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25.1℃흐림
  • 강릉 25.7℃흐림
  • 서울 25.6℃흐림
  • 대전 25.8℃소나기
  • 대구 31.1℃흐림
  • 울산 28.5℃흐림
  • 광주 28.2℃흐림
  • 부산 29.3℃흐림
  • 고창 27.6℃흐림
  • 제주 26.7℃
  • 강화 23.8℃흐림
  • 보은 25.5℃흐림
  • 금산 26.2℃흐림
  • 강진군 24.7℃흐림
  • 경주시 28.8℃흐림
  • 거제 26.7℃흐림
기상청 제공

2026.08.15 (토)

[이명구 전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한라산

 

 

(조세금융신문=이명구 전 관세청장) 1994년 나의 첫 근무지는 제주세관이었다. 사회생활의 출발점이자 관세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누구에게나 첫 직장은 특별하지만,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정취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이 더해져 그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제주에 근무하는 동안 한라산을 두 번 올랐다. 한라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제주를 상징하는 존재였고, 나에게는 관세행정의 길을 시작하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한 걸음씩 묵묵히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돌이켜보면 이후의 공직생활도 한라산 등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급하게 오르는 것보다 꾸준함과 인내가 중요했고, 함께 가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긴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제주세관에서는 직원 간 화합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매일같이 작은 모임 형태의 회식이 이어졌고, 특히 원팀(One Team)의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3주에 한 번씩은 공식적인 회식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미리 공지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잦은 회식 문화였지만, 그 속에는 조직 구성원 간 신뢰를 쌓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관세행정은 개인이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통관, 관세조사, 관세수사, IT, 국제협력, 위험관리 등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관세행정의 성패는 제도와 시스템 못지않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에 달려 있다. 제주세관에서 경험한 소통과 화합의 문화는 훗날 내가 조직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한라산은 등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에게는 술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한라산 소주를 마시는 일도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술이 약한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배가 숙취 해소를 위한 세 가지 비법을 알려주었다.

 

첫째는 한 달에 한 번씩 옻닭을 먹으면 위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생콩을 먹으라는 조언이었다. 콩에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간 기능 회복에 좋다는 설명이었다. 셋째는 감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는 방법이었다. 당시에는 선배의 말을 믿고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장생활 속에서 스스로 터득한 방법도 생겼다. 숙취 해소와 피로 회복에 비타민 C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지금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숙취를 줄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곧 지속 가능한 공직생활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관세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의 관문을 지키는 관세공무원은 장기간의 긴장감과 책임감 속에서 일한다. 정확한 판단력과 냉철한 분석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중요하다. 개인의 건강관리도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부서는 세무과였다. 지금의 조직 체계로 보면 통관과와 심사과의 기능이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직 명칭도 변화했지만, 가끔은 '세무과'라는 이름이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조직의 정체성과 역할을 상징한다. 통관과, 심사과라는 명칭은 전문성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지만, 세무과라는 명칭은 세관 본연의 기능인 세수 확보와 공정 과세라는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추어 조직이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조직의 역사와 정체성을 돌아보며 과거의 명칭을 재평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당시 본청 차장님의 지시에 따라 추진되었던 '3개 자격증 운동'이다. 세 가지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외국 출장과 인사우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방침이 있었다. 어떤 자격증이든 상관없었기에 직원들은 저마다 공부에 매진했다.

 

나 역시 부기, 주산, 문서편집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의 회계 자격증이나 정보처리 관련 자격증과 비교하면 다소 시대적인 한계가 있는 분야였지만, 당시에는 매우 실용적인 능력으로 평가받았다. 업무를 마친 후 틈틈이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준비했던 기억은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오늘날 같은 시대에 이러한 제도를 강제적으로 시행한다면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직 내에 학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무역 환경과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에서 관세행정 역시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요구된다.

 

따라서 과거처럼 의무화하는 방식보다는 자발적인 학습을 장려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자격증 취득, 전문교육 이수, 외국어 능력 향상 등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제공한다면 조직 전체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당시 제주세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제주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눈다. 함께 한라산을 올랐던 기억, 회식 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공부하며 자격증을 준비했던 시간들은 여전히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제주세관은 단순한 첫 직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세행정의 기본 가치인 협력, 소통, 배움,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몸소 익힌 학교였다. 한라산의 묵직한 존재감처럼 관세행정 역시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관세행정은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행정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중심에 두는 행정이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하고 배우며 서로를 존중할 때 관세행정은 더욱 신뢰받는 행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제주세관은 나에게 늘 감사한 곳이다. 공직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해준 곳이며,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첫걸음의 의미는 나의 관세행정을 지탱해 준 가장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제34대 관세청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