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SK에코플랜트가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내놓은 AI 인프라 전략은 '신사업 선언'이 아니었다. 반도체 공장과 산업가스, 소재, 운영기술, 자산순환 등 기존 사업을 하나의 산업 가치사슬로 다시 묶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겉으로 보면 AI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 전략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지가 보고서를 면밀히 살펴보고 회사 설명과 사업부문 공시를 함께 분석한 결과 AI 인프라는 신사업이라기보다 기존 사업을 AI 산업 중심으로 재구성한 전략에 가까웠다.
AI 기술 기업이 아니라 AI 산업의 공급망 전반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이다.
◇ AI 인프라의 핵심은 사업 확장이 아니라 구조 재편
이번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AI 인프라를 하나의 독립 사업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반도체 제조시설(FAB)을 구축하는 Hi-Tech, 산업가스와 반도체 소재를 담당하는 Gas & Material, IT 자산 재활용과 전자폐기물 순환을 수행하는 Asset Lifecycle, 여기에 CSRO와 Bay Scrubber 같은 운영 솔루션까지 하나의 AI 인프라 가치사슬 안에 배치했다.
이 같은 구성은 단순한 사업 소개와는 성격이 다르다.
AI 산업은 반도체 공장만 건설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공장이 가동되기 위해서는 산업가스와 소재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고, 초순수와 용수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처리해야 하며, 수명이 끝난 서버와 IT 장비는 다시 회수·재활용된다.
즉 AI 산업의 경쟁력은 개별 사업의 규모보다 얼마나 많은 공급망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SK에코플랜트가 이번 보고서에서 기존 사업을 AI 인프라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다시 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업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사업들이 AI 산업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회사의 경쟁력으로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CSRO와 Bay Scrubber가 말하는 것은 ‘운영’
보고서에서 CSRO(Circle-Sequence Reverse Osmosis)와 Bay Scrubber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CSRO는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한 폐수를 재이용하는 수처리 기술이고, Bay Scrubber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처리하는 설비다. 겉으로는 모두 환경기술이지만 보고서에서 두 기술이 놓인 위치는 환경사업이 아니다.
공통점은 모두 FAB 준공 이후 운영 단계에서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이는 SK에코플랜트가 EPC(설계·조달·시공)에서 사업을 끝내지 않고 공장 운영 과정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방향을 보여준다.
본지 취재 결과 회사는 CSRO가 현재 실증 단계에 있으며 파일럿 테스트에서 최대 97%의 물 회수율과 기존 역삼투(RO) 공정보다 10% 이상의 전력 절감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Bay Scrubber는 고객사와 비밀유지협약(NDA)을 이유로 적용 현장과 상용화 수준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술의 세부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두 기술이 모두 AI 인프라 전략 안에서 운영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사를 수주하는 EPC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운영 단계까지 고객 접점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 보고서는 전략을 말하고, 숫자는 현재를 말한다
보고서만 읽으면 SK에코플랜트의 AI 인프라 전략은 FAB 구축과 운영 솔루션 중심으로 읽힌다. 실제 회사는 AI 인프라 사업을 하이테크와 가스 및 소재, 자산순환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며, 메가프로젝트와 반도체 FAB,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부문 매출을 함께 들여다보면 전략이 실제 어디에서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지는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온다.
본지가 사업부문 공시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회사가 밝힌 AI 인프라 사업 비중은 지난해 연결 기준 약 67%, 올해 1분기 약 82%였다. 이는 Hi-Tech와 Gas & Material, Asset Lifecycle 3개 부문 매출을 합산한 비중과 일치했다. 반대로 주택·건축과 연료전지 등을 포함한 Solution 부문은 이 계산에서 제외됐다. 회사가 AI 인프라 관련 사업과 기존 건설·에너지 사업을 구분해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시 기준 사업부문 매출을 보면, AI 인프라 내부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확인된다. 올해 1분기 Asset Lifecycle 부문 매출은 2조3555억원으로 Hi-Tech(1조4746억원)를 넘어섰다. 특히 자산순환 부문은 1년 전 5568억원에서 2조3555억원으로 323% 증가하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Hi-Tech는 8441억원에서 1조4746억원으로 75% 증가했다.
자산순환 부문에는 IT 자산 재활용 기업 SK tes와 반도체 메모리 모듈 사업을 영위하는 에센코어(Essencore) 등이 포함된다. 회사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AI 인프라 사업 확대와 반도체 업황 호조, 반도체 관련 자회사 편입 효과를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회사가 전면에 내세운 FAB 시공과 운영기술 못지않게 실제 매출에서는 자산순환 분야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AI 인프라 전략 아래에서도 실제 성과는 사업별로 다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가 AI 인프라라는 전략을 제시했다면, 사업부문 매출은 그 전략이 실제 어떤 사업에서 먼저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 관건은 ‘얼마나 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연결하느냐’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사명을 변경한 이후 환경과 반도체, 산업가스, 자원순환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넓혀왔다.
이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새로운 사업을 발표한 보고서라기보다 그동안 축적한 사업을 AI 인프라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다시 설명한 전략 문서에 가깝다.
핵심은 AI 자체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을 짓고, 공장이 가동되는 동안 필요한 가스와 소재를 공급하며, 운영 과정에서는 물과 배기가스를 관리하고, 마지막에는 IT 자산을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를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것이 이번 보고서가 제시한 AI 인프라 전략의 본질이다.
이는 사업을 단순히 다각화한 것이 아니라 AI 산업이라는 하나의 고객군을 중심으로 시공부터 소재, 운영, 자산순환까지 수익구조를 연결하는 전략으로 읽힌다.
결국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AI'가 아니라 '구조'다. SK에코플랜트는 AI 시대의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다기보다, 이미 확보한 사업들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 안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성장 전략을 다시 설계하고 있었다. 다만 그 연결 구조 안에서 실제 사업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는 보고서의 설명보다 사업부문 매출이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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