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 백원기
고향을 묻는 낯선 아지매
햇볕에 탄 얼굴 틈새로
세월을 들여다본다
포도 재배 사십여 년 세월은 가고
꿈의 고향 왕십리는 아득한데
눈가에 묻어나는 이슬이 서럽다
아홉 살 적 엄마 손 꼭 잡고
울며 떠난 피난길은
흙에 묻혀 살아온 나그네길
어느덧 왕십리는 잊혀만 가고
내딛는 걸음마다 그리움 자국이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왕십리는 아직 거기 있는데
고향은 장소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고향은 시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손이다. 백원기의 시에서 왕십리는 그런 곳이다.
햇볕에 탄 얼굴 틈새로 세월을 들여다본다는 첫 연이 예사롭지 않다. 주름은 나이가 아니라 세월이 새긴 글자다. 낯선 아지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잠깐 엿보는 일이다. 시인은 그 틈새에서 사십여 년을 읽어낸다.
포도밭에 묻어 산 사십여 년. 꿈의 고향 왕십리는 아득하다는 구절에서 걸음이 멈춘다. 흙을 일구며 살아온 세월이 헛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움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아홉 살, 엄마 손을 꼭 잡고 울며 떠난 피난길. 그 아이는 이제 흙에 묻혀 살아온 중년이 되었다. 피난길이 나그네길이 되고, 나그네길이 삶이 되었다. 돌아가려던 길이 어느새 살아온 길이 되어버린 것, 그 아이러니가 조용히 가슴을 누른다.
어느덧 왕십리는 잊혀만 가고, 내딛는 걸음마다 그리움 자국이 남는다. 잊히면서도 잊히지 않는 것, 그것이 고향이다. 발걸음마다 새겨지는 자국처럼, 그리움은 몸에 남아 함께 걷는다. 백원기의 시는 그 동행을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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