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기현 기자) 대법원이 '단순히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하는 것만으로는 상관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모욕의 방법이 ‘문서, 도화(圖畵), 우상(偶像)을 공시하거나 연설하는 것’에 상응해야 상관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의 모욕 행위만으로도 상관모욕죄가 성립한다고 본 종전 판례를 27년 만에 변경했다.
대법원(주심 이흥구 대법관)은 7월 22일 군형법상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A 씨 사건에서 A 씨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인 고등군사법원과 동등한 관할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2022도5937).
사실관계를 보면 해군 소속 함정에서 전탐장으로 근무하던 해군상사 A씨는 2019년 10월경 기지로 입항하던 중 상관인 대위 B씨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는데, B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 않는다"라며 헤드셋을 벗어 집어 던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군인 3명은 A씨의 발언을 듣거나 목격했다.
1심은 공연히 상관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와 군검사가 항소했지만 원심(2심)은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A씨에 대한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전합은 공연성 요건만으로, 즉 단순히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했다고 해서 상관모욕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법 조항 앞부분이 예시로 든 '문서, 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하는 것'에 해당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정도로 '모욕의 방법'이 공연한 것이어야 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연성만으로 상관모욕죄가 성립한다고 본 1999년 대법원 판례를 27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다수의견을 낸 7인은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의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방식이 공연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종전 판례는 '공연한 방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해당 조항이 요건으로 공연한 방법을 요구하는 취지는 군 조직의 건전한 위계질서와 통수 체계 유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모욕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문서, 그림 등의 방법으로 모욕하는 경우 높은 전파성과 확산성 등으로 인해 상관의 외부적 명예 침해 정도가 커지고, 위신이 훼손돼 지휘체계가 무너질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상관을 모욕한 경우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처벌 균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이번 사건의 경우 A씨의 발언을 당시 현장에 있던 군인들이 듣거나 목격했을 뿐이므로 상관모욕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상관에 대한 모욕은 군인들 앞에서 일방적,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물리적 공간이나 가상공간 등에서 확산할 만한 방법으로 표현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천대엽·오석준·엄상필·신숙희·박영재 대법관은 처벌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다수의견의 취지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처벌 범위 제한과 관련해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이들은 "모욕 행위는 말, 글, 그림, 거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양상이 끊임없이 달라진다"며 "공연한 방법을 제한해 해석하는 다수의견은 60여년 전 군형법 제정 당시 문언에 얽매여 시대 상황의 변화와 발전을 뒤따르지 못한 채 오히려 정보화 추세에 역행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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