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단기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현안으로 조세제도를 지목했다.
이날 대토론회에는 정부 관계자와 학계·시장 전문가, 언론인, 업계·협회 관계자, 공인중개사와 일반 국민 등 140명이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공급과 금융, 세제 분야별 발제에 이어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세제 분야에서는 보유세를 올릴지 여부를 넘어 어느 범위에 어느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고, 거주 목적과 자산 증식 목적의 주택을 어떻게 구분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보유 부담을 높일 경우 매물 잠김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주택을 처분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과 이미 주택을 매각한 사람들과의 형평성도 논의됐다.
또 금융 분야에서는 정책 변경으로 잔금대출이나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급 분야에서는 수도권 유휴지 추가 발굴과 고품질 장기 공공임대 확대 등이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지금 당장 제일 급한 것은 사실 조세제도”라며 조세제도 논의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어 수도권 공급 확대를 위한 추가 부지 발굴을 계속하고 있지만 가용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근본 대책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보유세 강화론 나왔지만…핵심은 ‘누구에게 얼마나’
세제 분야에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보유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만 단순히 세율을 일률적으로 올리기보다 주택의 가격과 보유 목적, 실제 이용 형태 등을 과세체계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세제가 부동산시장의 유인 구조를 결정하는 만큼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면 보유세를 보편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1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 공제 혜택을 축소하고, 1주택자 보호는 보유세보다 양도세 체계에서 반영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고가 주택을 보유했지만 현금 소득이 부족한 고령자 등에 대해서는 과세이연 제도를 보다 폭넓게 활용해 세 부담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거주 여부만을 기준으로 혜택을 주면 서울 등 선호 지역의 ‘똘똘한 한 채’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보유세 강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면서도, 실제 정책 설계에서는 어느 범위에 어느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어떤 차등을 둘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임대나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여러 채를 보유한 경우와 실제 거주를 위해 주택을 보유한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직장이나 교육, 입원 등의 사유로 일시적으로 해당 주택에 살지 못하는 경우까지 비거주 주택으로 보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실거주’ 대신 ‘거주용’이라는 기준을 검토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초고가 주택의 기준과 세 부담을 놓고 지역별 체감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지방에서는 시가 30억원 주택을 명백한 초고가 주택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과세표준과 실제 시세에 따라 체감이 다를 수 있다는 취지다.
결국 보유세 개편의 핵심은 강화 여부만이 아니라 과세 대상과 가격 기준, 보유 목적에 따른 차등, 실제 부담 수준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있다는 점이 이번 토론에서 확인됐다.
◇ 보유 부담 높이면 ‘매물 잠김’…양도세 퇴로·형평성 쟁점
보유세 강화와 함께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유 부담은 높이면서 양도세 중과까지 유지할 경우 다주택자가 매각을 미루면서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과도한 양도세 부담으로 주택을 파느니 정책이 다시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형성되면 매물 잠김이 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때 일정 기간 주택을 처분할 기회를 주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정부의 정책을 믿고 이미 주택을 처분한 사람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뒤늦게 제공하면 정책 신뢰와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 기존 처분자에게 적용됐던 조건보다 혜택은 제한하되 일정 기간 매각 기회를 제공하는 절충안이 거론됐다.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반복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현행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가구 1주택 비과세를 생애 한 차례로 제한하거나 횟수에 따라 혜택을 차등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반복해서 사고팔며 비과세 혜택을 활용하는 행위를 줄이자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비과세 혜택을 무제한 적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횟수를 제한하거나 첫 번째 처분에는 큰 혜택을 주고 이후에는 혜택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토론에서는 매각 퇴로의 필요성과 형평성 원칙이 제시됐을 뿐 양도세 완화 수준이나 적용 기간, 대상 주택과 보유자의 범위 등 구체적인 설계안은 나오지 않았다. 향후 세제 개편 과정에서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따로 조정하기보다 매물 유도 효과와 기존 처분자와의 형평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잔금대출·이주비 규제 경계선…실수요자 피해 최소화
금융 분야에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대출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책 변경으로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보는 실수요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 토론 참석자는 2년 전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 분양계약을 체결했지만 최근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따른 은행별 한도 축소로 잔금대출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이미 기존 제도를 기준으로 자금계획을 세운 입주 예정자에게는 예외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 대통령은 “있는 제도에 맞춰서 계획했는데 정책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렇게 만들면 사실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금융당국과 은행이 관련 사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출 규제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최소화돼야 한다며 개별 은행의 대출 관리 상황을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협의를 통해 보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규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조합원의 이주가 늦어지고 착공 일정까지 밀릴 수 있는 만큼 투기 억제와 정비사업 추진 여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대출 보유자와 신규 대출자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대출 규제가 주로 신규 차주에게 집중되면서 이미 대출을 받아 주택을 보유한 사람보다 무주택자나 청년층이 더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규제의 방향을 유지하더라도 계약 시점과 자금계획, 실거주 여부 등을 고려해 정책 변경의 경계에 놓인 실수요자의 피해를 줄이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 수도권 유휴지 추가 발굴…고품질 공공임대 확대 제안
공급 분야에서는 수도권의 추가 주택 공급을 위해 가용 부지를 계속 발굴하는 한편, 중산층도 선택할 수 있는 고품질 장기 공공임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의 주택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유휴지를 추가로 찾고 있지만 실제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에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구조 자체를 완화해야 근본적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지역 성장거점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 생활 인프라 확충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도심 공급 확대를 위해 지식산업센터나 업무시설, 오피스텔 등을 주거시설로 전환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를 매입해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제도 개선이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려면 인허가와 매입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공공임대는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주택에서 벗어나 중산층도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품질과 입지를 갖춰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역세권 등 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에 양질의 공공임대를 공급해 주택을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공급 확대 효과와 시장 불안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비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하면 기존 주택 멸실이 늘고 특정 지역의 기대가격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사업 순서와 공공기여, 분양가격 등을 고려한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비아파트 공급 회복도 과제로 거론됐다. 다세대·연립주택과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이 위축된 만큼 소형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규제 완화, 공공매입 확대, 민간 임대사업자의 공급 여건 개선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토론회는 구체적인 부동산 대책을 확정하기보다 향후 조세·금융·공급 정책의 설계 기준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조세 분야에서는 과세 대상과 부담 수준, 매각 퇴로가 쟁점으로 제시됐고 금융과 공급 분야에서는 실수요자 피해 보완과 수도권 공급 확대, 공공임대의 질적 개선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향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날 제기된 세제·금융·공급 논의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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