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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월)

[전문가 칼럼] 가야∙백제의 붕괴,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동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일본열도는 약 3만 년 전부터 문화가 형성되어 한반도와 긴밀히 교류하였으나, 1만 년 전 해수면이 상승하며 왕래가 어려워지자 독자적인 발전을 거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2천 년간 한반도와 대륙에서 일본으로의 인구 이동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특정 가문을 제외하고 민족이나 성씨의 정체성은 기록이나 의식 속에만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는 고대 문명 형성기에 대륙 문명의 전수자였고, 일본열도는 근대 문명 형성기에 서구 문명의 전수자 역할을 수행했다.


1) 백제인의 아스카 문화

동아시아에 전란이나 큰 혼란이 발생할 때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일본열도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후반, 중국 5호 16국 시대의 전란과 고구려 장수왕의 백제 공격 등으로 인해 왜(倭)로 유민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당시 백제와 왜는 왕자를 파견하고 군사 동맹을 맺으며 관계를 강화했다. 백제 문화가 왜에 전파되고 정착하면서 양국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왕은 태자를 보내 우호 관계를 맺기도 했다(340).


아직기(阿直岐)는 왜에 말 사육과 승마술을 전했으며, 왜의 태자였던 우지노와키이라쓰코의 스승이 되었다. 응신(오진)천황이 그에게 뛰어난 스승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자 아직기는 왕인(王仁)을 소개했다. 응신천황은 백제 근초고왕(또는 근구수왕)에게 유교 경전에 밝은 스승과 역박사(曆博士)를 요청했고,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건너가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그는 ‘후미노비토(書首)’와 ‘후미노오비토(文首)’ 가문의 시조가 되었으며, 사이린지(西琳寺)에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


문헌상 왕인의 출생 기록은 명확하지 않으나, 전남 영암의 월출산 성기동이 그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후손들과 국가의 지원으로 이곳은 유적지로 조성되었다. 매년 3월, 이곳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액운을 털어내는 계욕(禊浴) 의식을 치르며 왕인 박사와 같은 인물이 나기를 기원한다. 창덕궁 소요정(逍遙亭) 역시 조선 시대에 국왕이 이러한 계사(禊事) 의식을 행하던 장소였다.

 

 

 

진사왕이 왜의 사신에게 예의를 다하지 않자, 왜는 기노쓰노 스쿠네(紀角宿禰)를 파견했고 그해 진사왕이 사망했다(일본서기, 392). 《삼국사기》는 진사왕이 사냥 중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살해설이 유력하다. 이후 아신왕은 태자 전지(腆支)를 왜에 보냈는데, 이는 기록상 최초의 왕족 파견이었다(397). 백제와 왜는 397년부터 427년까지 7차례에 걸쳐 사절단을 교환했으며, 왕족과 태자가 왜에 머물며 혼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궁월군(弓月君)은 하타씨(秦氏)의 시조로 야마토에 정착했으며, 후손들은 우즈마사(太秦)로 성씨를 바꾸고 코료지(廣隆寺)를 창건했다. 전지왕은 누이동생 신제도원(新齊都媛) 등을 보냈고, 비유왕과 개로왕 역시 왕녀와 왕족을 파견했다. 특히 개로왕의 동생 곤지(昆支)가 파견된 후 아스카에는 그를 모시는 아스카베(飛鳥戶) 신사가 세워졌다. 훗날 아좌태자는 일본 불교의 성자인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597).

 

 

백제가 왜에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야마토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을 '이마끼아야(今來漢)'로 불렀다(463). 개로왕 때 도공장인 신한고귀가 토기제작 기술을 전파하였다. 직조장인 소소는 5세기 전후에 직조기술을 가르쳤다. 주조장인 인번이 술을 빚는 기술을 전하고 주신으로 신사에 모셔졌다(고사기). 백제는 단양이(513), 고안무(516), 마정안(531), 문휴마나와 왕보손(544), 동성자언(547), 왕유능타와 동성자막고(554), 마나문노(588), 마미지(612) 등을 파견했다.


