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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원 이익 제시했더니 "10명 중 7명은 탈세 동의"..."처벌 약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23년 한국인의 납세의식 조사’ 결과 발표
국민 열 중 일곱 ‘한국은 성실납세국’
구체적으로 이익을 제시하면 할수록 탈세 의사 증가
탈세 시 사회적 매장, 충분한 법적처벌…75.5% 그렇지 않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민 대다수는 자신과 주변에 대해 성실납세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이익이 있을 때에는 상당수 탈세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혔다.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정책연구실장은 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러한 내용의 ‘2023년 한국인의 납세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1월 5일부터 2월 2일까지 각 계층별 무작위로 선정된 국민 2400명을 상대로 전화면접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됐다.

 

 

국민들이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통이다 없이 4점 척도로 물어본 결과 66.3%가 ‘그러함’, 33.7%가 ‘그렇지 않음’이라고 답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와 종합소득세 대상자 2478만7426명 중 순수 근로소득만 있는 사람 비중은 62.3%다.

 

근로소득자는 원천징수 대상자로 가짜 기부금 영수증 등 매우 특이한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성실하게 납부하지 않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순수 근로소득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긍정적 답변(66.3%)가 나왔다는 것은 그리 평범한 현상이라고 풀이된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친인척과 지인이 성실하게 납부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답변이 89.8%를 차지했다.

 

89.8%보다 정말 주목해서 볼 지점은 성실하게 나쁘지 않다고 보는 10.2%다.

 

대체로 우리 국민들은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사회분위기가 압도적 임에도 10.2%는 주변의 탈세에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대목은 자신이 납세관이 철저한지 묻는 납세순응 부문에서 드러난다.

 

 

응답자들에게 100% 안 걸릴 테니 탈세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탈세를 하지 않을 사람이다’란 자기 확신을 묻는 질문이다.

 

연구자는 유보적 답변을 제거하기 위해 보통이다 없이 4점 척도로 물어봤는데 대체로 할 수 있다는 답변이 20.5%, 매우 그렇다는 답변이 8.2%, 도합 28.7%가 탈세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현금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은 현금매출액 1000만원을 정직하게 신고하겠는지를 물어봤다. 이 질문은 나와 관계된 현금매출인지 물어보지 않아 타인 탈세에 대한 신고인식도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48.5%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안 걸리면 탈세할 수 있다는 위 질문의 28.7%에서 약 20%포인트 정도 올라간 수치다. 

 

 

다음 질문은 한 발 더 들어가 60만원짜리 가전제품을 살 때 현금을 주고 사면 5%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에 응하겠느냐고 물었다. 5%가 안 된다면 10%는 어떤지 물었다.

 

위 질문은 상대적으로 도덕 윤리관에 대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눈 앞에 구체적 이익이 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3만원(5%) 깎아주면 탈세할 수 있다는 답변이 29.3%, 6만원(10%) 정도면 탈세할 수 있다는 답변이 무려 42.3%나 나왔다. 앞선 질문의 답이 48.5% 였는데 이번엔 도합 71.6%로 뛰어 올랐다. 

 

하나 더 보아야 할 것은 탈세에 대한 처벌 인식이다.

 

설문지에서는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충분한 사회적 지탄이나 처벌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로 물어봤다. 돌려말하긴 했지만, 탈세자에 대해 충분한 법적 처벌 및 사회적 매장이 이뤄지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이에 대해 매우 그렇다는 답변은 4.6%, 대체로 그렇다는 19.9%, 별로 그렇지 않다는 43.6%, 전혀 그렇지 않다는 31.8%나 나왔다. 도덕심이나 윤리 문항을 먼저 물으면 응답은 완곡한 표현에 집중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75.5%나 부정적 답변이 나왔다는 것은 국민 상당수는 탈세 처벌이 제대로 안 이뤄진다고 본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겉으로는 잰 체 하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과 인연 끊는 대신 30억원?이라는 제안에 서민들은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재벌 갑부들은 고작 30억원?이라며 콧웃음을 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재벌들조차 30억원이 아니라 300조원을 제시한다면 비웃지 못할 것이다.


1972년 알링햄과 샌드모의 납세순응 연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진행되는 납세순응 연구는 대체로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전개돼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탈세 이익을 위험 자산으로 보아 위험 수준과 기대이익을 비추어 탈세를 할지 안 할지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사람은 눈앞의 이득이 자신의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수치에 도달하면 도덕, 윤리, 법률에 반하여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 사회가 건강하려면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평하게 물질적으로 풍족하여, 적은 돈에 자신의 윤리를 넘기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실정은 3~6만원 정도면 탈세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며 탈세를 해도 사회적으로 매장되거나, 혹은 처벌을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시사점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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