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KB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인선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관심은 연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로 옮겨가고 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 CEO 10명의 임기가 올해 말 한꺼번에 끝나는 데다, 이때 이재근 차기 회장 후보가 취임 직후 사실상 첫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사 폭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이 후보를 선택하며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를 주문했지만, 정작 이 후보는 세대교체를 연령에 따른 교체와 분명히 구분했다. 전면적인 사장단 물갈이보다 계열사별 성과와 전문성, 조직 장악력 등을 따져 교체 대상을 선별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2월31일 임기가 끝나는 KB금융 계열사 CEO는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이홍구 KB증권 WM부문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 빈중일 KB캐피탈 대표, 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 윤법렬 KB인베스트먼트 대표, 박찬용 KB데이타시스템 대표 등 10명이다.
올해 새로 취임한 강진두 KB증권 IB부문 대표와 곽산업 KB저축은행 대표는 임기가 남아 있어 이번 인사 대상에서는 비켜서 있다.
이 후보는 다음달 2일 회추위와 이사회 추천을 거쳐 오는 11월2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11월21일부터 시작한다. 예정대로 절차가 진행되면 취임 한 달여 만에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 3년 채운 CEO 5명·첫 임기 끝나는 CEO 5명…갈림길 선 사장단
올해 인사 대상 10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홍구, 구본욱, 김영성, 빈중일, 성채현 대표는 이미 한 차례 재신임을 받았다. KB금융은 통상 신임 계열사 대표에게 2년의 임기를 주고 재선임 시 1년을 추가하는 이른바 ‘2+1’ 방식을 적용해 왔다. 이들은 올해 말까지 총 3년의 임기를 채운다.
반면 이환주 국민은행장을 비롯해 김재관, 정문철, 박찬용, 윤법렬 대표는 첫 임기를 마치는 CEO들이다. 기존 관례대로라면 경영 성과와 향후 사업계획 등을 평가받아 추가 임기를 받을 수 있는 시점이다.
새 회장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다. 3년을 채운 CEO들을 중심으로 새 얼굴을 배치하면서 초임 대표 가운데 성과를 인정받은 인물은 남기면서 폭넓게 경영진을 새로 짤 수 있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각 계열사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 업종별 경영환경이 다른 데다 실적과 건전성, 내부통제, 중장기 성장전략까지 따져야 할 항목도 제각각이다.
회장 교체 자체가 사장단 전면 교체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반대로 기존 인사를 대부분 유지한다면 회장 선임 과정에서 회추위가 강조했던 ‘변화와 세대교체’를 계열사 경영진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남는다.
결국 이번 인사의 무게는 교체 인원 자체보다 ‘누구를 왜 남기고, 누구를 왜 바꾸느냐’에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 연령 아닌 역량…이재근식 세대교체
연령만 놓고 봐도 이번 인사를 단순한 세대교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1966년생인 이 후보보다 나이가 많은 인사 대상 CEO는 이환주 행장과 이홍구, 성채현, 박찬용 대표 등 4명이다. 이 행장은 1964년생, 나머지 3명은 1965년생이다.
나머지 6명은 차기 회장보다 젊다. 구본욱 대표는 1967년생이고 김재관, 정문철, 빈중일 대표는 1968년생, 김영성 대표는 1969년생, 윤법렬 대표는 1972년생이다.
금융권 경력까지 놓고 보면 구도는 더 복잡해진다. 이홍구 대표는 1990년, 이환주 행장은 1991년 금융권에 발을 들였다. 김재관 대표도 1992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1993년 주택은행에 들어간 이 후보보다 금융권 경력이 길다. 빈중일 대표는 이 후보와 같은 1993년 주택은행에 입행했다.
