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태 기자) 롯데손해보험 등 투자기관들이 메리츠증권을 통해 투자한 2천80억원 상당의 펀드가 전액 손실을 보면서 발생한 분쟁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메리츠증권의 '깡통펀드' 판매 의혹 관련 조사에 들어갔다.
약 650억원의 손실을 본 롯데손보는 해당 펀드가 위법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는데, 판매 시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지난 6일 금감원에 메리츠증권의 미국 텍사스주 소재 발전소 관련 투자 펀드의 위법성 여부를 점검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롯데손보에 의하면 메리츠증권은 2018년 12월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526메가와트(MW) 규모의 '프론테라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의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메자닌 대출형(선순위채권과 보통주자본 사이에 속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본조달) 펀드를 조성했다.
펀드 규모는 1억6천만 달러(약 2천100억원)로, 메리츠증권은 '셀다운(sell-down)' 투자자를 모집했다. '셀다운'은 증권사들이 먼저 자기자본과 대출 등으로 대체자산을 매입한 뒤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에 재판매하는 방식이다. 증권사는 셀다운에 실패하면 해당 투자자산을 떠안아야 한다.
롯데손보는 2019년 2월 이 펀드에 5천만 달러 투자를 집행했지만 이후 2020년 12월 해당 펀드 관련 기업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이어 2021년 8월 펀드 기업회생절차가 종료, 롯데손보를 포함한 모든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2년6개월 만에 전액 손실 처리됐다.
롯데손보가 주장하는 쟁점은 총 세 가지로 압축된다. 앞으로 논의될 주요 쟁점은 '위험성 고지' 여부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이 투자자들에게 담보구조의 취약성과 발전소 현금흐름의 심각한 변동성 등 특수한 위험성에 대해 전혀 고지하지 않았다는 게 롯데손보의 주장이다.
이에 메리츠증권은 "함께 현지 실사와 미팅을 진행했고 실사 과정에 직접 참여했는데 해당 거래 변동성이나 구조를 모르고 투자했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롯데손보는 해당 펀드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펀드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OEM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은행·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의 요청을 받아 만들어 운용하는 상품으로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1조6000억원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라임사태' 또한 우리은행의 OEM펀드로 알려진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메리츠증권은 "자사는 해당 펀드를 총액 인수한 후 롯데손해보험 등에 재매각했으며 펀드 운용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롯데손보는 해당 담보가 '깡통담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이 투자 당시 제시한 법률실사보고서와 투자설명서 등에 따르면 본건 거래의 담보구조는 '일반적'인 것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담보가 존재하지 않는 무담보대출이란 설명이다.
롯데손보는 "일반적 메자닌대출 구조와 달리 메자닌 차주에게 줘야 할 선순위 차주 주식이 선순위대출 대주에게 모두 제공됐다"며 "이런 구조적 특수성에 대해 메리츠증권과 운용사는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EOD 이후 담보권 행사가 제한돼 원리금 전액 손실을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11월 이 펀드의 판매사인 메리츠증권과 운용사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에 부당 이득금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한 상태인데, 금감원은 소송의 진행상황을 지켜 보며 조사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보지 않고 전문가들끼리 다투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재판 과정에서의 추가적인 특이사항 등을 살피며 상대방(메리츠증권)의 입장도 들어보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당 펀드에서 전액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공동 대응에 나설지 여부도 주목되는 가운데, 금감원은 "현재로선 제기된 민원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손보를 포함한 다른 투자기관으론 KDB생명, 한국거래소, 교원라이프, 교직원공제회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프로젝트펀드일 경우 단일 건에 투자하는 만큼 회사가 파산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어떤 회사가 파산할 가능성은 그렇게 쉽지 않고 투자기간이 단기일수록 파산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처의) 리스크를 분석하거나 감당할 능력이 있고 일반투자자에 비해 규제 수준이 낮다"며 "금감원보단 소송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라임사태가 연상된다"며 "기업 간 투자에 있어서 이번 메리츠증권의 사례는 기존 사례와 달리 심각한 사안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메리츠증권은 "최근 감사실과 법무팀이 펀드판매와 관련 법리적 사항을 검토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자평하면서 "금감원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 의혹을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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