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정부가 3일 공공기관에 대대적인 ‘다이어트’를 주문했다. 이름부터 ‘공공기관 DIET 2026’이다.
발전·항만·에너지 등 국가 인프라 기관을 통합하고 유사·중복 기능과 자회사·소규모 기관을 정리해 전체적으로 109개를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방향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09라는 숫자가 아니다. 기관을 줄인 결과 국민이 부담할 비용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정부가 이번 개혁의 배경으로 재정 여력 축소를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출생·고령화로 복지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재정 여력은 줄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2025년 1.0%에서 2072년 11.6%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공기관의 몸집도 커졌다. 2025년 임직원 정원은 43만 2000명, 인건비 예산은 37조 7000억원이다. 부채는 769조원에 달한다. 정부도 조직·인력 팽창과 부채 누적을 국민 부담을 키우는 잠재적 재정 위험 요인으로 봤다.
정부 부채와 공공기관 부채는 구분된다. 그렇다고 공기업 부채를 정부 재정과 완전히 떼어놓기도 어렵다. 정책사업에서 손실이 쌓여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면 정부 지원이나 공공요금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공기업 부채는 세금과 요금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발전 5개사 통합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부는 발전사별로 분산된 연구개발과 재생에너지 투자를 통합하고 공동구매, 중복 인력 효율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도 합친다. 모든 광업소가 폐광된 석탄공사는 청산한다. 석탄공사는 2025년 말 부채가 2조 5900억원에 달하고 별다른 영업활동이 없는데도 연간 750억원 이상의 이자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기관을 합친다고 빚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통합되는 기관의 부채와 부실자산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떠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부는 기관 감축 숫자와 함께 부채와 이자비용을 얼마까지 줄일 것인지도 내놔야 한다.
금융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캠코FMC·예울FMC·산은비즈·수은플러스·신보운영관리 등 시설관리 자회사 5곳을 가칭 ‘정책금융FMC’로 통합하고, 캠코CS와 HF파트너스도 ‘정책금융CS’로 묶기로 했다.
중복 업무를 없애 비용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조직을 합친 뒤 업무처리가 늦어지거나 중소·수출기업의 금융 이용이 불편해진다면 개편 취지가 무색해진다. 정책금융은 비용 절감 못지않게 서비스의 효율도 중요하다.
또한 국민 생활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은 LH 개편이다.
정부는 LH를 택지개발·주택건설을 담당하는 가칭 ‘주택도시개발공사’와 주거복지·자산비축을 맡는 ‘주택도시자산공사’로 나눌 계획이다. 개발이익 일부를 주택도시기금에 적립해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LH를 둘로 나눈다고 주택이 빨리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택지 확보부터 인허가·착공·분양·입주까지 걸리는 시간이 실제 얼마나 줄어드느냐다. 개발 공사의 수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택지와 분양 가격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반대로 주거복지 비용을 다시 부채에 의존한다면 조직을 나눈 의미가 퇴색한다.
여기에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맞물려 있다. 정부는 수도권 공공기관의 순차적인 지방 이전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기관 통폐합과 지방 이전이라는 두 개의 큰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는 필요하다. 다만 모든 기관에 같은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은 기업과 금융회사, 자본시장과의 접근성이 업무 효율과 전문인력 확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단순한 지역 배분의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노조의 반발도 넘어야 할 문제다. 통폐합과 지방 이전은 직원들의 근무지뿐 아니라 임금·복지체계와 조직문화, 전문인력 이탈 문제까지 얽혀 있다.
이를 무조건 ‘기득권 지키기’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노조의 반대를 이유로 필요한 개혁까지 멈춰서도 안 된다. 정부는 왜 합치고 왜 옮겨야 하는지, 그 결과 얼마의 비용을 줄이고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노조 역시 반대한다면 해당 기관이 왜 현재의 조직과 입지를 유지해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통폐합 대상 기관 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처우가 낮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용안정과 비용 절감을 어떻게 함께 달성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중복 조직을 합치고도 인건비와 관리비가 그대로라면 통폐합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법 개정과 지역 간 이해관계 조정도 남아 있다. 대형 공공기관의 통합과 이전은 지역경제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회와 지방정부, 노동계와의 협의도 불가피하다.
결국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구체적인 숫자다. 기관별 통합·이전 일정과 함께 부채·인건비·관리비를 얼마까지 줄일 것인지, 정책금융 서비스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LH 개편으로 주택공급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지방이전 역시 지역경제에 가져올 효과와 이전에 따른 비용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공공기관 개혁은 기관 숫자를 줄이고 수도권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이 부담할 세금과 공공요금은 줄고, 정책금융과 공공서비스는 나아져야 한다.
109개 감축도, 지방 이전도 결국 수단이다. 기관 숫자만 줄고 국민 부담이 그대로라면, ‘공공기관 다이어트’가 아니라 간판 바꾸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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