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회사와 비금융 분야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난 40년간 금융산업의 족쇄로 불렸던 ‘금산분리 원칙’ 완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원칙이다. 기업과 은행이 결합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일명 ‘은산분리’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정보 기술 발전으로 검색 플랫폼인 네이버가 네이버 페이를 통해 결제 사업을 맡는 등 금융과 비금융의 구분이 모호한 빅블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산분리가 금융산업의 발전을 막는 해묵은 제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금융업계에선 금융당국의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을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마침내 ‘안 되는 것 빼고 다 가능한 길’이 열릴 것이란 기대감에 고조된 상태다.
◇ 해묵은 규제로 속앓이한 업계, 칼 뽑은 김주현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식 취임 전인 후보 시절부터 금산분리 원칙 완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후보 지명 직후인 지난 6월 7일 기자 간담회에서 산업구조 변화를 감안해 금산분리 원칙 개편을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콕 찍었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공개한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통한 디지털 혁신’과도 궤를 같이한다. 윤 정부 방향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 간 융합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금융산업 규제 전반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는 이때 금융사와 비금융사 간 업무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란 게 김 위원장 발언의 요지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를 목적으로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 4%(의결권 미행사 시 1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1982년 도입된 제도로, 은행 역시 비금융사 지분을 15% 이상 가질 수 없다.
시중은행들은 금산분리가 역차별 제도라며 지속적으로 반발해왔다. 빅테크가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이에 준하는 규제는 받지 않는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주장을 펼쳐왔다. 은행은 빅테크와 달리 금산분리에 발목이 잡혀 혁신 산업에 투자하기 어렵단 취지다.
금융당국이 예외적으로 금융사의 비금융 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바로 금융규제 샌드박스다. 금융위는 혁신성 있는 사업 위주로 금융사 대상 금산분리 규제를 유예해주고 있다. 기간은 최대 4년(2+2년)으로 KB국민은행의 리브엠과 신한은행의 땡겨요 사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샌드박스는 기간이 짧고 한정적이다 보니 경쟁력을 키우기 부족하단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런데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은행 입장에선 샌드박스를 통한 허가 없이도 다양한 사업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입맛 다시는 금융권과 뜨뜻미지근한 재계
다만 금산분리 완화는 그간 대기업 등 산업자본도 강력하게 요구해온 내용이지만, 최근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재계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산분리가 완화로 금융지주 지분을 일정량 이상 소유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를 취득해 늘리려는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본지 취재진에 “금융분야 지분을 취득한다고 한다면 기존의 금융지주나 은행보단 인터넷전문은행이나 빅테크쪽을 선택하려는 쪽이 많을 수 있다”며 “은행은 정부 입김에 따라 사업 방향이 달라지는 사실상의 관치 사업 분야인데 안정성을 생각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크게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반응과 정반대로 은행들은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과 빅테크 등이 새로운 업종을 개척하며 은행업 고유의 영역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자본 중 IT기업은 특례 적용에 따라 비교적 손쉽게 금융업 진출이 가능하다. 카카오가 만든 카카오뱅크, 비바리퍼블리카가 만든 토스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은행과 같은 여‧수신 업무를 수행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규제에선 자유롭다. 은행만 촘촘한 규제로 인해 산업자본 영역의 진출이 막힌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 전통 금융사들은 금산분리 완화가 이같은 형평성 문제는 물론 ‘새 먹거리’ 발굴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시점에 금융사라고 해서 금융만 하다가는 자칫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반응이다. 금융과 비금융이 융복합된 서비스를 선점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 당국 테이블에 올라온 3안은 무엇인가
현재 금융당국은 금산분리 완화를 두고 ‘포지티브 규제’를 추가 보완할지,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지 두 가지 방향을 두고 고민하면서 동시에 자회사 출자와 부수업무를 분리해 자회사 출자는 네거티브 방식을 따르고 부수업무는 포지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포지티브 규제 추가 보완을 선택할 경우 현행 나열식으로 규정한 자회사 출자 범위와 부수 업무에 디지털 전환 관련 신규 업종 등을 추가하게 된다. 감독 규정 개정과 유권해석만으로 신속 추진이 가능하나, 새 업종을 추가할 때마다 규정을 바꿔야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네거티브 규제가 시행되면 상품 제조와 생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모든 사업에 대한 진출을 전면 허용하게 된다.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라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포지티브보다 규제 완화 효과가 크다.
금융업계에선 포지티브 확대 방안보단 네거티브 방안이 더욱 다양한 비금융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주는 만큼 더욱 반기는 입장이나, 법률 개정이 필요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포지티브 확대 방안에 대해 “현행 체계를 유지하는 거라 신속 추진할 수 있다”면서도 “각 과에서 부수업무가 가능한지 유권해석을 계속해야 하고 은행 등 금융사는 당국에 계속 질의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라고 언급했다.
신 국장은 네거티브 방식에 대해선 “대표적 산업자본을 생각했을 때 주력산업은 안된다고 보면 된다”고 네거티브 전환 시 제외될 일부 업종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선업과 반도체, 건설업, 황공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은행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나 건설업을 하는 등 터무니없이 연관성이 없는 주력산업은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자회사 출자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부수업무는 포지티뷰 규제를 실시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자회사 출자는 보다 유연하게 운영하면서 리스크와 이해상충 우려를 줄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회사 출자 관련 네거티브 방식 적용데는 법률 개정이 필요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고 자회사를 통한 다양한 비금융업 수행은 이해관계자 간 갈등 소지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 업무위탁 제도개선도 고려 중
금융위는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금융사의 업무위탁 제도개선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위탁 제도란 금융사가 인가 등을 받은 금융업무와 겸영 업무, 부수 업무 등의 영위를 위해 제3자의 용역 또는 시설 등을 계속적으로 활용하는 행위인데 금융위는 향후 금융사의 위탁이 가능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금융위는 업무위탁 규정의 상위법 위임근거를 마련할지, 업무위탁 규율체계를 통합 및 일원화할지, 업무위탁 규정상 본질적 업무에 대해 위탁을 허용할지 등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국장은 이에 대해 “업무위탁규정은 상위법상 명확한 위임근거가 없어 법적 구속력이 불명확하고 본질적 업무에 대한 위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 등의 업무위탁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선방안을 검토 및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미 자본시장법에서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하곤 본질적 업무에 대한 위탁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산분리 완화와 업무위탁 제도 개선과 관련 금융권과 핀테크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내년 초 금융규제혁신회의에 구체적인 방안을 상정·심의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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