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생성형 AI가 기업 업무와 일상에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세법 조항이나 간단한 세무 정보 역시 몇 가지 질문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세무법인 센트릭은 왜 1년 넘는 시간과 인적·물적 자원을 들여 별도의 세무 전문 AI 플랫폼을 구축했을까.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서관 아트홀에서 열린 '센트릭 텍스 AI(CENTRIC TAX AI)' 공개 세미나에서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 CEO와 재무·세무 담당자, 세무사 등 24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센트릭 측이 강조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세무 의사결정의 전문성과 범용 생성형 AI가 안고 있는 '할루시네이션(환각·허위 정보 생성)' 위험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다.
◇ 한승희 회장 "범용 AI 넘어 실무에 활용할 전문 해법 필요"
세미나 시작에 앞서 만난 한승희 세무법인 센트릭 회장(전 국세청장)은 "지난해 4월경 이현세무법인과 세무법인 대륙아주의 실질적인 합병을 추진하면서부터 'AI 시대에 납세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왔다"며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한 회장은 "기업 경영과 일상이 AI 시대로 전환된 만큼 조세 분야에서도 빠른 답변이 중요해졌다"면서도 "심층적인 판단에는 세무 전문가의 정밀한 검토가 수반돼야 하고, 할루시네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CENTRIC TAX AI는 우리가 직접 축적하고 구축한 독자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하고 있다"며 "일반 AI의 피상적인 설명을 넘어 기업과 납세자가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문 해법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조세·세무 분야는 일반적인 문서 요약이나 번역과 달리 잘못된 판단에 따른 비용이 크다. 법령이나 예규를 잘못 적용할 경우 세액 추징이나 가산세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기업의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성형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유권해석을 실제 자료처럼 제시하는 이른바 '환각' 문제도 세무 분야에서는 특히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센트릭이 범용 AI를 그대로 활용하기보다 별도의 세무 전문 플랫폼 구축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 23개 전문영역으로 세분화…"질문 따라 판단 구조도 달라야"
이날 강승윤 대표가 직접 시연한 센트릭 텍스 AI는 약 23개 전문영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나의 입력창에 모든 질문을 던지는 일반적인 생성형 AI와는 다른 방식이다.
특수관계자 판정, 유권해석 질의서 작성, 계정과목별 세무 진단 등 업무별로 필요한 법리와 검토 자료가 다른 만큼 각 영역의 특성에 맞춰 AI의 분석 과정을 설계했다는 게 센트릭 측 설명이다.
센트릭은 각 세목과 이슈별로 AI의 판단 로직을 개별적으로 설계했다. 질의가 입력되면 해당 업무에 맞춰 정제된 자료와 검토 기준을 적용해 답변하도록 함으로써 오류 가능성을 낮추는 방식이다.
강 대표가 이날 시연에서 처음 던진 질문은 '비거주자인 미국 창작자에게 지급하는 미술품 구매대가 6000만원이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는가'였다.
질문을 입력하자 ▲사실관계 및 관련 법률 리서치 ▲세무 관점의 법리 검토 ▲과세관청 시각의 쟁점 점검 ▲종합 결론으로 이어지는 분석 과정이 화면에 제시됐다.
단순히 '해당한다' 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만 제시하기보다 어떤 근거와 검토 과정을 거쳐 판단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 50만건 검증 DB 먼저 찾는다…범용 AI와 차별화
센트릭 텍스 AI의 핵심 구조는 이른바 '선(先) 검증 DB 탐색, 후(後) AI 분석' 방식이다.
센트릭 측에 따르면 플랫폼은 구글 제미나이 엔진을 기반으로 하되, 질의가 입력되면 자체 구축한 약 50만건의 법령과 대법원 판례, 조세심판원 결정례, 기획재정부·국세청 유권해석, 전문 의견서 등 지식베이스를 우선 탐색한다.
검증된 조세 자료를 토대로 답변의 근거를 확보한 뒤 AI가 이를 분석하도록 해 존재하지 않는 법령이나 판례가 답변에 포함될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구조다.
기업이 입력하는 세무·재무 정보의 보안 문제도 고려했다. 센트릭 측은 고객이 입력한 내부 자료를 범용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무 판단은 사실관계와 법령 적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AI가 전문가의 최종 판단을 완전히 대체한다기보다는 실무 검토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보조수단에 무게가 실렸다.
◇ AI에 전문가 네트워크 결합…"분석에서 실행까지"
센트릭은 AI 플랫폼에 전문가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구상도 공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안만식 대표가 서비스 라인을 소개했으며 세무사·회계사·변호사 네트워크인 '엔센트릭(N-Centric)'과 법무법인 두현, 서현회계법인 등과의 협업 체계도 제시됐다.
AI를 통한 사전 분석에서 끝내지 않고 복잡한 세무 현안은 분야별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연결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숙룡 대표는 236명의 세무사·회계사·변호사 협력망에서 출신 관서와 전문 세목 등 조건에 따라 전문가를 매칭하고, 개별 프로젝트에 필요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직접 시연했다.
센트릭 관계자는 "AI 기술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검증된 데이터와 세분화된 설계를 토대로 세무 실무의 디지털 전환(AX)과 리스크 관리를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센트릭 텍스 AI 시연 외에도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 동향과 첨단 포렌식 기법을 활용한 세무조사 리허설 서비스 등이 소개됐다.
◇ "AI가 전문가 대체 아닌 연결"…세무 리스크 사전관리 강조
센트릭이 이날 공개한 AI 플랫폼과 전문가 네트워크의 지향점은 기업의 세무 리스크를 사전에 찾아내고 대응하는 데 맞춰졌다.
한승희 회장은 행사 말미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총괄했던 입장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확하다"며 "회사가 건전하고 단단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며, 그것이 사회와 기업의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말했다.
폐회사를 맡은 안만식 대표도 "기업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과정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세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세 행정에서 30~40년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쌓은 인력들이 퇴직 이후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의 전문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과 경쟁할 수 있는 세무법인의 기반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센트릭의 모토는 단기적인 이익 추구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지원"이라며 "기업이 세무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센트릭이 이날 제시한 '세무 전용 AI'의 방향은 범용 생성형 AI와의 성능 경쟁이라기보다, 검증된 세무 데이터와 분야별 전문가를 AI로 연결하는 데 가까웠다. AI가 전문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더 빠르고 정밀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향후 센트릭 텍스 AI의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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