백제는 박사를 왜에 파견하여 왜에 기술을 전수하였다. 오경박사 단양이는 오경(五經)에 능통하여 유학을 전파하였고, 의박사 왕유능타는 의약기술을 전파하였다. 와박사 마나문노는 기와와 전돌의 제작기술을 전하여 사찰과 왕궁의 건축에 기여하였다. 조각가 도리는 불상을 제작하고, 초기 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악사 마미지는 음악과 춤을 가르쳐서 일본 전통음악의 선생이 되었다.

 

2) 백제 유민의 일본 정착과 집권세력화

왜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백강전투에 참여했다(663). 백제 부흥전쟁이 실패하자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왜군을 따라서 일본 열도로 이주하였다. 왜군이 남도 지역에 상륙하여 백제인을 수송해 왔다(663년 10월). 백제 왕족, 귀족과 일반인들이 오사카, 교토, 규슈 일대에 정착했다. 여자신, 귀실집사(기시쓰 슈시), 사택소명, 사비복부, 곡나진수, 목소귀자, 억례복류 등도 정착했다. 일본은 신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정체성을 새롭게 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자 침략에 대한 우려로 일본은 긴장했다. 귀족들은 쓰시마, 이키섬, 규슈에 수비병을 배치하고 봉화대를 설치하였다(664년 5월). 나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쓰시마에서 북규슈, 아스카에 이르는 요충지에 13개의 성을 쌓았다(일본서기, 속일본기).


쓰시마의 가네다노키(金田城), 규슈의 나가도노성(長門城), 오노조성(大野城), 키이조성(基肄城), 야마토의 다까야스노키(高安城), 사누키(讚岐)의 야시마노키(屋島城) 등을 쌓았다. 해발 200~400m의 산 중턱에 높이 1미터 내외로 산을 둘러서 신롱석을 쌓았다. 그리고, 해안 수비병인 사카모리(崎守)가 축조된 성을 중심으로 여러 곶(崎)에 배치되어 해안을 경비하였다.

 

 

백제 출신의 억례복류와 사비복부가 오노조성(大野城)과 키이조성(基肄城)을 축조했고(664), 달본춘초가 나가도노성(長門城)(665), 규슈는 평지성인 미즈성(水城)과 산성인 오노조성으로 방어했다. 미즈성은 길이 약 1200미터로 바깥쪽 도랑을 평소에 비우고 안쪽에 물을 채웠다. 유사시 안쪽 물이 바깥쪽 도랑으로 흘러서 깊은 해자가 되도록 했다. 나중에 오노조성은 둘레 약 6.5킬로미터로 대외 교류 창구인 다자이후(大宰府)를 보호하면서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이곳에서 신라 침공계획을 세웠다(762).


실력자였던 후지와라 노후히토는 백제의 유민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은 백제왕의 작위를 받았다(속일본기). 왜는 백제 난민 4백여 명에게 정착지를 제공했고(665년), 2천여 명에게 집터를 지원했다(일본서기, 666).

 

왜는 16등제에서 26등제로 관직을 확대하여 약 70명의 백제인을 등용했다(671). 100년 후에 귀족의 3분의 1이 백제계였다. 9세기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유명한 학자로 규슈의 다이자이후 신궁인 데만구(天滿宮)의 신이 되었다.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용의 후손들이 히라가타(枚方)시에 씨사인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와 사찰인 백제사(百濟寺)를 세웠다.

 

가야는 600여 년 동안 한반도 남동쪽을 지배했지만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일본서기 가라와가라국왕기본한기’에 있다. 가야의 기원과 멸망에 대하여 4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 금관가야가 멸망하면서 중심층이 규슈로 이동했다. 둘째, 가야는 토착 민족과 정복민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셋째, 가야는 왜족과 가야족으로 구성된 혼합 사회였다. 넷째, 변진족이 신라와 가야로 분리되었다. 6세기에서 7세기 후반까지 차례로 가야, 백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많은 유민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1920년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인구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류하였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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