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25.8℃흐림
  • 강릉 28.4℃흐림
  • 서울 26.2℃구름많음
  • 대전 24.8℃맑음
  • 대구 27.0℃구름많음
  • 울산 25.3℃맑음
  • 광주 26.3℃맑음
  • 부산 25.7℃맑음
  • 고창 25.7℃맑음
  • 제주 28.0℃구름많음
  • 강화 24.9℃구름많음
  • 보은 23.8℃구름많음
  • 금산 23.6℃맑음
  • 강진군 24.3℃맑음
  • 경주시 24.6℃맑음
  • 거제 24.0℃맑음
기상청 제공

2026.07.11 (토)

[여행칼럼] 전주 콩나물국밥 — 남부시장, 국밥 한 그릇의 추억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유년 시절을 진안과 삼례에서 보냈기에 지금도 전주에는 어릴 적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전주에 내려가면 여전히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다가, 아침이면 어김없이 남부시장으로 향한다.

 

전주는 누가 뭐래도 콩나물국밥의 도시다. 시내 곳곳에 국밥집이 즐비하고, 웬만한 집에 들어가도 이름난 전문점 못지않게 제 맛을 낸다. 때문에 현지 친구들은 굳이 남부시장까지 가서 국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남부시장은 단순히 ‘맛집’ 이상의 공간이다. 수십 년 세월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문을 연 시장 골목을 걸어 들어가, 모주 대신 막걸리 한 사발 곁들여 국밥 한 그릇으로 쓰린 속을 풀어내야 비로소 ‘전주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전주 출장이 생겨 일을 마친 뒤 남부시장을 찾았다. 시장 안쪽 골목을 기웃거리며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가던 국밥집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세월 속에 사라진 건지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눈에 띄는 가게로 들어가 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사실 남부시장에서는 그렇게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크게 실망하는 일이 드물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방식과 비법으로 국밥을 끓여내지만,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기본 맛의 결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밥의 원조인 남부시장은 시장의 온기와 함께 옛 전주의 맛이 아직 남아 있다.

 

전주는 예부터 물이 좋고 콩 재배가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전주천 주변 맑은 물을 이용해 콩나물을 길러 먹었는데, 숙취 해소에 뛰어난 효능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국밥 형태로 발전했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콩나물은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었고, 술꾼들에게는 최고의 해장국이 되었다. 오늘날 전주 콩나물국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결국 긴 세월 서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음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밥을 기다리며 가게 안을 둘러보니 방송 출연 사진과 연예인 사인이 벽면 가득 붙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맛집 소개하는 방송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방송을 하나의 광고 수단처럼 활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부시장의 국밥집들은 대체로 기본 이상의 맛을 지켜낸다. 복잡한 골목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어느 집에 들어가도 속 든든한 한 끼를 만날 수 있다.

 

 

 

 

 

잠시 후 정갈한 밑반찬과 토렴한 국밥이 수란과 함께 나온다. 주인은 파김치와 무생채를 맛보라며 한 접시를 더 내어준다. 소소하지만 이런 모습에서 전주 특유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진다.

 

수란에 국물을 몇 숟갈 떠 넣고 김가루를 뿌려 휘휘 저어 먼저 후루룩 들이킨다. 펄펄 끓는 국밥에는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진 청양고추를 한 숟갈 넣는다. 그래야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한결 개운해진다.

 

무엇보다 콩나물국밥에는 오징어가 빠지면 섭섭하다. 오징어는 단순히 감칠맛만 더하는 것이 아니다.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국밥의 식감을 아삭한 콩나물과 함께 부드럽고 풍성하게 채워준다. 그래서 오징어 없는 콩나물국밥을 먹고 나면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뚝딱 한 그릇을 국물까지 비워냈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해 보이지만 국물 끝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깊은 맛, 아마 그것이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의 진짜 힘일 것이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시장 골목을 걸어 나오는데 문득 한 친구가 떠올랐다. 삼십여 년 전, 술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이곳 남부시장 국밥집에서 함께 해장을 하던 죽마고우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다. 마주 앉아 투덜거리며 늘어놓던 그 푸념도 더는 들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남부시장을 찾을 때마다 나는 그 친구가 더욱 그립다. 맞은편 빈 자리에 친구를 불러 앉혀 놓고, 울컥한 마음으로 소주 한 잔과 국밥 한 그릇을 비워내곤 한다.

세월은 흘러도 사람과 음식, 그리고 추억은 그렇게 국물처럼 오래 남는다.

 

전주에서 둘러볼 만한 곳

 

전주 남부시장

전주의 오래된 삶과 먹거리가 살아 숨 쉬는 시장이다. 새벽이면 국밥집과 시장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밤이 되면 청년몰과 야시장이 또 다른 활기를 만들어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 냄새 나는 전주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을 중심으로 수백 채의 한옥이 이어지는 전주의 대표 여행지다. 골목마다 오래된 담장과 작은 찻집, 공방들이 자리하고 있어 천천히 걷기 좋다. 서두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전주 특유의 느긋한 정취가 자연스레 스며든다.

 

 

경기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오래된 전각과 울창한 숲길이 어우러져 도심 한가운데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기분이 든다.

 

 

전주향교

오랜 세월 전통을 지켜온 유교 문화 공간이다. 봄이면 매화와 은행나무가 아름답고, 한적한 마당과 고즈넉한 건물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번잡한 관광지와는 또 다른 전주의 조용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동성당

한국 천주교 역사를 대표하는 성당 가운데 한 곳으로, 붉은 벽돌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한옥마을과 맞닿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으며,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번잡함과는 다른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과 전주의 정서가 함께 스며 있는 공간이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블로그 | 지구별 여행자 운영자

•스튜디오팝콘 대표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6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