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예산실이 깎는 식으로 국가 예산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23일 밝혔다.
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단순하게 예산을 배분하는 관행을 없애겠다”며 “국가적 우선순위에 기반한 전략적 자원배분을 위해 실질적인 ‘탑다운 예산제도’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 예산실 빨간펜 시스템의 한계
탑다운 예산제도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재정개혁 시스템의 심장이다.
지금도 그 외형은 중기재정계획, 총액편성제도, 국가재정전략회의 등으로 남아 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예산처 예산실(옛 기재부 예산실) ‘빨간펜’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다.
예산실 빨간펜 시스템이란, 예산실이 정부 예산의 시어머니가 돼서 내년에 어떤 밥상을 차릴지를 빨간펜으로 첨삭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연말에 내년 정책목표 세우면, 예산실이 중간에 딱 끼어서 1분기에 예산안 편성‧기금운용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준다. 그러면 각 부처는 예산안 지침에 맞춰 소요예산을 만들어서 예산처 예산실에 전해준다. 여기까지는 탑다운 예산제도의 외형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외형 뒤에는 예산실 ‘빨간펜’이 있다. 예산실이 보기에 타당성이 부족하거나 과다 책정했다고 보면 빨간펜으로 줄을 좍좍 그어서 예산을 삭감한다. 부처가 예산을 통과하려면, 예산실이란 시어머니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예산실은 재정 전문가는 맞지만, 국가 각 국정 분야를 속속들이 다 아는 건 아니었다. 이 탓에 전문성이나 실정을 무시한 채 숫자만 깎는 일이 벌어졌고, 과학기술 예산의 대폭 삭감과 같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 재정민주주의, 탑다운 시스템
탑다운예산제(총액예산제)는 시어머니(예산실)의 빨간펜을 뺏고, 각 부처에게 예산 편성 자율권을 주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중기재정운용계획이란 큰 국가전략목표를 세우면, 기획예산처는 이 목표하에 부처별 총액 예산한도만 정해주고, 각 부처는 총액한도 내에서 ‘알아서’ 예산을 짠다.
지금은 3~5월 예산 시즌 때마다 부처예산 좀 통과시켜달라고 예산실 앞에서 장사진을 치지만, 탑다운 시스템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부처 내 논의가 치열해질 뿐이다.
부처 내 논의를 마친 후에는 5월 초 전후로 열리는 국가재원배분회의에서 핵심 조정이 진행된다. 현재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있긴 하지만, 과거 참여정부 때처럼 모든 국무위원이 참석해 1박 2일로 국가 중장기 전략 관련한 예산 배분을 치열하게 피력하지는 않는다.
이런 회의가 필요한 이유는 이런 회의가 없으면 힘 있는 부처 중심으로 예산이 돌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은 규모가 작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사업에 돈이 돌지 않고, 힘 있는 부처에 과도하게 예산이 고이는 경제적 비효율이 발생한다.
국가재원배분회의는 이러한 경제적 비효율을 해소하고, 필요한 데 필요한 만큼 돈을 투입하고자 하는 부처 간 숙의의 장이 된다.
탑다운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제대로 자원을 배분하고, 이것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명확히 평가하는 잣대가 필요하다.
박홍근 후보자는 이날 그 도구로써 ‘재정개혁 2.0’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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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국정과제‧중기재정계획‧단년도 예산 연계: 정책 우선순위‧자원배분 기준 제시 ② 실질적인 톱다운 예산제도 정착: 국가적 우선순위 기반 자원배분 ③ 각 부처 전문성-자율성 존중: 철저한 성과 중심 평가 ④ 중앙‧지방 정부 내 성역 없는 지출구조조정: 재량지출은 물론 의무지출도 조정대상 |
이는 지난해 8월 국무총리실이 공개한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내 국정기획위원회가 설정한 123개 국정과제 중 17번째 ‘재정 운용의 투명성·책임성 강화’와 일맥상통한다.
국정위는 현재 취약해진 국회 예산심의권을 강화해 정부는 ▲구체적 국가재정운용계획 보고 ▲계획-실적 관련 평가·분석보고서 제출 ▲구체적인 회계·기금 간 자금 전·출입 요건 설정 및 운용실적 국회 보고 ▲고액·대규모 국유재산 매각·교환시 국회 사전보고 등이다.
◇ 예산 시스템의 목적 ‘국가전략목표’
탑다운 시스템은 국가정책에 자원을 얼마만큼 보내는 지를 결정한다면, 그 얼마를 어디다 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전략목표에 달렸다.
이날 박홍근 후보자는 국가전략목표 관련해선 AI 산업 대전환, 인구구조 변화, 기후위기, 지방소멸, 양극화를 꼽았다.
성장과 배분 관련해선 “불요불급한 지출은 줄이되 AI·반도체·바이오 등 성장동력에는 집중 투자하고, 복지 수요에도 대응하겠다”며 “적극재정에서 성과 제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재정 오용에 대해선 “재정은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편성부터 집행, 평가까지 전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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