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정부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조일수록 직장에 따른 내 집 마련 격차가 더 선명해지고 있다. 일반 차주는 소득 대비 상환 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심사와 주택가격별 대출한도 규제를 함께 적용받지만, 일부 대기업 임직원은 회사 사내대출을 통해 수억원대 저리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같은 집을 사려고 해도 누군가는 은행 창구에서 DSR을 따지고, 누군가는 회사 복지제도까지 포함해 자금 계획을 다시 짠다. 대출 규제의 체감 강도가 소득이나 집값뿐 아니라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5억원 저리 주택자금 지원은 이런 격차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8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가 합의한 ‘주택안정 대출 제도’는 임직원에게 최대 5억원을 연 1.5% 금리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원 대상은 무주택 임직원뿐 아니라 기존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한 1주택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는 이 조건이 갈아타기 수요와 맞물릴 경우 수도권 선호 지역의 매수 여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상 주택은 매매가 25억원 이하의 단독주택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 분양권, 오피스텔이다. 상환 방식은 10년 분할상환 또는 3년 거치 후 10년 분할상환 중 선택 가능하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13만명에 달하는 만큼 제도 적용 가능 범위는 넓지만, 신청 규모는 실제 시행 이후에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은행 대출 조인 사이, 회사 대출이 변수로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부분은 금리다. 연 1.5% 금리는 은행권 주담대 금리와 비교하면 부담이 낮다. 같은 금액을 빌려도 매달 이자 부담과 전체 상환 비용이 달라진다. 은행 대출만으로는 원하는 지역이나 가격대의 주택을 포기해야 했던 차주에게 사내 대출은 선택지를 다시 넓히는 요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은행권이 민감하게 보는 쟁점은 회사에서 빌린 돈이 대출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되느냐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차주는 기존 대출 원리금 상환액까지 포함해 DSR 심사를 받는다. 대출이 늘어날수록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이 커지고, 이에 따라 추가 대출 가능 금액도 제한된다.
반면에 사내대출은 금융회사가 영업 목적으로 취급하는 일반 여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업이 임직원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자금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 신용공여 정보와 같은 방식으로 공유되지 않거나, DSR 산정 과정에서 차주의 기존 부채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사내대출이 은행권 중심의 가계대출 관리 체계 밖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은행 대출을 조여 주택시장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관리하더라도, 기업 내부에서 공급되는 주택자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은행 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사내 대출이 있는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 사이의 체감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사내대출이 있다고 해서 주택 매수 여력이 곧바로 5억원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사내대출을 실행하면서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은행이 추가로 빌려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줄어든다. 반대로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거나 은행 심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사내대출이 은행 대출과 별도로 붙는 자금처럼 작동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내대출은 은행권 대출 규제로 줄어든 주택 구입 자금 여력을 일부 보완하는 통로가 된다.
결국 삼성전자 사내대출의 실제 파급력은 대출 한도와 금리 자체보다 담보 설정 방식, 은행 대출과의 연계 구조, 실제 신청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취재진에 “사내대출이 5억원이라고 해서 매수 여력이 곧바로 5억원 늘어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회사가 주택에 선순위 근저당을 설정하면 은행의 추가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도 “만약 담보 설정 없이 운영되거나 은행 심사에서 기존 채무로 확인되지 않는 구조라면 사실상 은행 대출과 별도의 자금으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복지라서 못 막고, 부채라서 못 놓는 당국
사내대출을 둘러싼 파장이 삼성전자 한 곳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최대 1억원 규모의 주택자금 융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달 임금협상에 들어갈 예정인 SK하이닉스 노조 역시 삼성전자 사례를 계기로 유사한 수준의 주택자금 지원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내대출 확대가 민감한 이유는 차주가 접근할 수 있는 주택 가격대와 지역을 바꿀 수 있어서다. 주택 매수를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대출 가능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지역과 면적, 구축·신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은행 대출만으로는 가격대를 낮춰야 했던 차주라도 사내대출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면 같은 예산표 안에서 선택지가 달라진다. 특히 수도권 선호 지역처럼 매물 가격 차이가 수억원 단위로 벌어지는 시장에서는 저리 자금의 존재 자체가 매수 심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은행권이 신경 쓰는 부분은 사내대출이 시장을 얼마나 움직이느냐보다 차주의 실제 상환 부담을 대출 심사 과정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느냐다. 주택 구입 자금의 일부가 은행이 아닌 기업 복지제도를 통해 공급되면 차주의 전체 부채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 복잡해진다. 은행권 대출 총량은 관리되더라도, 주택시장으로 들어가는 자금 흐름 일부가 규제망 밖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도 사내대출이 주택자금 조달 경로로 확산될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지만, 직접 규제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금융기관이 영업으로 취급하는 대출과 기업이 복지 차원에서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자금을 같은 규제 체계에 넣기에는 법적·제도적 명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내대출 관련 상황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사내대출을 막기도, 그대로 두기도 쉽지 않다. 기업 복지라는 사적 계약 영역에 직접 개입하면 과도한 규제로 비칠 수 있고, 반대로 주택 구입 목적의 사내대출이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 은행권 중심의 가계대출 관리만으로는 정책 효과를 충분히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당국은 직접 규제보다 실태 파악과 간접 관리에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사내대출 규모와 조건에 대한 공시 강화, 회계처리 기준 정비, 근저당권 설정 방식 점검, 보증기관 보증액 모니터링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5억원 사내대출은 한 기업의 복지 확대를 넘어, 대출 규제의 체감 격차를 드러낸 사례가 됐다. 기업이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복지성 자금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지만, 주택 구입 자금의 일부가 금융규제 밖에서 움직일 경우 차주의 전체 상환 부담을 어떻게 파악할지는 별도 과제로 남는다. 사내대출 논의가 단순한 복지 경쟁이 아니라 가계부채 관리의 새 변수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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