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기현 기자) 반도체 등 수출 호황에 힘입어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역대 최고 폭으로 증가하며 4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한국은행이 별다른 이유없이 외환 세계 순위 공개를 돌연 중단해 의문과 논란이 예상된다.
한은이 3일 발표한 ‘2026년 8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천422억8천만 달러로 전월보다 143억3천만 달러 늘었다. 6, 7월에 이어 석 달 연속 증가로, 증가폭은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잔액 기준으로는 2022년 5월(4천477억1천만 달러) 이후 4년 3개월만에 최고치다.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 및 운용수익이 늘고 기타 통화 외환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 증가로 큰 폭으로 늘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기업들이 수출 등 경상거래로 확보한 달러를 은행에 대거 예치한 가운데 은행들이 불어난 달러 자금을 한은에 예치하면서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전월 대비 미 달러 가치가 떨어진 점도 요인이다. 유로화나 엔화, 파운드화 등으로 보유한 자산의 달러 환산 금액이 커진 것이다. 자산별로는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이 70억7천만 달러 늘어난 3천870억7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은행들이 한은에 맡긴 예치금은 71억7천만 달러 늘어 303억 달러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은 157억7천만 달러로 6천만 달러 늘었다. 금은 47억9천만 달러로 변동이 없었다. 한은은 최근 13년 만에 현물 금 매입을 재개한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아직은 매수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은 국제국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매달 제공해온 국가별 외환보유액 순위 자료를 임의로 삭제했다. 한은 측은 “국가별 외환보유액 순위가 대외건전성을 평가하는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월별 자료에서 세계 순위를 밝히지 않은 것은 2001년 2월 말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2001년 당시 한은은 외환보유액 세계 1∼10위 국가명과 규모를 첫 수록한 이래 지난달까지 주요국 외환보유액 규모와 순위를 공개해왔다. 이번에 이 항목을 전격 제외하면서 변경 사실이나 배경을 알리지도 않았다.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인식돼왔고, 한은은 오랜 기간 주요국과의 비교 자료를 정례적으로 제공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왔다. 앞으로는 외환보유액 순위를 파악하려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제공하는 기초 자료나 각국 중앙은행 통계를 일일이 찾아 비교해야 하는 불편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한은이 슬쩍 자료 형식을 바꾼 것은 외환보유액이 급증한 시점과 맞물린다. 국제 순위가 하락하는 국면에 관련 자료를 비공개로 하면 논란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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