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최근 강남권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다시 뛰면서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이 극에 달한 가운데, 현행 부동산 세제가 시장 왜곡을 야기하고 있다는 조세 전문가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세제를 집값 잡기용 수단으로 오용하는 정치적 접근을 경계하고, '실거주 보호'와 '조세 형평성'이라는 본래의 원칙으로 돌아가 과세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세무사회(회장 구재이)는 한국재정정책학회(학회장 박명호), 한국납세자연합회(회장 최원석)와 공동으로 ‘국민이 주인인 세금 제도 만들기: 1세대 1주택 과세 제도 합리화 방안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박명호 교수 “미국식 정액공제·적층세율 도입 ‘똘똘한 한 채’ 쏠림 막아야”
이날 토론회를 주최 하면서 발제를 맡은 박명호 홍익대학교 교수(한국재정정책학회장)는 주택 수 중심의 다주택자 규제가 오히려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채질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지방 외곽의 저가 주택 3채(합산 시가 10억 원)를 가진 다주택자가 서울 강남의 30억 원짜리 초고가 아파트 1채를 가진 1주택자보다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훨씬 무거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세제가 다주택자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구조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세대 1주택 양도소득세 개편의 핵심 대안으로 ‘미국식 정액공제 및 적층 과세 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박교수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5년 중 2년 이상 실거주한 주택은 부부합산 50만 달러(약 7.5억~9억 원) 수준의 정액 소득공제를 부여하고, 공제 초과분은 기존 종합소득과 합산 연동(적층)해 3단계 우대세율(0%, 15%, 20%)을 적용한다.
박 교수는 “현행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80%)는 양도차익 20억 원 기준 다주택자와 1주택 장기거주자 간 세부담 격차가 6.3배까지 벌어지는 극단적 왜곡을 만든다”며 “미국식 적층 방식을 도입하면 실효세율 격차가 현행 34.9%p에서 9.5%p 수준으로 줄어들어 수직적·수평적 형평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특히 현행 제도가 주택 수를 기준으로 과세를 설계하면서 자산가치보다 보유 주택 수 자체를 더 강하게 반영해, 지방의 저가주택 다주택자가 강남 초고가 1주택자 보다 세부담이 무거워지는 역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일한 양도차익 20억 원 기준으로도 다주택자와 장기거주 1주택자의 세부담이 약 6.3배 차이 난다며, 현행 구조가 조세 형평성을 훼손하고 ‘똘똘한 한 채’ 쏠림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조정대상지역 구분 없이 거주 요건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고가주택 기준(12억 원)은 하향하기보다 최소 유지하거나 소폭 상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계·전문가들..."거주요건 전국 확대·장특공제 역진성 개선·거래세 완화" 한목소리
좌장을 맡은 이전호 강남대학교 석좌교수(전 세제발전심의위원장)의 진행으로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지정 토론자 4인의 다양하고 날카로운 제언이 이어졌다.
김경하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조정대상지역에만 거주 요건을 두는 현행 제도는 수평적 형평성에 어긋나므로 전국 확대가 타당하다”면서도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을 거주 중심으로 급격히 바꿀 경우 신뢰 보호를 위해 부득이한 사유(취학·질병 등) 인정과 함께 충분한 유예기간(경과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정화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용산과 부산 강서의 1인당 평균 소득 격차가 3배에 달할 정도로 지역 간 차이가 크다”며 “전국 거주요건 일률 적용 시 지방의 빈집 정비나 세컨드홈 정책이 위축될 수 있으므로 고가주택 기준 및 거주요건 설정 시 지방에 대한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센터장은 “주택 수 중심에서 가액 중심으로의 종부세 전환은 똘똘한 한 채 쏠림을 완화할 것”이라면서도 “한국의 거래세 비중은 OECD 평균의 2배가 넘으므로 보유세를 개편·강화할 때는 매물 잠김을 완화하기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낮춰 거래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경희 세무사(한국조세연구소)는 현장에서의 세금 실무 현황을 자세히 짚었다. 고 세무사는 “200억 원짜리 초고가 주택을 10년 보유·거주하고 양도해도 80% 장특공제를 받아 양도세가 18억 원에 불과한 것은 역진성 문제가 있다”며 “장특공제율을 양도가액별로 차등 적용하거나 공제 한도를 신설하고, 지방 소형 주택(기준시가 1억 이하)은 주택 수에서 제외해 주거 이동을 도와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어진 현장에서의 질의응답에서는 현장 세무사들과 전문가들의 현실적인 질문과 발제자의 답변이 이어졌다.
