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올해 7월까지 관세 당국에 적발된 무역 범죄 및 탈세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세금을 덜 내는 전통적인 세액 탈루보다 안전 검증이나 화학물질 확인 등 필수 법정 요건을 건너뛰거나, 외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법규 위반’이 전체 적발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8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적발된 관세조사 위반 규모는 총 1조 76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관세 포탈 등 ‘세액 탈루’는 1,760억 원에 그친 반면, 수출입 관련 법령을 위반한 ‘법규 위반’ 적발액은 9,000억 원으로 전체의 80%이상을 차지했다.

◇ 1년 새 6.5배 폭증했던 법규위반…올해도 7개월 만에 9천억 육박
법규 위반 행위는 지난해부터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3,494억 원 수준이던 법규 위반 적발액은 지난해(2025년) 2조 2,578억 원으로 무려 6.5배(546%) 급증했다. 올해 역시 불과 7개월 만에 9,000억 원이 적발되며 2024년 1년 치 실적의 2.5배를 훌쩍 넘어섰다.
특히 필수 요건을 지키지 않은 ‘수입요건 준수 등 위반’은 지난해 2조 773억 원에 이어 올해 7월까지만 7,377억 원이 적발됐다. 국산 둔갑(라벨갈이) 등 ‘원산지 표시 위반’도 1,623억 원으로, 이미 2024년 연간 전체 실적(1,219억 원)을 33% 이상 웃돌고 있다.
반면 세액 탈루는 2024년 2,945억 원, 2025년 4,442억 원에서 올해 7월까지 1,760억 원으로 비교적 완만한 흐름을 보여, 무역 현장의 불법 리스크가 ‘세금 축소’에서 ‘규정·안전 무시’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 건설장비 안전인증 무시부터 스피커 부품 화학물질 검증 회피까지
법규 위반이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주된 원인은 비용 절감과 신속 통관을 위해 법정 안전 요건을 고의로 누락하는 ‘절차적 꼼수’에 있다.
박천정 관세청 심사정책과장은 “적발된 안전 요건 미비 품목에는 산업 현장에 쓰이는 건설장비부터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전기용품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다”며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법정 안전 인증(KC 등)을 아예 받지 않고 반입하는 행위들이 대거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구체적인 적발 사례에 따르면, 음향기기 제조에 쓰이는 ‘스피커 부품’을 들여오면서 유해 화학물질 포함 여부를 검증하는 ‘화학물질 성분 확인 명세서’ 제출을 회피하기 위해 허위로 ‘면제 대상’으로 신고해 통관시킨 행위 등도 덜미를 잡혔다.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증 절차를 교묘히 건너뛰어 시중에 유통하려 한 것이다.
또한 대금 결제 과정에서 제3자 지급이나 상계 처리 등 외국환거래법상 의무적인 사전 신고를 누락하는 변칙 외환거래가 안전요건 위반과 맞물려 적발 규모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발표된 9,000억 원대 ‘법규 위반 적발액’은 관세청이 추징한 세금이 아닌, 불법으로 반입·유통된 '수입 물품의 가액' 기준이다.
박 과장은 “누락된 세금을 징수하는 세액 탈루와 달리, 법규 위반은 적발된 물품 가액과 위반 경중에 따라 과태료 부과, 벌금형 등 형사고발, 통관 보류 및 수입 정지 등 강력한 행정제재 처분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 수입육 사재기로 물가 편취…철제봉 라벨갈이로 K-브랜드 훼손
안전성 검증 회피 외에도 서민 장바구니 혜택을 가로채거나 국내 제조업의 신뢰를 갉아먹는 반칙 행위도 여전했다.
B사 등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긴급 유통 조건으로 저세율(할당관세 등)을 적용받은 수입 육류를 시장에 풀지 않고 보관 창고에 사재기해 94억 원 상당의 국가재정을 편취했다. C사 등은 외국산 철제봉을 수입해 단순 절단만 한 뒤 원산지 표시를 아예 하지 않고 국산처럼 속여 87억 원어치를 판매하다 적발됐다.
이 외에도 해외 본사와 국내 지사 간 특수관계를 이용해 실제 마진을 누락하고 수입가격을 고의로 낮춰 신고해 887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다국적 기업 A사 등 지능형 조세회피도 여전히 적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전국 관세조사 관계관 회의' 개최…"사후 징수 벗어나 공급망 전 주기 관리"
이처럼 불법 통관 및 법규 위반 수법이 고도화되자, 관세청은 조사 행정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기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을 확정했다.
관세청은 지난 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전국세관 관세조사 국·과장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관세조사 관계관 회의’를 열고 향후 업무 운영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관세조사의 범위를 단순 사후 탈세 대응에 국한하지 않고, 수입부터 유통, 수출에 이르는 '물류공급망 전 주기 관리'로 확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국민 체감도가 높은 밥상물품·생필품의 사재기 등 유통 교란, 가짜 니코틴 밀수를 통한 탈세, K-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원산지 둔갑(택갈이) 행위를 집중 단속 과제로 선정했다. 지역특화산업 보호를 위해 공정무역 관점의 통합단속도 함께 전개한다.
동시에 납세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도 병행한다. 기업 소재지를 관할하는 권역세관 중심으로 납세관리 체계를 전환하고, '성실신고 확인제도'와 '자율심사제도' 등 기업 참여형 협력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환경을 구축해 기업과 세관 직원들의 행정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하유정 관세청 심사국장은 회의에서 "관세조사가 단순한 국가재정 확보를 넘어 수출입 공급망 전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국내 제조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며 "논의된 관세조사 체계 개편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해 수출입 기업이 제도권 안에서 공정하게 성장하고 국민이 물가와 생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2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