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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한 과점 해소와 예대금리차 축소, 취약차주 보호 강화, 손실 흡수능력 확충을 주문하면서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대응 마련에 착수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가 전달된지 이틀만인 지난 2월 17일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은행권 TF)’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은행권 TF에는 금융당국 담당 부서 임직원은 물론 각계 분야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위, 금감원은 물론 학계, 법조계, 소비자 전문가 등으로 TF가 구성됐으며 과제별 실무작업반도 함께 가동됐다. <편집자주> |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은행권 TF는 은행권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경쟁을 촉진할 방안을 마련하고 고정금리 비중을 늘리는 등 금리체계를 개선하는 것까지 그간의 은행권 내 ‘잘못된 관행’ 전반을 점검하고 보완하겠단 계획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이같은 행보에 금융권은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다.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금융당국이 경쟁 촉진 카드로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과 관련 카드사와 증권사를 가진 일부 기업에 대한 특혜를 주는 것이며, 국민 편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나아가 금융위원회 내부에서도 국내 은행의 과점 강도가 해외 사례에 비해 높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최근의 금융당국 행보가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분분하다.
◇ 과점 무너뜨릴 ‘메기’ 불러들이나
금융당국은 오는 6월 말까지 은행권 내 잘못된 관행 전반을 점검하고 보완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6가지 과제가 선정됐다.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에 대한 대응 마련이 목표다.
먼저 금융당국의 은행권의 구조개선 논의의 핵심은 과점체제 깨기다. 이를 위해 신규 플레이어를 추가해 자율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겠단 방침이다. 현재까진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또는 기존 시중은행이 아닌 금융사가 은행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논의된 상태다.
이를 두고 업계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카드‧보험사 등 제2금융권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이외 금융권 전반엔 과연 신규플레이어 추가 진입이 가능할지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깔려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일 은행권 TF 실무작업반 1차 회의에서는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카드‧보험사의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허용 방안이 논의됐다. 은행업 경쟁 촉진 차원에서 신규 플레이어를 등장시키거나 비은행권과의 경쟁을 강화하겠단 목표다.
금융당국은 첫 번째 방법으로 신규 플레이어 추가 방안을 제시했다. 스몰라이센스나 소규모 특화은행을 도입해 새 플레이어를 시장에 진입시키겠단 것이다.
기존 은행이 수행하던 업무범위를 세분화해 은행을 설립하는 방안도 언급됐는데, 예를 들어 은행이 취급중인 소상공인대출, 주택담보대출, 중소기업대출 등을 세분화해 각각의 전문은행 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스몰라이센스를 도입해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목적은행 또는 챌린저뱅크를 시행 중이거나 시범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지방은행이 자본금 1000억원 등 인가요건을 충족할 경우 시중은행으로 전환해주겠단 것이다. 전체적인 은행 수를 늘려 기존 시중은행과의 경쟁체제를 형성하겠다는 구성이다.
다만 금융권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구상이 실제 실현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이 되려면 비금융주력자한도 등 지배구조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시중은행은 비금융주력자한도가 비금융주력자 4%, 동일인 주식보유 10%다. 그런데 현재 지방은행의 비금융주력자한도는 비금융주력자 15%, 동일인 주식보유 15%로 훨씬 높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위해선 기존 대주주가 지분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과정도 복잡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이 지방은행에 비금융주력자한도 예외 등을 인정해줘야 하지만 특혜논란을 비껴가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카드‧보험사 등 제2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종지업 논의를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해당 방안이 추진되면 카드사와 보험사도 은행이나 증권사와 같이 입‧출금 계좌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그간 카드대금을 받기 위해 시중은행의 계좌를 빌려야 했는데, 종지업이 허용되면 은행 계좌 없이 독자적으로 계좌개설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삼성통장, 현대통장 등 자체 플랫폼에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수수료 절감 효과도 따라온다.
만약 금융당국이 논의 중인 은행권 내 신규 플레이어 추가 도입과 지방은행 시중은행 전환 등이 실현되면 고객 입장에선 선택권이 넓어지는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기존 은행권 과점체제 깨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로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생기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비은행사가 계좌를 발급할 때 은행예금과 달리 예금보험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소비자 보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다행인 점은 현재 금융당국도 이런 지적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은행의 은행업 진출 허용을 추진하면서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 문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상태로 비은행권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게 될 경우 충분한 건전성과 유동성, 소비자 보호체계가 잘 갖춰진 금융회사에 한해 확대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겠단 계획이다.