청중석에 있던 황범석 세무사는 “현행 세법은 비과세 아니면 바로 중과세로 극단적이고 주택 수 판단이 너무 난해하다. 또한 외국인은 수도권 주택 10만 채를 소유하면서도 세대 판단 규제를 안 받아 국내 납세자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명호 교수는 “외국인 중 비거주자의 경우 장특공제 배제 등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국내 국민이 역차별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라면서 "세제 복잡성 해소를 위해서라도 미국식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장기보유공제는 원래 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률 공제 성격이다. 보유에 따른 물가상승 공제는 기본적으로 살려두고 거주자에 대한 추가 혜택을 별도로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거주 중심으로 전환하되, 양도 차익 발생 시 6~45% 기본세율 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라면서 “자본 형성 및 주거 이동 자유를 위해 세율 체계 자체를 경감세율로 낮추는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외에도 “미국식 종합과세 및 우대세율 체계로 넘어가는 방향에는 공감하나, 현행 한국 소득세 체계가 자본이득에 중과세하는 구조에서 한꺼번에 옮겨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현행 세제의 60~70% 중과세는 불합리하다. 100억 넘는 초고가 주택 비과세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액 공제 후 과세하는 정공법이 장기적으로 주거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정치 수단 아닌 국민 삶 기준돼야…전문성과 현장 목소리 전달”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좌장을 맡은 이전호 강남대 석좌교수는 부동산 세제의 근본적 한계와 정책 당국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는 뼈 있는 제언을 남겼다.
이전호 교수는 “한국에서 집은 전체 가계 자산의 70~80%를 차지하고 있어, 금융 자산 비중이 높은 외국과 단순 비교해 보유세율을 무작정 올리는 것은 납세자가 느끼는 체감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짚었다.
이어 “젊은 세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집을 사기 힘든 세상이 된 점은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수십 년의 경험으로 증명되었듯 세금이 집값을 잡는 해법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서울 집값은 모든 수요와 유동자금이 집중되기 때문에 오르는 것으로, 주택 공급 확대 등 경제 정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며 “부동산 세제의 중심은 집값 조절이 아니라 세제 자체의 합리화에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현재 세제실이 세법 개정안 마련을 위해 밤을 새우며 막바지 보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오늘 토론회에서 도출된 조세 전문가들의 내실 있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세제실에 조속히 전달되어 마지막 개정 단계에 꼭 반영되기를 바란다”고 총평했다.
토론회에 앞서 주최측 단체장들은 인사말을 통해 세제 개편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지방선거와 대통령 주관 토론회 등을 거치며 부동산 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국민 현장과 괴리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국민 현장과 괴리된 채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 의해 세제가 함부로 다뤄지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어 “세금은 국가 운영을 위한 국민과의 약속인데 국민과 동떨어진 세제는 일종의 죄악”이라며 “남·오용되던 1세대 1주택 세제를 국민 주거권 보호 중심으로 바로잡고, 세무사회가 조세 입법과 정책 수립에 앞장서 국민 생활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공동 주최한 최원석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부동산 세제를 마치 전가의 보도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세제는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쓰여야 하며, 취득·보유·양도 전 단계에 걸친 종합적 재검토로 조세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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