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호치민시는 베트남 경제를 이끄는 경제수도이다. 지리적으로 중요한곳에 위치해 있어 일찌기 크고 작은 격변을 겪어왔으나, 오늘날 베트남에서 가장 활동적이며 국가 경제를 이끄는 상업수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호치민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가 다양하다.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호치민 최대 번화가인 1군에 있어 이동하기가 편하다. 이들 관광지 주변으로는 다양한 카페거리, 시장, 그리고 식당들이 즐비하다. 호치민을 여행한다면 최소 1박 2일의 일정을 두고 최대 번화가인 1군 거리를 비롯하여 시내곳곳을 여유 있게 여행하시기를 권한다. 노트르담 대성당(Notre Dame Cathedral) 호치민시 1군 지역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건축된 가톨릭 성당으로 성모마리아 대성당으로도 불린다.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벽돌을 직접 공수해와 정교하게 쌓아 올린 까닭에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가운데 한 곳으로 손꼽는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세련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보수공사로 인해 완전한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찌민시의 전경은 도시를 관통하는 사이공 강을 따라 장방형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강변으로 늘어선 마천루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그리고 지류를 따라 프랑스풍의 낮고 밀집된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고,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 외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얼핏 우리네 시골과 흡사해 보이지만 드문드문 야자나무 길게 늘어선 모습이 이색적이며 ‘남쪽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특히 저녁 무렵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야경은 가히 압권이다. 사이공 강에는 화려한 조명 깜빡이며 유람선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거미줄처럼 이어진 도심의 가로등 불빛은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며 활주로 유도등처럼 오토바이와 차량, 그리고 사람들을 길라잡이하고 있다. 호찌민을 찾는 이들이 뜨거운 열도의 ‘남쪽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공항 게이트를 벗어나는 순간 호흡이 곤란할 만큼 뜨겁게 맞닥뜨리는 열기에 놀라고 공항을 벗어나면 도로에서 만나는 오토바이의 행렬에 베트남, 호찌민에 왔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바이크의 천국 호찌민 베트남은 바이크의 천국인 나라다. 베트남의 아침은 바이크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메콩강 삼각주 누런 물색만 아니면 바다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메콩,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장장 4천여 km의 긴 여정을 시작한 강은 삼각주에 이르러서는 300여km 너비로 세를 불린 채 여러 갈래 나뉘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강 주변으로 1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이 강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니 그 크기가 가름조차 하기 어렵다. 비단 사람뿐이겠는가. 동물이며, 식물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 역시 이 강에 의지하여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곳 삼각주를 대표하는 도시가 미토다. 미토는 메콩 하류 메콩 삼각주 최대의 상업 도시로 1680년대 중국에서 망명해 온 양언적(揚彦迪)에 의해 세워졌다. 바다와 인접하여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도시로 지리적 여건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전쟁을 수차례 치러야 했다. 프랑스와의 식민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점령을 당하기도 했고, 20세기 들어서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도시전체가 파괴되기도 했었다. 오늘날에는 메콩 유역에서 가장 상업활동이 활발한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메콩 삼각주 여행의 관문 도시로서 관광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메콩 일대에 의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껀터 가는 길 호찌민을 출발한지 3시간 여, 현지 가이드의 말대로라면 이미 껀터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배회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넘어가더니 금세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한다. 열악한 도로 사정과 교차로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키는 까닭에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결국 한 시간여를 더 달려 도착한 껀터, 껀터대교의 멋진 조명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야경이 다낭 못지않게 화려하다. 외려 늦게 도착한 게 행운이라 생각이 들 만큼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동남아 최대의 강이다. 강의 길이가 4180km에 이르고 유수량 또한 풍부하여 이곳을 터전 삼아 다양한 민족들이 오래전부터 삶을 영위해 온 강이기도 하다. 메콩강 하류에 위치한 베트남 역시 메콩강 유역이 농업 경제에 있어 가장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쌀 생산량의 50%, 수산물과 과일 역시 국내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껀터는 이런 메콩강의 최대 지류인 허우강 남쪽에 있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에게 다낭(Ða Nang)은, 할롱 베이, 하노이, 호찌민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생소한 지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럽사람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남아 최고의 휴양지로 주목받아온 곳으로 국내 예능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소개가 되며 이제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한때 베트남 전쟁의 중심지였던 탓에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유형무형으로 남아 있어 베트남 국민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들 역시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다낭은 이러한 역사적 아픔을 딛고 베트남 3대 도시자 최고의 휴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6대 해변 가운데 하나인 미케비치 해변에는 고급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휘황찬란한 야경들 사이로 오가는 한강 유람선은 유유자적(悠悠自適) 오간다. 