린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우리는 오르기도 전부터 모두 기대에 부풀었다. 큰 산 위에 자리한 화산호 천지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리라 생각했는데, 오르는 길 좌우로 펼쳐진 울창한 산림과 고도가 높아질수록 넓어지는 초원의 야생화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정상에 닿기도 전에 이미 백두산에 매료된 것이다. 정상 주차장에 내려서는, 천지를 먼저 보려면 B코스로 향하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따랐다. 천지를 둘러싼 열여섯 봉우리 사이로 펼쳐진 천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봉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형상과 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백두산 정상 부근에는 두메양귀비와 바위구절초 같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높은 봉우리에 부는 거센 바람 탓에 키는 크지 않았지만, 저마다 예쁜 꽃을 피우고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다시 백두산을 찾아오라는 인사였으리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야생화의 아름다움, 화산이 빚어낸 형형색색의 암석, 연둣빛 초원, 그리고 사파이어빛 천지까지 원색의 향연을 만끽했다. 이 신비로운 빛깔들이야말로 백두산을 더욱 신성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초원과 자작나무 숲 지나 만난 장백폭포
내려오는 길, 초원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저 앞으로 드넓은 수해(樹海)가 나타나 뛰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후에 맞게 가지를 넓게 뻗은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그 앞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장백폭포로 오르는 길 양쪽에는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하천과 온천수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온천수의 영향으로 초록빛을 띤 암석은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어우러져 한층 신비로워 보였다.
장백폭포에 다다르자, 신선도(神仙圖)에 나올 법한 웅장한 폭포에 새가 날고 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에서는 작아 보였던 장백폭포가 실제로 앞에 서니 너무나 웅장했고, 검은 흙 사이로 부서지는 물보라가 신비감을 뿜어냈다. 발아래로는 야생화가 흐드러져 더욱 환상적인 장면을 자아냈다.


◆ 민족의 영산이자 지금도 살아 있는 화산
백두산은 1597년, 1668년, 1702년에 분출한 기록이 있는 활화산으로, 언제 다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왕검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를 세웠다. 그 태백산이 곧 오늘의 백두산(白頭山,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한반도와 만주의 중심에 자리하며 이곳에서 압록강·송화강·두만강이 발원한다.
17세기 중엽 청나라는 백두산을 조상의 발원지로 여겨 장백산신(長白山神)으로 봉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봉금(封禁)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봉금령이 풀리며 조선인 이주자가 크게 늘자, 청나라는 1712년 백두산 분수령에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웠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길은 중국 쪽의 북파(北坡)·서파(西坡)·남파(南坡) 코스와 북한 쪽의 동파(東坡) 코스로 나뉜다. 북파에서는 천지와 장백폭포를, 서파에서는 천지와 금강대협곡을, 남파에서는 천지와 압록강 대협곡을 볼 수 있다. 동파는 북한 지역이라 오를 수 없다. 이번에 다녀온 북파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도 계획을 세워 함께 다녀오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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