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기준금리 방향과 관련해 “인상 사이클로 넘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금통위원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드문 사례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통화정책 기조 전환 가능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유 부총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개최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하보단 인상 사이클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 견해”라며 “금리 인하를 멈추고 금리 인상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물가와 성장 흐름이 기존 전망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금리 인상 가능성 근거로 들었다. 유 부총재는 “성장률은 (2월 전망 2.0%)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물가상승률은(전망치 2.2%)보다 높아질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선 “확률적으로 있다”고 말하며 여지를 열어뒀다.
◇ 금리 인상 시그널…점도표 상향 가능성
이번 발언의 핵심은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정책 경로 자체가 바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유 부총재는 “5월 금통위까지 확인이 된다면 2월 점도표보다는 올라갈 여지가 많이 있다. 확률분포가 전반적으로 조금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점도표는 금통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기준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한 전망 지표로, 이 수치가 상향 조정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물가 상방 압력의 배경으로는 중동발 유가 충격이 거론됐다. 그는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만 경기 판단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완화된 시선이 제기됐다. 유 부총재는 “반도체 사이클이 굉장히 강하게 나오면서 수출 중심으로 좋아지고 정부 부양책으로 소비심리도 많이 살아났다. 경기는 애초 생각보다는 크게 나빠지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진 반면 성장 둔화는 제한되면서, 금리 인하 여건이 약화된 상황이다.
◇ 5월 금통위에 쏠린 시선
유 부총재 발언 이후 시장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4일 오후 2시 35분 기준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3.9% 초반에서 움직이며 4%에 근접했다. 같은 시각 3년물 금리도 3.61%대에서 상승 흐름을 보였다.
특히 장기물이 단기물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금리 곡선 전체가 위로 이동했다. 단순 금리 인상 기대를 넘어 높은 금리 수준이 길어질 수 있다는 쪽으로 시장 인식이 전환되는 흐름이다. 그간 채권시장을 지탱해온 연내 금리 인하 기대도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특히 유 부총재의 발언은 오는 28일 개최되는 금통위와 맞물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신현송 신임 총재 취임 이후 첫 금리 결정 회의다.
한은은 현재 기준금리를 2.50%로 7회 연속 동결한 상태다. 물가 부담과 성장 둔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책 선택이 제한돼 있었으나, 최근 흐름은 물가 쪽으로의 기울기를 키우는 모습이다.
앞서 신 총재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상황에선 물가, 특히 한국처럼 유가에 민감한 경제에선 유가 충격이 상당히 큰 만큼 물가에 무게를 둘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달 개최될 금통위는 단순한 금리 결정을 넘어 인하 종료 여부와 향후 경로에 대한 신호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의 지속 여부와 글로벌 통화정책 흐름, 환율 변동성 등이 대표적이다. 유 부총재 역시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얼마나 더 파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금리 방향이 명확해지기보다는, ‘인하 종료 → 동결 장기화 → 인상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점진적으로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일 보고서에서 “많은 것이 중동 이슈 장기화 여부에 달려있지만 중동 이슈가 장기화되면 물가가 오르는 것 뿐만 아니라 경기에 미칠 충격도 감안해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가더라도 현재 시장이 가정하는 경로는 과도하다는 판단”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가파른 금리 하락세가 전개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다수 지역에서 금리인상 전망이 부상하고 있고 5월 금통위까지 경계감은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 지명자에 대한 성향파악이나 기존 신성환 금통위원 퇴임 이후 점도표 변화 등 5월까진 경계요인이 다수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도 지난달 30일 보고서를 통해 “1분기 GDP 서프라이즈 이후 고유가로 인한 성장 둔화 가능성이 시장 재료로서의 영향력 약화됐다. 반도체 중심 성장이 지속되면서 2% 중반 이상의 성장 가능성이 부각, 이란의 호르부즈 해협 봉쇄 조치가 완화될 경우 오히려 수요 개선 기대가 확대되면서 경기 호조 속 금리 인상 가능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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