사람들은 이런 다낭에서 해변을 산책하거나 강변의 노천 바(Bar)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운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 국가이다. 베트남이 카페 문화가 발달하게 된 계기에는 역시 커피 생산과 무관하지 않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베트남 중부지방에 위치한 후에시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우옌왕조의 수도였으며 20세기 들어서서는 수많은 전쟁을 치른 격전지이기도 하다. 도심으로 흐르는 흐엉강을 따라 기원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중세시대에는 남중국해를 바탕으로 활발한 해상무역이 이곳에서 이뤄졌으며, 응우옌왕조가 수도로 삼은 후 베트남 정치 사회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후에의 비극은 19세기 무렵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식민지화를 꿈꾸던 프랑스는 황제 옹립 문제로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던 틈을 타 후에의 응우옌 왕조를 점령하고 베트남 전역을 식민통치하였다. 이후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후에는 전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중심지가 되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되던 내전을 비롯하여 특히 미국과 치른 1968년 전투는 베트남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도시 유적, 유물들 대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오늘날 후에는 이러한 상흔을 뒤로하고 복구, 복원을 통해 온전한 역사 도시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후에를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후에 황궁과 티엔무사원, 그리고 중세 베트남의 수도(首都)답게 카이딘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노이 주변의 풍경은 소박하고 여유롭다. 하노이 시내의 모습도 호찌민에서 보았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풍의 밀집된 집들이며 일률적인 붉은 지붕, 인력거와 무수한 오토바이들의 행렬 등, 전형적으로 베트남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할롱 베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거쳐야 한다. ‘강이 많은 곳’이란 뜻을 가진 하노이는 고대 베트남의 수도였으며, 월남전 이후 오늘날까지 통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로서, 베트남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노이 역시 200여 년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영향으로 인해 프랑스풍의 건물과 북부베트남 건물이 혼재되어 있고, 유적지와 유물 등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할롱 베이로 가기 전 시간을 내어 하노이를 둘러본다. 베트남 인민의 국부, 호 아저씨 호찌민 ‘베트남 국민의 가슴에 독립과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1966년 발표한 호찌민의 성명서 가운데 한 구절이다. 그는 베트남 국민이 추앙하는 국부이다. 시골 촌로 같은 모습과 남루한 차림으로 일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호찌민,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세르반테스와 프라도 미술관, 레알 마드리드 FC와 그리고 노면전차. 오늘날 이베리아반도의 중심부이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시작된 이베리아반도를 횡단하는 긴 여행은 대륙의 끝, 대서양의 시작인 까보다로까(Cabo DA Roca)를 거쳐 파티마 등 포르투갈을 종단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들어서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마드리드를 향해간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국경을 넘어설 때나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설 때 역시 그 어떤 검문이나 제재가 없다. 마치 이웃한 도시 경계를 넘나들듯 자유롭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국경선이 뚜렷한 지역을 다녔던 여행자들에게 이곳의 국경선은 자유로워서 외려 낯설다. 파티마를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어느 한적한 휴게소에서 멈추어 선다.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지금까지 일주일 이상을 장시간 버스로 여행을 하고 오는 동안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휴게소 커피숍에서 카페 코르토 (cafe corto) 한잔을 시켜놓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느덧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와 있는 올리브농장과 유순하게 펼쳐지는 구릉들, 그리고 온몸으로 퍼지는 진한 커피의 향, 스페인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리스본에서 까보다로까 가는 길은 태백산맥 산길을 오르는 것처럼 구비 길을 한참이나 지나야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육지의 끝이자 대양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여겼던 곳,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로 여기는 그들은 어쩌면 아직도 대항해시대의 영화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까보다로까 언덕에 올라서면 드넓게 펼쳐지는 대서양과 쉴새 없이 밀려드는 높다란 파도가 먼저 반긴다. 마치 ‘폭풍 속으로’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동해안 죽변마을의 작은 언덕과 해안선, 그리고 거친 바다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까보다로까 역시 바람이 드세고 파도가 거칠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CAMOES) 포르투갈의 대문호 루이스 드 카몽이스(Lu s de Cam Es)가 호카곶(Cabo da Roca)을 소재로 쓴 시구로 그의 대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 Os Lusíadas>에 들어 있는 대목이다. 이 짧은 명문(名文)은 유럽의 동쪽 끝이자 대서양의 시작점인 까보다로까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구절이라 할 수 있는데, 까보다로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스페인을 떠나 이베리아반도 서쪽으로 향한다. 낮은 구릉과 평원,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과 올리브 농장. 이베리아반도를 며칠째 지나오다 보니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길은 그렇게 이어지고 세비야를 떠나 두시간여, 국경선을 넘는다. 사실 현지 가이드의 안내가 없었다면 국경선을 지나갔는지조차도 모를 만큼 길옆에 놓인 작은 표지판 외에는 검문소도 상징적인 철조망도 없다. 