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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제 못 건드리는 나라, 부동산은 왜 매번 흔드나

 

(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집값 논의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10·15대책 발표 이후 거래가 막히고 규제지역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시장은 이미 얼어붙었다.

 

하지만 집값을 좌우할 핵심 변수인 ‘세제 개편’ 방향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내년 5월 종료되는데, 정부는 연장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보유세 강화·양도세 조정 등 핵심 개편안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듯 조용히 묻혀 있다.

 

그 와중에 경실련은 대통령비서실 공직자 28명의 부동산 재산 분석을 공개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의미는 무겁다.


대통령실 공직자 10명 중 4명(39%)이 실거주가 아닌 전세 임대 운영을 하고 있고, 서울 주택 보유 공직자 12명 중 4명은 실거주하지 않는다. 비주택 건물 보유 공직자 11명 중 7명도 임대 운영 중이다.


정책을 설계하고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핵심 참모들의 부동산 운용 방식이 ‘집을 보유해 임대수익을 얻는 구조’에 가깝다는 의미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 나온다.
이 구조에서 보유세 강화가, 다주택 규제가, 장기특공 축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사실 한국 부동산 정책의 ‘핵심 오류’는 반복된다.


집값을 잡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수단은 세금이다.
보유세 강화는 매수·매도 타이밍을 조정하고, 다주택자 양도세는 시장 공급을 늘린다. 장기특별공제 조정은 고가 1주택자의 절세 수단을 바로잡는다. 전 세계가 증명한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 확실한 도구를 알면서도 쓰지 못한다.
이유는 단 하나, 세금은 시장의 도구가 아니라 정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누구도 보유세 인상을 말하기 어렵다.
고가주택 보유자, 다주택자 모두 주요 유권자층이다.


정치적 계산이 개입하는 순간, 정책의 진정성은 후순위로 밀린다.

 

여기에 정책을 집행해야 할 관료조차 다주택·임대 구조에 놓여 있다.
스스로 대상이면서 스스로 요율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정책 설계자와 정책 대상자가 겹치는 구조는 결국 “딱 필요한 조치를 가장 먼저 피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한국 부동산 정책은 매번 같은 식으로 반복된다.
거래가 끊기면 규제지역을 넓히고, 대출을 조인다.


집값이 오르면 토허구역을 확대하고 공공물량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시장 체질을 바꾸는 핵심인 ‘세금’은 선거와 이해관계 앞에서 금기처럼 봉인된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해결책은 모두 알고 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세금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한국 정치·관료 구조에서는 가장 쓰기 어려운 수단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부동산 정책은 앞으로도
핵심은 비켜가고 주변만 건드리는 익숙한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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