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나무 / 주영헌
나는 나무
흔들리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인
직립을 하였으므로
팔을 벌려 작은 그늘 만들 수 있는 나는 나무
당신 앞에선 흔들리는 것이 전부인
나는 춤추는 나무
당신이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잎사귀 하나 없는 나신의 몸으로도 부끄럼 없이
진심으로 흔들린다
나의 전생은 누구보다 무성했으리라
당신의 고개가 밤의 뒤척임 쪽으로 떨어질 때
나는 손을 벌려 넓은 그늘을 만들고
바람의 낮은 음률을 빌려
당신의 잠을 위하여 나지막이 흥얼거렸겠지
그때도 나는 바람의 음률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당신은 내 옆을 스쳐갔다
당신의 시선이 나에게 머무르지 않아도
사랑한 지 오래 되었으므로
춤을 춘다
당신을 위해 춤추고 싶은 나는
당신의 나무
―주영헌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흔들림으로 완성되는 사랑
한 그루 나무가 있습니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어,
흔들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몸짓인 나무입니다.
이 사랑은 눈길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신의 몸으로도
부끄럼 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상대의 시선이 머무는지 아닌지는 조건이 아닙니다.
스쳐 지나가도 좋습니다.
사랑한 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춤은 계속됩니다.
무성했을 전생, 뒤척이는 당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고
바람의 음률을 빌려 흥얼거렸을 나무.
그 오래된 헌신이 지금의 흔들림 속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바라봐주지 않아도 흔들리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오래된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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