단순히 출생연도를 낮추는 방식으로는 회추위가 강조한 세대교체를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후보가 직접 제시한 기준 역시 연령과 거리가 있다. 그는 빠른 의사결정과 책임 있는 실행, 전문성, 조직과의 호흡 등을 차기 리더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이번 인사에서는 ‘몇 년생이냐’보다 각 계열사의 사업을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고 새 성장전략을 실행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국민은행장 인사에 쏠리는 눈…‘선별 쇄신’ 가늠자
연말 사장단 인사의 방향을 가늠할 첫 자리는 국민은행장이다.
이환주 행장은 첫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기존 KB금융의 인사 관례를 토대로 보면 성과 평가를 거쳐 1년 추가 임기를 받을 수 있는 위치다. 다만 그룹 수장이 바뀌는 시점과 은행장 임기 만료가 겹쳤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단순한 연임 심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민은행은 그룹 이익의 가장 큰 축인 핵심 계열사다. 이 후보 역시 2022년부터 3년간 국민은행장을 지낸 만큼 은행 조직과 주요 경영진, 영업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 행장을 재신임한다면 새 회장 체제가 경영 연속성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비은행 계열사를 중심으로 인적 쇄신에 나선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반대로 첫 임기를 마친 국민은행장까지 교체 대상에 포함한다면 연말 인사의 폭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국민은행장 인사는 사장단 전체 인사의 방향을 가늠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
◇ 새 회장 첫 인사 때마다 컸던 교체폭…이번엔 조건 다르다
KB금융의 과거 인사를 보면 새 회장 취임 직후 계열사 경영진이 큰 폭으로 바뀐 사례가 있다.
양종희 현 회장은 2023년 11월 취임한 뒤 첫 계열사 CEO 인사에서 당시 임기가 끝나는 8개 계열사 9개 대표 자리 가운데 6곳에 새 인물을 추천했다. KB증권 WM과 KB손해보험, KB자산운용, KB캐피탈, KB부동산신탁, KB저축은행 수장이 교체됐다.
윤종규 전 회장도 2014년 11월 취임 직후 그해 말 계열사 대표 7명을 포함한 대규모 경영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이번 인사의 직접적인 잣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윤 전 회장 취임 당시에는 이른바 ‘KB사태’ 이후 조직을 수습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고, 양 회장의 첫 인사 역시 장기 재임 CEO 교체와 새 체제 출범이 맞물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KB금융은 현재 실적과 자본여력 등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 후보도 기존 경영과 전략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회추위가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새로운 수장을 택했다는 사실만으로 계열사 CEO까지 일괄 교체할 이유는 부족한 셈이다.
그렇다고 변화의 폭이 작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10명의 임기가 한꺼번에 끝나고, 이 가운데 절반이 이미 3년의 임기를 채운 상황 자체가 사장단을 재편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 ‘몇 명 교체’보다 중요한 첫 인사의 기준
이번 연말 인사는 이재근 체제의 인사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 첫 사례다.
3년을 채운 CEO를 관례대로 교체하는 데 그칠지, 첫 임기를 마친 대표까지 다시 평가해 폭을 넓힐지에 따라 새 체제의 인사 색깔도 달라진다. 실적이 우수한 CEO를 얼마나 인정할지, 단기 실적 이외에 미래 성장성과 내부통제, 조직 혁신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평가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특히 이 후보는 인사를 회장 개인의 판단보다 시스템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기존 절차를 통해 후보를 검증하고 전문성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회추위가 주문한 ‘세대교체’와 이 후보가 말하는 ‘연속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첫 사장단 인사의 핵심 과제가 됐다.
이 후보는 14일 계열사 CEO 인사와 관련해 “세대교체는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KB’라는 의미는 나이보다는 의사결정을 보다 신속하고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젊은 것이고 세대교체”라며 “나이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고 역량과 직원과의 호흡, 조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가 누구인지 생각해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회장 교체만으로 사장단을 대폭 바꾸기에도, 회추위가 ‘변화와 세대교체’를 주문한 상황에서 기존 체제를 그대로 이어가기에도 부담이 있다. 결국 연말 인사는 이재근 체제가 성과와 변화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다. 인사 결과에 따라 새 체제의 경영진 구상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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