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사고 당시에는 정말 멀쩡했거든요. 그런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픕니다."
교통사고 환자들을 진료할 때 가장 흔히 듣는 하소연이다. 이는 환자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충돌 직후에는 가벼운 가슴 떨림 외엔 별다른 이상이 없어 안도하며 귀가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 듯 결리며 원인 모를 두통까지 밀려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우리 몸은 사고 순간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본격적인 비명을 지르는 것일까.
서양의학에서는 이 기묘한 시간 차를 '지연성 통증(Delayed Onset Pain)'의 기전으로 설명한다. 교통사고라는 찰나의 충격이 가해질 때, 인체는 비상사태에 들어간다. 교감신경이 극도로 흥분하면서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같은 천연 진통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일시적으로 통증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밤새 긴장이 풀리고 호르몬의 마법이 걷히면 상황은 반전된다. 편타성 손상(Whiplash Injury)으로 벼랑 끝까지 늘어났던 근육과 인대, 근막의 미세한 찢김 주변으로 염증 세포들이 모여들며 통증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상된 근육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수축한다. 이 단단한 경직이 혈류를 막고 피로물질을 축적시켜 다음 날 아침 '몸이 굳고 더 아픈' 최악의 상태를 만든다.
한의학에서는 이 지연성 통증의 실체를 '어혈(瘀血)'과 '기체(氣滯)'의 형성 과정으로 본다. 불시에 들이닥친 외부의 강한 충격은 체내 기혈(氣血)의 도도한 흐름을 단번에 통제해 버린다. 사고 직후에는 미처 드러나지 않던 미세한 혈액의 정체, 즉 어혈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 사이에 고여 굳어지면서 통증을 점차 선명하고 날카롭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사고가 남긴 정신적 놀람과 불안이 기(氣)의 순환마저 꽁꽁 묶어버리면(기체), 근육과 인대의 자생적 회복력은 궤도를 이탈하고 통증의 유효기간은 마냥 길어지게 된다.
많은 환자가 X-ray나 MRI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소견을 받고도 통증 지속을 호소하며 고통받는다. 현대 의학의 정밀 영상도 뼈의 정렬이나 커다란 구조적 파열은 잡아내지만, 촘촘한 근막의 미세 손상이나 기혈 순환의 기능적 마비까지는 온전히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사상 이상이 없다"는 말이 결코 "몸에 이상이 없다"는 뜻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교통사고 치료의 적기는 통증이 극에 달한 뒤가 아니라 몸이 회복의 신호를 보내는 바로 그 초기 단계다. 효과적인 치료는 양·한방 협진을 통해 영상검사로 뼈와 신경의 안전을 확보한다. 다음, 침과 약침으로 급성 염증을 가라앉히고 추나요법으로 비뚤어진 척추와 굳은 근육을 이완하여 어혈을 풀어내면 후유증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통증은 때로 시간이라는 가면을 쓰고 뒤늦게 찾아온다. "지금 괜찮으니 문제없다"는 방심은 고질적인 만성 통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고 다음 날 아침 몸이 보내는 작은 거부반응은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라 즉각적인 구호가 필요하다는 내 몸의 정직한 SOS 신호다.

[프로필] 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現) 대한고금의학회장
•前) 대전한의사회부회장
•前) 대전대 한의예과 학과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2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