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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시장이 금융권의 새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국내 신탁 수탁고가 1516조5000억원으로 1년 사이 10.0% 증가했다. 퇴직연금과 정기예금형 신탁이 외형 성장을 이끄는 가운데, 고령화에 따른 자산승계 수요를 겨냥한 유언대용신탁, 치매신탁, 보험금청구권 신탁, 가업승계신탁도 금융권의 후속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신탁은 더 이상 일부 고액자산가나 부동산 개발사업에 국한되는 상품이 아니다. 은행, 증권, 보험, 부동산신탁사가 예금과 대출 상품 이후의 먹거리로 신탁사업을 주목하면서 그 경쟁 구도도 금융권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본지는 5회에 걸쳐 최근 신탁시장의 변화를 짚어본다. 1편에서는 수탁고 1500조원을 넘어선 신탁시장의 성장 배경과 금융권이 신탁을 새 수익원으로 보는 이유를 다룬다. 2편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의 대중화 흐름과 상속 설계 시장을 선점하려는 은행권의 전략을 살펴본다. 3편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사례를 통해 해외 신탁시장이 상속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을 짚는다. 4편에서는 증권, 보험, 부동산신탁사로 확산되는 신탁 경쟁과 업권별 차별화 전략을 분석한다. 5편에서는 신탁업 확대 과정에서 금융권이 마주한 제도적 과제와 소비자 보호 쟁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국내 신탁시장이 1500조원 시대를 맞았다. 은행 예·적금이나 대출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시장은 아니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미 핵심 비이자수익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퇴직연금과 정기예금형 신탁이 외형 성장을 이끌었다면 부동산신탁과 매출·대출채권 등을 맡아 관리하는 금전채권신탁도 수탁고 증가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자산승계 수요가 겹치면서 신탁은 개인 자산관리와 기업금융을 아우르는 시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은행권은 물론 증권, 보험, 부동산신탁사까지 가세하면서 신탁은 금융권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떠올랐다.
금감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5년 신탁업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0개 신탁회사의 총 수탁고는 1516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보다 138조4000억원, 10.0% 증가한 규모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겸영 신탁사의 수탁고는 1059조원으로 전년 대비 107조9000억원, 11.3% 늘었고 전업 부동산신탁사의 수탁고는 457조5000억원으로 30조5000억원, 7.1% 증가했다.
신탁재산별로는 금전신탁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전신탁 수탁고는 726조5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93조7000억원, 14.8% 늘었다. 금전신탁은 고객이 맡긴 현금을 운용하는 신탁으로, 퇴직연금과 정기예금형 신탁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항목별로는 퇴직연금이 48조원, 정기예금형이 25조원, 수시입출금이 9조9000억원, 주가연계신탁이 3조8000억원, 채권형이 1조3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퇴직연금은 신탁업 외형을 키워온 대표 영역이다. 퇴직연금 자체가 신탁인 것은 아니지만, 은행·증권사가 신탁계약 방식으로 맡아 관리하는 적립금은 금전신탁 수탁고에 포함된다.
고용노동부와 금감원이 지난 5월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69조7000억원 늘었다. 퇴직연금 시장의 확대가 신탁업 외형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금 외 자산을 맡기는 재산신탁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말 재산신탁 수탁고는 788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43조9000억원, 5.9% 늘었다. 재산신탁에서는 부동산신탁이 41조9000억원 증가하며 전체 증가세를 주도했고, 매출·대출채권 등 돈을 받을 권리를 맡기는 금전채권신탁도 4조2000억원 늘었다.
다만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히 수탁고 규모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신탁시장 외형을 키운 주된 동력이 퇴직연금과 정기예금형 신탁이었다면, 금융회사들이 다음 성장 영역으로 주목하는 곳은 상속·증여와 노후자산 관리 시장이다.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기능을 넘어 보관, 지급, 이전, 관리 기능을 결합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로 신탁의 역할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전신탁뿐 아니라 재산신탁도 함께 늘고 있다는 점은 신탁이 단순 운용 상품을 넘어 자산 보관과 이전, 관리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탁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이 달라진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고령화로 예금, 주식, 보험금, 부동산, 퇴직연금 등 여러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전할지가 중요해지면서 신탁은 노후자산 관리와 상속 설계를 아우르는 종합 자산관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신탁은 예대마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비이자수익 사업이다. 자산을 맡아 운용·관리하는 과정에서 보수를 받을 수 있고, 퇴직연금과 부동산, 상속 설계처럼 관리 기간이 긴 자산을 통해 고객 관계도 장기간 이어갈 수 있다.
실제 보수 수익도 신탁이 금융권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5년 중 60개 신탁회사가 거둔 신탁보수는 총 2조915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5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부동산신탁사 28.2%, 증권사 11.5%가 뒤를 이었다.
결국 신탁시장의 성장은 금융회사 수익 구조 변화와도 연결된다. 앞으로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데서 나아가 생전 관리와 사후 이전까지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 신탁 경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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