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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8 (화)

[전문가 칼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내가 노나라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다.

어찌 장씨 아들이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양혜왕 하〉2.16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연륜은 쌓이지만, 자칫 자존감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 20, 30대에는 큰 꿈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의지와 자신감이 충만할 겁니다. 마흔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자신감을 더 높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점차 만만하지 않은 현실의 장벽을 느끼면서 위축되기도 합니다.

 

특히 은퇴 후에는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자존감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남성은 ‘삼식이’라는 말처럼 존재감을 잃었다고 느끼기도 하고,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여성 역시 자신의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 허탈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회나 가정이나 갈등의 씨앗은 보통 자존감에서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역할을 존중하고, 나도 나의 역할에 대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면 괜찮을 텐데,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면 더욱 그럴 겁니다.

 

◇ 수용하는 마음가짐

 

위대한 사상가로 알려진 공자도 14년간 천하주유를 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고, 나중에 ‘초상집 개’와 같다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몰골이 안 좋았으면 그런 소문이 났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꿋꿋하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품위를 유지했습니다.

 

공자의 학통을 계승한 맹자는 ‘왕도정치’를 설파하면서 각국을 주유했지만 공자만큼 홀대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당시 이미 강력한 싱크 탱크 역할을 하면서 주변국에 초대를 받고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치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식견을 갖추고 있어도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위정자에게 훌륭한 리더가 되기를 주문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인데요. 맹자가 노나라에 머물 때였습니다. 당시 노나라의 국력은 크게 약해져서 근근하게 연명하는 지경이었습니다. 100년 전 춘추시대 말기, 공자가 생존했을 때만 해도 노나라는 이웃나라 제나라와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였지만요.

 

노나라의 평공은 어떻게하면 다시 부국강병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맹자에게서 조언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총애하는 장창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주께서 맹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은 그가 어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십니까? 그는 뒤 초상(어머니의 장례)을 앞 초상(아버지의 장례)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기 때문에 만나시면 안 됩니다.”

 

노 평공은 이에 수긍했고, 맹자를 만나지 않자 그의 신하 약정자가 연유를 여쭤봤더니, 그는 맹자의 부모에 대한 장례 방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자 약정자는 안타까운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더 성대한 것이 아니고 전과 후의 빈부가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형편이 좋았기 때문에 맹자가 조금 더 격식을 갖춰서 장례를 치렀던 것입니다. 아마도 맹자의 마음속에는 누구보다 자신을 걱정하고 아끼고 고생하셨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이윽고 약정자가 이러한 사실을 전하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노나라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다. 어찌 장씨 아들이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맹자는 장창을 원망하지 않았고,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이후 노나라는 50여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36대 경공 때 초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했습니다. 본래 공자가 제일 존경하는 주공 단에게 봉해진 노나라는 7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가 결국 외부 세력의 압박과 내부적으로는 세도가들의 득세로 힘을 잃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맹자는 자칫 자존감이 상할 상황인데도, ‘하늘의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겠지만 이를 수용했습니다.

 

◇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

 

이들이 제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제자 공손추가 스승에게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님께서 제나라에서 만약 요직을 맡는다면 과연 관중과 안자 정도의 공적을 다시 펼칠 수 있겠습니까?”

 

제나라의 관중과 안자는 제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인물과 비교를 당하면 기가 죽을 만도 한데 맹자는 떳떳했습니다.

 

“자네는 제나라 사람이라서 관중과 안자만 아는 구나. (중략) 관중은 (증자의 손자) 증서조차도 비교가 되고 싶지 아니한데, 그대는 내가 그와 비교되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맹자의 자신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제나라는 이미 1,000리를 넘는 땅을 갖고 있고, 백성도 많고 물자도 풍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그러한데 재상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국시대에는 오랜 전쟁으로 백성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제나라의 강력한 국력과 왕이 ‘왕도 정치’를 실행한다면 주변국은 자연스럽게 복종할 것이었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노나라 군주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더라도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제자가 과거 위대한 인물과 비교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맹자처럼 위대한 사상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마다 인생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경험과 지혜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믿고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언젠가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 능력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존감은 직함이나 연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줄 때만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을 꾸준히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맹자는 왕이 자신을 외면해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을까요?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치밀한 리더의 한 수,《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출간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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