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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일)

[인터뷰] "끝난 줄 알았다"…전성기 3년, 무명 22년 버틴 가수 한경일의 고백

아파트 축제서 존재감 확인…대승KBM 홍보이사로 새 출발
전성기 3년 뒤 찾아온 긴 공백…축가·레슨으로 생계 이어가
우울증·불면증에도 음악 놓지 않아…11년간 음원 150곡 발표

 

(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20대 후반에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40대 후반이 된 지금 다시 기회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 발라드곡 '내 삶의 반'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 한경일.

 

한때 그의 노래는 거리와 노래방, 라디오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음악 활동을 접은 줄 알았다.

 

그러나 한경일은 말한다.

"저는 노래를 그만둔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아무도 몰랐을 뿐이죠.“

 

25년 가수 인생 가운데 전성기는 3년에 불과했다. 나머지 22년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무명 가수의 시간'이었다.

 

◇ "히트곡은 남았지만, 제게 남은 건 없었습니다“

 

한경일은 2002년 데뷔 이후 '내 삶의 반', '한 사람을 사랑했네', '슬픈 초대장'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주목받았다.

 

특히 '내 삶의 반'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대표하는 곡이다.

 

하지만 히트곡 이후의 삶은 대중이 상상하는 것과 달랐다.

 

그는 과거 슈퍼스타K5 출연 당시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소속사의 노이즈 마케팅 사건 이후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사건 이후 방송 출연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회사 차원의 해명이나 후속 대응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경일은 약 8년간 소속사에 몸담았지만 실제 활발하게 활동한 기간은 3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정산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내 삶의 반'으로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게 온 것은 없었습니다.“

 

"20대를 다 음악에 쏟아부었는데 30대가 되니 아무것도 없는 상태더라고요.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이 시작됐다. 불안감도 커졌다.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술과 담배에 의존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생계는 현실이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결혼식 축가와 보컬 레슨이었다.

 

지금은 가수들의 축가 무대가 자연스럽지만 당시에는 유명 가수가 결혼식 축가를 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한경일은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창피하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지인의 부탁으로 사례비 없이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축가 섭외가 늘었고 그는 노래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보컬 레슨도 병행했다.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음악 교육 현장에 몸담았다.

 

그 와중에도 음악은 포기하지 않았다.

34세 때 출연한 슈퍼스타K5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방송 이후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고 행사나 축가 문의도 늘었어요."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재기의 기회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슈퍼스타K5 이후 필승불패제작진들과 함께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11년 동안 한 달에 한 곡씩 음원을 발표했다. OST까지 포함하면 발표곡은 150곡이 넘는다.

 

대중의 관심은 줄었지만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처럼 매달 음원을 발표하며 가수 생활을 이어갔다.

 

"어떤 달은 OST까지 세 곡, 네 곡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홍보를 못 하다 보니 우리만 아는 앨범이 돼 버렸죠.“

 

 

◇ 아파트 축제에서 찾아온 뜻밖의 기적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아파트 축제 무대였다.

약 4년 전부터 경기권 신도시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열린 축제 무대에 서기 시작한 그는 당시에도 생계를 위해 공연장을 가리지 않았다.

 

"생계가 걸려 있었으니까요. 공연이 있으면 어디든 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표곡 '내 삶의 반'을 부르던 중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넘겼는데 주민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놀랐어요. 저는 이미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가 저를 가수로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아직 저를 가수로 기억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는 그 순간을 '다시 노래할 이유를 찾은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에게 아파트 축제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다시 노래할 이유를 찾은 공간이었다.

 

◇ 무대가 건강도, 인생도 바꿨다

 

한경일은 한때 가족 문제로 크게 소리를 지른 뒤 성대결절과 후두염을 겪었다.

노래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 축제 무대를 계기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발성 훈련을 받으며 목 상태를 회복하고 있다.

건강도 달라졌다.

공연 후 주민들과 찍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우울감이 찾아오는 날은 있다.

하지만 무대에 서면 달라진다.

 

"이상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공연을 하면 다시 괜찮아집니다. 그래서 더 무대에 서고 싶어요."

 

◊ "그래도 아직 안 늦은 것 같습니다“...대승KBM 홍보이사로 발탁

 

아파트 축제를 통해 새로운 인연도 생겼다.

 

최근 그는 인천 연수구 기반 공동주택 관리 전문기업 대승KBM의 홍보이사 역할을 맡게 됐다.

수년간 전국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입주민들과 소통해 온 경험을 높게 평가받은 결과다.

 

조원석 대승KBM 대표이사는 "한경일 씨가 수년간 전국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입주민들과 소통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그 경험이 회사와 입주민을 연결하는 데 큰 강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홍보 모델이 아니라 문화행사와 입주민 소통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노래로 만나든 다른 방식으로 만나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활동도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신곡 '이별의 아픔 속에 살아가라'를 발표했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와의 협업도 논의 중이다.

 

인터뷰 말미, 기자는 20대의 한경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그는 "당당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보복이 두려워도 따질 건 따지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직 안 늦은 것 같습니다."

 

전성기 3년.

무명 22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사라진 가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경일은 그 시간 동안에도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11년 동안 매달 음원을 발표했고 OST를 포함해 150곡이 넘는 노래를 남겼다.

 

다만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사람들 앞에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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