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체재의(量體裁衣)] 인사청문제도의 가늠자는 오직 민의

2020.02.23 09:23:38

'양체재의(量體裁衣)’란 일을 실제 상황이나 형편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평소 법률과 정책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문병윤 변호사의 주장이 담긴 연재물이기도 합니다.  

 

(조세금융신문=문병윤 변호사) 조국,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이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이후 정세균 국무총리도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국회 동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행된 공직자의 비율이 전임 정권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인사전횡을 지적하거나, 인사청문회 무용론까지 제기한다.

 

인사청문회는 헌법상의 제도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국회 동의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국회에서 선출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최종적인 임명권자가 대통령인 이유는 우리나라 공직자 중 유일하게 전국민으로부터 직접 선거를 통해 선택된 대통령이 민주적 정통성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15대 국회인 2000년 2월 16일 헌법상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공직을 대상으로 처음 국회법에 도입되었고, 16대인 2000년 6월 23일 인사청문회의 절차와 방식을 규정한 인사청문회법이 별도로 제정되면서 기본틀을 갖추었다.

 

이후 인사청문 대상인 공직은 계속 확대되었는데,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및 경찰청장(2003년)이 국무위원인 장관(2005년)보다 먼저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사청문제도의 목적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권력기관의 장 및 국무위원뿐만 아니라 국세청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인사청문회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은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국회 동의 대상자) 또는 상임위원회(국회 비동의 대상자)를 열고 20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뒤 찬성 또는 반대의견이 기재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본회의에 보고한다. 국회의장은 제출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송부한다.

 

인사청문제도의 취지는 공직후보자의 경력, 도덕성, 전문성 등을 검증함으로써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인사권을 국회가 견제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원리,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보자면,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되어 야당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기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기되는 야당의 의혹이나 문제제기가 정당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소위 ‘청문회정국’은 얼마든지 길어지더라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은 청문회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고, 일부 연구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인준까지 평균 9주 이상이 걸린다(다만, 이 기간이 너무 길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일련의 인사청문보고서 미채택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인사청문보고서에 법적 효력을 부여해 구속력을 강화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인사청문제도 무용론 또는 폐지론까지 다양한 대안이 제기된다.

 

인사청문제도의 무용론은 이미 청문회를 통해 부적격 낙마한 공직자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인사청문제도의 폐지론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사청문보고서의 구속력을 강화하자는 의견은 우리 헌법이 일부 공직자에 한해 국회 동의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에 어긋난다.

 

현행 인사청문제도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합의하여 만들고 고쳐온 결과다. 국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일각에서는 모종의 음모론에 매력을 느끼겠지만,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어 대상 범위가 확대되어 온 과정이나, 역사적으로 낙마한 공직후보자의 면면을 보면 영 엉터리인 제도는 아니다.

 

개선점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쓸 사람이 없다’는 한탄이나 ‘사돈의 팔촌의 먼지까지 털어보자’는 심산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프로필] 문병윤 법률사무소 수영 대표변호사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사시 54회(사법연수원 44기)
• 국회 보건복지위 행정안전위 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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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윤 변호사 1979by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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