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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일)

[기자수첩] 회계사·세무사, 60년 자격사 전쟁 "정작 납세자는 없다"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인공지능(AI)이 복잡한 세무조정과 회계감사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인간 전문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업무마저 기술 혁신의 영향을 받는 시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전문자격사 집단인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는 여전히 법률 문구 하나, 조례 단어 한 자를 둘러싸고 치열한 업역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9월 유동수 의원이 발의한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은 공인회계사를 세무 전문자격사로 명확히 규정하고 세무사법상 직무 수행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세무사회는 세무사의 독립적 지위를 훼손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회계사 업계는 자격체계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이제 국회를 넘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조례 개정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세무사회는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 사업비 정산 과정에서 수행되는 '검사' 업무에 세무사도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최근 서울 지역을 비롯한 전국 단위에 50여 개 지역 분회를 신설하며 조직 정비에 나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디지털 행정 환경이 고도화된 시대에 왜 다시 지역 단위 조직 확대가 필요했을까.

 

현재 정부는 보조금통합포털 'e나라도움'과 지방보조금 관리시스템 '보탬e' 등을 운영하며 보조금 집행과 정산 과정을 상당 부분 전산화하고 있다. 실제 보조금 검증 업무에서는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지정 검증기관으로 참여해 시스템에 등록된 자료와 전자증빙을 확인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환경만 놓고 본다면 특정 자격사가 반드시 해당 지역에 상주해야 하거나, 협회가 구 단위까지 조직을 세분화해야 할 필요성은 과거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회계사회가 지역 분회를 대폭 확대하자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회원 서비스 강화 차원을 넘어 지역 단위 조례 개정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적 대응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회계사회는 지역 현안 대응과 회원 소통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세무사회가 지역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조례 개정 활동을 펼치는 상황에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반면 세무사회는 다른 문제를 지적한다. 현재 일부 보조금 검증 시스템에서 세무사가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접근 범위와 참여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세무사회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현지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살피고 검증해야 실질적인 예산 집행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격 검증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업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현실도 존재한다.

 

보조금 정산 검증 업무는 건당 수수료 자체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특정 사업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수십 건, 수백 건이 한꺼번에 발주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 회계법인과 전문가들에게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장으로 평가된다. 세무사 업계는 이러한 시장 참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회계사 업계는 기존 검증 체계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 자격사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무사 제도는 1961년 당시 부족했던 회계 전문인력을 보완하고 세무행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로 도입됐다. 이후 오랜 기간 회계사에게 세무사 자격이 자동 부여됐지만, 2003년 세무사 명칭 사용 제한과 2012년 자동자격 부여 폐지 등을 거치며 양측은 독립된 자격사 체계로 완전히 분리됐다.

 

최근 갈등의 핵심은 대법원 판결(2022추5125)에 대한 해석이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법상 민간위탁 사업비 검사가 엄격한 의미의 회계감사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세무사회는 세무사의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근거로 해석하고 있으며, 회계사회는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확인하고 인증하는 업무는 장기간의 실무수습과 전문교육을 거친 공인회계사의 핵심 업무라고 주장한다.

 

결국 양측 모두 자신들의 논리를 갖고 있다.

 

회계사 측이 강조하는 공공·비영리 영역 회계 투명성 강화도 중요하다. 세무사 측이 주장하는 중소기업과 비영리단체의 서비스 접근성 확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문제는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정작 이 싸움의 영향을 받는 국민과 납세자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납세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업무를 누가 수행하느냐가 아니다. 회계사든 세무사든 투명하게 검증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금이 제대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결국 국민이 궁금한 것은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 그리고 '얼마의 비용이 드느냐'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전문자격사 제도가 60여 년 전 만들어진 업역 구분 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일 수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전문가 업무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시대에 과거의 구분 체계만으로 새로운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계산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의 논리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고, 어떤 제도가 국민 부담을 줄이고 재정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지 경쟁해야 한다.

 

60년 자격사 전쟁의 종착지는 어느 한 직역의 승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비용 부담은 낮추고 재정 집행의 투명성은 높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인 납세자가 원하는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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