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매대에 주요 제약사 상표가 붙은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 진열돼 있다. 유산균, 루테인, 멀티비타민 등 10일 치 분량 제품의 가격은 5000원 안팎이다. 과거 약국이나 온라인몰에서 1~2개월분씩 대량 구매하던 영양제가 도시락이나 캔커피 같은 ‘일상 소비재’로 바뀌고 있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다이소, 올리브영 등 비(非)약국 오프라인 채널들이 건기식 판매 점포와 품목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3000~5000원대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경험하게 하는 이른바 ‘엔트리(Entry·첫 구매)’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다.
◆ 6조원 건기식 시장, 오프라인 새 격전지
국내 건기식 시장의 주력 유통 채널은 온라인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기식 시장 규모는 5조9626억원으로 추산된다. 채널별 점유율은 인터넷몰(71%)이 대형할인점(5.9%)과 드럭스토어(0.7%)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대형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건기식 매대를 확대하는 주요 원인은 소비자 접점 강화에 있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부터 올리브영·다이소·편의점 등 대형 유통사들이 판을 키우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다이소 건기식은 지난해 2월 30여 종에서 올해 2월 100여 종으로 급증했고, GS25와 CU 역시 소용량 건기식 품목과 매출을 가파르게 늘려가고 있다.
여기에는 유통업계의 절박함도 깔려있다. LS증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주요 편의점 4사 점포 수는 5만4853곳으로, 1988년 편의점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68곳)했다. 점포를 늘리는 양적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기존 점포의 객단가를 끌어올릴 핵심 상품군으로 건기식을 낙점한 것이다.
◆ 초저가·접근성·큐레이션…채널별 3색(色) 생존 전략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각자의 무기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 CU는 지난해 7월 종근당·동화약품과 손잡고 3900~5000원대 소용량 제품 11종을 내놨다. GS25 역시 지난해 8월 5000원 이하 상품을 내세워 출시 두 달 만에 80만 개의 판매고를 올렸다. 편의점 특유의 ‘근거리 접근성’과 ‘즉시 구매 편의성’을 극대화한 전략이다.
다이소의 핵심 무기는 단연 ‘가격’이다. 1000~5000원 균일가 정책으로 고물가 시대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생활용품을 사러 온 소비자가 계산대 앞에서 영양제를 즉흥적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제약사들 역시 다이소를 젊은 층에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오프라인 실험대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CJ올리브영은 2030 여성과 외국인을 겨냥한 ‘웰니스(Wellness) 큐레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건기식을 이너뷰티(Inner Beauty·먹는 화장품) 영역으로 확장하고, 웰니스샷이나 구미(젤리) 등 섭취 편의성이 높은 제품을 전면에 배치해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차별화했다. K-뷰티 선호도 증가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쇼핑 품목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 채널별 세분화 국면…약국은 ‘전문 상담’ 차별화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건기식 관련 지출은 유지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건기식 트렌드 리포트 2026’에 따르면, 건기식 섭취자의 49.8%가 전년과 동일한 지출 수준을 유지했으며 38.3%는 지출을 늘렸다고 응답했다. 다만 고가의 대용량 제품 대신 5000원 안팎 소포장 제품으로 눈을 돌려 가성비를 챙기는 추세다.
유통 채널 다변화에 따라 기존 주요 판매처였던 약국과의 역할 조정은 과제로 꼽힌다. 약국 업계는 고령층 등을 위한 ‘전문 상담’ 기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현행법상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의약품(13개 품목)은 24시간 연중무휴, 판매자 교육 등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반면 건기식은 식품으로 분류돼 쉽게 살 수 있지만, 자칫 치료 효능이 있는 의약품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법제처가 건기식의 부당 표시 및 과대광고를 엄격히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기식 시장은 대용량 구매(온라인)와 복약 상담(약국)에서 즉각적 소비(편의점, 다이소) 등으로 역할이 세분화 되는 추세”라며 “소비자 일상과 맞닿은 매대를 선점하려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 간 점유율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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