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대한민국 방위산업(K-방산)은 최근 국가 수출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 계약을 기점으로 동유럽, 중동, 아시아로의 잇따른 방산 수출은 ‘K-방산 르네상스’라는 표현까지 탄생시켰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연일 한국이 세계 방산 강국으로 도약했다는 낙관론을 쏟아내고 있다.
성과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한국 방산업계가 짧은 기간 안에 전차, 자주포, 전투기, 함정 등 주요 무기 체계를 자체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은 분명한 성취다.
그러나 지금의 호황을 구조적 경쟁력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현재 K-방산의 성공은 한국의 실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상당 부분은 국제정세가 만들어낸 특수 상황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전쟁 특수가 만든 K-방산 호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K-방산 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과 유럽은 재래식 무기 생산시설을 축소해 왔고, 우크라이나 지원 과정에서 대규모 비축 물자를 소진했다. 문제는 공급 능력이었다. 서방 주요 방산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수요 급증에 즉시 대응하지 못했다. 생산라인은 축소되어 있었고 납기는 길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대규모 양산 체제를 유지해 온 한국은 상대적으로 짧은 납기, 합리적인 가격, 적극적인 기술 이전 조건을 내세워 시장 공백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다시 말해 현재의 K-방산 호황은 한국의 역량과 함께 ‘전쟁 특수’와 ‘공급망 병목’이라는 지정학적 환경이 결합한 결과로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영속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대규모 생산능력 복원에 착수했다. 미국은 탄약과 무기 생산시설 확대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유럽 역시 역내 방산기업 육성을 위한 생산라인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서방 세계의 공급망이 정상화되는 순간, K-방산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빠른 납기’는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닐 수 있다.
◇‘조립 강국’에서 ‘플랫폼 주권’으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구조의 취약성이다. 한국 방산은 외형상 세계적 수준의 체계 통합 능력을 갖추었지만, 핵심 원천기술에서는 여전히 해외 의존이 남아 있다.
대표 사례가 K-9 자주포다. K-9은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한동안 핵심 엔진을 독일 기술에 의존했다. 방산 시장에서는 단 하나의 핵심 부품이라도 외국산이면 제3국 수출 과정에서 원천기술 보유국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은 중동 수출 과정에서 독일 정부의 수출 승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최근 K-9 엔진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본격화된 것은 단순한 기술 성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 방산이 단순한 ‘조립 능력’을 넘어 ‘플랫폼 주권’을 확보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핵심 동력계를 스스로 통제해야 외교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 수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하드웨어 국산화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적지 않다. 오늘날 첨단 무기의 경쟁력은 단순한 기계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엔진과 레이더 같은 핵심 하드웨어는 물론, 이를 통합·운용하는 전투체계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역량이 승패를 좌우한다.
함정 전투체계, 인공지능 기반 표적 식별, 전장 네트워크 통합 기술은 아직 해외 의존도가 높다. 전투기 엔진과 같은 핵심 분야 역시 완전한 자립과는 거리가 있다. 결국 무기를 수출하더라도 고부가가치 영역의 수익 상당 부분이 해외 라이선스 비용으로 유출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폴란드 변수와 유럽의 보호무역 장벽
구매국 내부 정치 역시 K-방산의 예상치 못한 변수다. 현재 최대 고객인 폴란드가 대표적 사례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폴란드는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국산 K-9 자주포와 K2 전차를 적극 도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국 방산업계 보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이 진행될수록 “왜 외국산 무기를 계속 사야 하느냐”는 정치적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방산 계약은 단순한 상업 거래가 아니라 정치와 안보가 결합된 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럽의 제도적 장벽도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역내 방산 공급망 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공동 조달에서 비유럽산 부품 비율을 제한하는 움직임은 사실상 한국 기업에 대한 새로운 보호무역 장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빠른 생산-직접 수출’ 모델만으로는 장기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6세대 전쟁, 한국은 내부자인가
더 우려되는 것은 미래 무기 체계 경쟁이다. 2030년대 이후 시장을 지배할 6세대 전투기, 인공지능 기반 자율 교전 체계, 유무인 복합 전력은 단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영국·일본·이탈리아의 GCAP1), 프랑스·독일 중심의 FCAS2)처럼 주요국들은 이미 다국적 공동개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수십 년간 안보와 산업을 공유하는 전략 동맹에 가깝다.
1) GCAP(Global Combat Air Programme,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은 영국, 일본, 이탈리아 3국이 2035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공동 추진 중인 6세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 사업이다. 영국의 '템페스트(Tempest)' 프로그램과 일본의 'F-X' 프로그램이 2022년 12월 하나로 통합되면서 공식 출범했다.
2) FCAS(Future Combat Air System, 미래전투항공시스템)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3국이 2040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추진 중인 총사업비 1,000억 유로(약 150조~170조 원) 규모의 차세대 6세대 유·무인 복합 공중전투 체계다. 기존 프랑스의 라팔(Rafale)과 독일·스페인의 유로파이터(Eurofighter)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아직 이 거대한 흐름의 내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 KF-21 개발 성과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항공 전력에 대한 장기 청사진과 국제 공동개발 전략이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았다. 평시 체제로 돌아가는 순간 한국이 “급할 때 빠르게 납품하는 공급자” 이상의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낙관을 넘어 냉정한 준비가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핵심 기술의 완전한 독립이다. 엔진과 레이더, 반도체 기반 센서, 국방 AI 소프트웨어와 같은 전략 기술의 자립 없이는 방산 주권도 없다. K-9 엔진 국산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둘째, ‘인사이더 전략’이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방산 생태계 밖에서 완제품만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공동 생산, 부품 공급망 통합, 전략적 합작을 통해 서방 방산 네트워크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셋째, 차세대 공동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래 방산 시장은 동맹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만의 킬러 기술을 확보해 폐쇄적 기술 생태계 안으로 진입할 전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분명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짧은 기간 안에 첨단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성취다. 그러나 자부심과 낙관이 현실 인식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호황은 한국의 경쟁력만이 아니라 전쟁 특수와 서방 공급망 공백이라는 시대적 조건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축포가 아니라 냉정한 점검이다. 핵심 기술과 소프트웨어 자립, 글로벌 방산 동맹 편입, 차세대 무기 체계 선점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풀지 못한다면 현재의 성과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의 K-방산 르네상스가 진정한 도약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국제정세가 만들어낸 짧은 호황에 불과한 ‘신기루’로 남을지는 결국 지금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경기TP, 인천TP 등 기관 전문위원
• (전)월드클래스 300, NCS워킹그룹 심의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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