이렇게 쉽사리 국경을 넘다니,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수 십 년째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춰볼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의 형태는 상상조차 못 할 풍경이었다. 흔히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일컬어 대항해 시대를 이끈 나라이자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 불릴 만큼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니며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정책을 확대해왔던 나라들이기도 하다. 겉으로 볼 때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철조망 같은 국경선도 없을 만큼 가까운 이웃 나라처럼 보이지만 오래 전부터 역사적으로 두 나라는 대단한 경쟁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세 아프리카 무어인들에 의해 지배당했던 시대와 독립투쟁, 포르투갈 왕조 건국, 신대륙발견 등에서 이웃 나라 스페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스페인의 주요 관광자원은 중세 유적과 유물들, 그리고 쉽게 접하기 힘든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게 주 코스이다. 그 중에 몬세라트와 론다는 다른 곳과는 달리 유적지뿐만 아니라 자연경관 또한 빼어난 곳들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비경과 그곳에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이 한데 어우러져 저절로 탄성이 나오던 론다를 떠나 세비야로 간다. 세비야 역시 스페인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코스 가운데 한 곳이다. 스페인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 세비야는 규모 면에서도 스페인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등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오페라의 배경 무대이자 집시들의 영혼이 담긴 ‘플라멩코’의 본고장이기도 한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세비야 대성당 관광을 위해 세비야를 찾는 데는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광 장이 한몫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 중 하나로, 가로 126.18m, 세로 82.60m, 높이 30.48m를 자랑한다. 성당 내에 있는 히랄다탑은 높이가 98m에 이르며 꼭대기에 올라서면 세비야 시내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스페인은 세계 최대의 올리브 생산국가이다. 콜레스테롤 제거와 암 예방에 좋다는 올레익산(Oleic acid)과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 방지에 좋다는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돼 있어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는 올리브는 전 세계 생산량의 30%가 스페인에서 재배되고 있고 특히 이곳 안달루시아 지방이 스페인에서도 최대 재배지라고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산들은 건조하고 숲이 별로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다. 올리브나무는 다행히도 비가 적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재배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가장 적합한 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라나다에서 론다 가는 길,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땅에 그나마 올리브 나무마저 없었으면 고비사막이나 몽골의 대평원처럼 삭막한 풍경으로 인해 지쳐 몸서리치지는 않았을까. 론다, 작지만 볼 것 많은 알찬 도시 론다는 해발 739m의 절벽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인구 역시 4만여 명이 채 안 된다. 우리나라에는 몇 년 전 TV에서 방송되었던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또는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몇 해 전부터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우디의 건축물과 이베리아 반도의 다양한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기대감이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알함브라궁전’을 간다는 사실이 가장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발렌시아에서 그라나다까지는 거리상으로는 500여 km, 버스로 최소 6시간이 걸린다. 그러나다를 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알함브라궁전’을 가기 위해서다. ‘기타의 사라사테’라 불리는 스페인 작곡가 타레가(Francisco Tárrega, 1852~1909)가 작곡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연주곡으로도 잘 알려진 알함브라궁전은 이슬람 왕국의 가장 위대한 궁전이며 유럽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슬람궁전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은 이베리아반도를 장악한다. 그리고 800여 년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통치하기에 이른다. 이슬람 나스르 왕조 무함마드 1세에 의해 1200년경부터 짓기 시작한 궁전은 100여 년 동안 확장을 거듭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내부 분열과 가톨릭 세력의 압박으로 무어인들의 세력이 약해지며 결국 이사벨라 여왕이 이끄는 스페인 가톨릭 세력에 의해 1492년 이슬람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스페인을 여행하려면 적어도 이베리아반도를 횡단할 각오를 해야 한다. 마드리드에서 출발을 하든 바르셀로나에서 시작을 하든 말이다. 한국의 패키지여행사 대부분도 횡단하는 일정으로 상품이 구성되어 있는데, 횡단 코스가 열흘이내의 짧은 시간에 스페인 주요도시와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이 코스를 선호한다. 스페인을 저렴하게 가기위해 아부다비 경유편 항공을 이용했다. 인천에서 아부다비까지 8시간여, 대기시간 20여시간, 다시 아부다비에서 바르셀로나까지 5시간여 등 꼬박 2일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장시간의 대기시간과 비행이었지만 대기시간에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둘러볼 수 있었기에 다행히 피로감은 적었다. 시간적으로 여유 있고 저렴한 항공권으로 다른 국가 또는 도시를 투어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경유편 항공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드디어 바르셀로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의는 아니었지만 바르셀로나를 하루 만에 둘러보겠다고 한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물론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관광지 스템프찍기 놀이하듯 그렇게 다녀올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각자의 환경에 맞추려다보니 이런 일정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