◇ 비교대출 무한경쟁 시대 열린다
이후 지난달 8일에 개최된 은행권 TF 2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는 은행권 고객이 더욱 손쉽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궁긍적으로 대출금리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특히 2차 회의에선 온라인 및 원스톱 대환대출 인프라 구축 현황 및 확대 계획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금융당국은 대환대출 참여자를 확대하고 소비자 의사 결정을 충분히 지원하기 위한 개선 방안 마련에 집중하겠단 방침이다.
대환대출이란 새로운 대출을 제공하는 금융회사가 소비자의 대출금을 대신 상환해주는 것을 말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상환요청 전달과 필요정보 제공, 최종 상환 결과 확인 등 금융회사 간 상환 절차를 금융결제원 망을 통해 중계하고 전산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현재로선 각기 다른 플랫폼마다 제한된 정보가 제공되고 있고 실제 상환하는 데에도 절차가 복잡하다. 대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환대출 인프라가 완성될 경우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여러 금융회사 대출상품을 비교할 수 있다. 모든 절차를 온라인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게 만들어 소비자와 금융회사 간 시간 비용 절감은 물론 대환대출 시장 참여를 독려한다는 게 정부 측 계획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오는 5월 개시되는 대환대출 플랫폼에 신용대출만 포함키로 했으나, 앞으로 모든 대출 상품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최대 목표는 주담대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주담대의 간편한 대출 이동을 통해 금리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주담대는 전산화가 가능한 대출금 상환 외에도 등기이전이 필요해 금융회사 간 모든 절차를 온라인으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날 회의에서 오화세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등기설정 및 말소와 같은 법무서비스를 어떻게 넣을 수 있을 것인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예를 들면 전자위임장을 내줘 소비자가 현장을 직접 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있을 것 같다. 신용대출 만큼은 소비자 편의성이 개선될 것으로 잠정 확인했으나 주담대는 소비자 편의성이 얼마나 제고될 수 있을지 계속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 ‘돈잔치’ 논란 부글부글…성과급 체계 뜯어고친다
지난달 15일 개최된 은행권 TF 3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선 은행권 위기 대응능력 강화와 돈잔치 논란을 촉발한 성과급 체계에 대한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먼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세계적 투자은행(IB)인 스위스 크레디스위스(CS)에서 부실충격이 발생하면서 위기의식이 고조된 가운데,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위기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정비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를 적극 검토하고 은행별 리스크관리 수준 및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등에 따른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이란 신용팽창기 은행에 추가자본을 적립(0~2.5%)토록 하고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자본적립 의무를 완하해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여신의 향후 부실화 가능성을 고려해 올해 2~3기 중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은행별 스트레스테스크 결과에 따라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스트레스 완충자본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또 금융당국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고금리 시기 성과급 ‘돈잔치’ 비판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향후 외부적 요인보단 실질적 성과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희망퇴직의 경우도 주주총회 등에서 주주로부터 평가받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
◇ 금융권 반응은 냉랭…과점깨기로 부실초래 가능성
금융당국의 은행권 대상 6대 과제에 대한 논의를 두고 금융권 반응은 다소 냉랭하다.
당국 논의에 따라 금융 고객의 편의성이 개선되는 등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제시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과점 깨기 측면에서 과도한 경쟁 부추기기는 오히려 금융 고객에 불편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본지 취재진에 “금융당국이 (은행권 TF를 통해) 내놓는 방안과 관련해선 업계와 소통이 잘 이뤄지고, 상당 부분 의견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다만 (신규 플레이어 도입과 관련해) 신생 금융사가 시장에 진입한 후 부실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생기면 금융소비자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우려가 있으므로 각별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일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은행권 TF의 논의 방향에 대해 “금융위가 TF를 통해 추진하는 금융정책 변화는 재벌 및 빅테크에 혜택을 주지만 금융의 공공성을 훼손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할 우려가 크다. 섣부른 금융정책 변화 추진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위가 은행권 경쟁 촉진을 이유로 카드사나 증권사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면 카드사와 증권사를 소유한 재벌에게 은행업 진출을 사실상 허용하는 것이며, 이는 국민 편익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금융노조는 “은행산업 내 경쟁 심화는 저신용 차주에 대한 대출 증가와 금융산업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은행권 TF의 6대 주요 과제인 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에 대한 대응 마련을 위해 매주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있다. 오는 6월까지 과제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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