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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6 (화)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 박상봉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너는 물보다 더 떨고 있었지

 

물속 돌멩이 사이로 지나가던 말들

그 아래 깔린 웃음과 울음의 비늘들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는 속내를 말하지 않았고

발목까지 차오른 물의 체온으로

서로를 오래 쥐고 있었지

 

그는 가장 차가운 곳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어

나는 그가 남긴 물길 따라 걸었지

마치 오래된 문장을 뒤따라가는 미완의 시처럼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그는 늘 반쯤 웃으면서 늘 반쪽은 외면하였지

하지만 그게 내 이름 같았고

내가 가장 사랑한 부름이었지

 

물살은 빠르고 마음은 느렸어

그는 물을 거슬러 걸었고

나는 물결에 밀려 자꾸 뒤처졌지만

그는 한 번도 나를 놓고 멀리 가지 않았어

걸음은 달라도 그림자는 나란했지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그는 둑에 앉아 돌멩이를 튕겼고

나는 물살을 헤아리며 마음속 한 문장을 완성했지

이 사람을 오래 사랑하겠구나

말로 한 번도 내뱉지 못했지만

 

그가 떠난 것도 가을이었어

하늘이 더 높아지고 물은 더 깊어졌지만

내 마음은 얕아서 그의 이름 제대로 부를 수 없었지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냉천 갈 때 했던 말들

웃음 사이로 번졌던 나뭇잎 팔랑이는 소리

지금도 냉천 가면 물소리에 섞여 흐르겠지

 

나는 이제 물가에 혼자 앉아

돌멩이에 말 걸어본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물이 솟고 기억이 고이고

아무도 보지 못한 문장 하나

그 자리에 흐르듯 남아 있는

 

ㅡ《불교문예》2025년 가을호

 

[詩 감상] 양현근 시인

 

물의 기억, 사랑의 온도

 

박상봉 시인의 「우리 함께 냉천 갈 때」를 읽고 있으면, 문득 물소리를 듣는 일이 하나의 시 읽기처럼 느껴집니다. 냉천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가장 가까이 머물렀던 시간이며 끝내 말로 다 건너지 못한 마음의 자리로 다가옵니다.

 

박상봉 시인은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예술과 예술 사이의 ‘통함’을 시의 중요한 가치로 삼아온 시인입니다. 1980년대 동인지 활동 이후, 대구 봉산동 ‘시인다방’을 중심으로 시와 음악, 그림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공간을 만들어왔던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실천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와 문화 활동을 통해 문학을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확장해 왔으며, 이러한 시적 태도는 이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너는 물보다 더 떨고 있었지”

 

이 첫 문장은 단순한 기억의 재현을 넘어,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의 미세한 떨림을 선명하게 포착합니다. 물의 차가움이 바깥의 온도라면, 떨림은 마음 안에서 번져 나오는 체온일 것입니다. 시인은 말해진 것보다 말하지 못한 감정을 더 깊이 응시합니다. “물속 돌멩이 사이로 지나가던 말들”과 “웃음과 울음의 비늘들”은 관계가 쌓아온 시간의 결을 보여줍니다.

 

“물살은 빠르고 마음은 느렸어”

 

이 구절은 관계의 본질을 단순하면서도 깊게 보여줍니다. 세상은 앞서 흘러가지만 마음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합니다. 그는 물을 거슬러 걷고 화자는 뒤처지지만, “걸음은 달라도 그림자는 나란했지”라는 고백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동행’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이 시는 음악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냉천 갈 때”라는 반복은 후렴처럼 돌아오고, 기억은 조금씩 변주되며 흐릅니다. 시와 음악, 그리고 한 폭의 풍경화가 서로 포개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마지막에 화자는 홀로 물가에 앉아 돌멩이에 말을 건넵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에 물이 고이고 기억이 머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문장 하나”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 사랑의 문장처럼 남습니다. 어쩌면 가장 오래 흐르는 사랑은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오래 되풀이되는 미완의 문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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