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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월)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돼지국밥 단상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돼지국밥 한 그릇에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시간이 담겨 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 그 안에 스며든 고기와 뼈의 깊은 맛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을 올리고 끓이고, 거품을 걷어내고, 다시 끓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국밥이 완성된다. 나는 이 음식을 단순히 ‘좋아한다’기보다, 어떤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기억한다.

 

돼지국밥의 유래는 밀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과 피난의 시기를 거치며 값싸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그 유래와 조리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뼈와 고기를 오랜 시간 고아 내고, 잡내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손질하며, 불의 세기와 시간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과정은 단순한 조리를 넘어 하나의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과정의 축적이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든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를 따라 돼지국밥집에 가곤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화려한 음식이 아니어도 괜히 마음이 든든해지던 그 한 그릇. 아버지는 말없이 국밥을 드셨지만, 그 모습에는 묵묵한 책임감과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곁에서 국밥을 먹으며 ‘버틴다’는 것, ‘지켜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배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겨울철이 되면 집안의 풍경은 또 달라졌다. 어머니는 돼지국밥을 자주 끓여 주셨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몸통의 살코기가 아니라 돼지머리 눌린 부위를 사용해 국밥을 만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더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필요한 재료였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국물이 끓어오르며 집안 가득 퍼지던 냄새, 그릇에 담긴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던 순간의 온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국물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졌고, 그 든든함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돼지국밥을 그렇게 자주 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국물 음식의 깊이와 균형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이제는 국물의 미묘한 차이를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그 감각은 오랜 시간 쌓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 국밥을 오래 먹고 경험을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밥 전문가’가 되었듯이, 관세행정 역시 경험과 축적을 통해 ‘관세행정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의 경험, 반복된 판단, 그리고 축적된 감각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짜 전문성이 완성된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바라보는 관세행정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관세행정은 겉으로 보면 단순히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절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험을 걸러내기 위한 정교한 분석,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준 설정, 그리고 현장에서의 끊임없는 확인과 판단이 쌓여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축적될 때 비로소 국가의 경제 국경은 안정적으로 지켜진다.

 

돼지국밥이 오랜 시간과 정성을 통해 깊은 맛을 만들어내듯, 관세행정 역시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축적의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서두르면 국물은 탁해지고 맛이 흐트러지듯, 행정 역시 조급함에 치우치면 빈틈이 생기기 쉽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과정 하나하나를 성실하게 쌓아갈 때, 국민과 시장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축적된 시간과 일관된 원칙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또한 돼지국밥 한 그릇이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듯, 관세행정도 통관, 감시, 관세수사, 관세조사 등 다양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어느 한 기능만으로는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연결할 때 빈틈없는 경제 국경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는 개인의 역량을 넘어 조직 전체의 조화와 협력이 만들어내는 성과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돼지국밥은 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값비싼 재료나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따뜻함과 실용성이 그 본질이다.

 

이 점은 관세행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관세청이 수행하는 역할은 국가 경제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이지만, 그 절차가 국민과 기업에게 불필요한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차는 공정해야 하지만 복잡해서는 안 되고, 기준은 엄격해야 하지만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국민과 기업이 관세행정을 이용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정 서비스의 출발점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신속하게 처리되며, 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행정. 그것이 국민이 체감하는 좋은 행정이다.

 

최근 관세행정은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위험 요소는 보다 정밀하게 선별하고, 정상적인 거래는 더욱 신속하고 편리하게 처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교함을 높이고, 보이는 영역에서는 편리함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현대 관세행정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나는 여전히 돼지국밥을 즐겨 먹는다. 단순히 맛 때문만이 아니다. 그 한 그릇 속에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삶의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기억 속에서 배운 묵묵함과 책임감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관세행정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들이 결국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국민에게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다가가야 한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돼지국밥처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관세행정. 그 속에서 공정성과 신뢰, 그리고 국가의 경쟁력이 함께 완성된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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