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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5 (토)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버려질 순서

 

버려질 순서 / 성영희

 

 

이사를 앞두고

하나씩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들어왔던 것들이

뒷걸음질로 나간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불화했던 것이

모서리들이었고

화해한 것도 모서리들이었다.

오래된 것들은 그 모서리부터 낡고 닳는다.

화해는 서로 닳는 일이었다.

 

몇 번의 유행이 바뀌는 동안

옷가지들은 날씬했던 과거에 머물러 있다.

 

버릴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손대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무거운 것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꾹 참고 또 참았다는 듯

짓눌린 자국들은 이 집에 남을 것이다.

이런저런 자국들은 쉽게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다.

 

쌓아둔 책이 허물어지고

가지런했던 것들은 헝클어지면서

제 쓸모를 버린다.

미끄러진 책들 사이로

섞이고 가려진 이름, 이름들

몸 없는, 무수한 이름들과 동거했었다.

 

고요했던 구석들이

먼지로 살찌고 있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모서리가 닳는 일, 자국이 남는 일

 

이사는 떠나는 일이지만, 성영희의 시에서 이사는 먼저 버리는 일이다. 들어올 때는 앞으로 걸어 들어왔던 것들이 나갈 때는 뒷걸음질로 나간다—그 뒷걸음 하나에 시간의 무게가 실린다. 시인은 말한다. 이 집에서 가장 불화했던 것도, 화해한 것도 모서리들이었다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는 부딪히면서 서로의 날을 죽인다. 오래 함께 산 것들은 그렇게 모서리부터 닳는다. 화해란 결국 서로 닳는 일, 이 짧은 문장이 시 전체를 떠받친다.

 

버릴 것들의 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며칠이 흐른다. 무거운 것들이 놓였던 자리에 남은 짓눌린 자국처럼, 기억은 쉽게 따라나서지 않는다. 버리는 일이 죄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의 몸이기 때문이다. 무너진 책더미 사이로 가려진 이름들, 몸 없는 무수한 이름들과 동거했다는 고백은 조용하지만 깊다. 우리는 읽은 책만큼, 스친 이름만큼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요했던 구석들이 먼지로 살찌고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자리에 쌓인 것, 그것도 삶의 일부였다고, 시는 담담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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