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부자는 정의로운가? 분배조차 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경제사조는 부자가 더 부자가 되면, 세상이 풍요로워진다는 신앙적 믿음을 퍼트려왔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세금도 적게 걷고, 복지도 적게 하는 국가였는데, 그 돈으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경제성장률 하락 시기에 고소득자를 위한 조세지출을 늘려왔으며, 동시에 대기업과 자산가들을 위한 감세를 추진했다. 그 결과 빈익빈부익부(소득분배지표)는 더욱 악화되고, 나라 적자는 세금수입 펑크를 타고 솟구쳤다. 공공지출 수준도 후회했다. 국가가 몰락할 때면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장면이 있다. 성장률이 구조적으로 하락하면, 기득권층은 나라의 부를 더욱 빨아먹고, 가난해진 민중은 고통받다가 끝내 국가가 망한다. 한국은 그리고 구조적인 성장률 하락구간에 들어섰다. 이대로 2000~2010년생이 노인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폭탄이 터질 것이다.
![우리는 대비해야 하는 건, 이들이 노인이 됐을 때의 미래다. [사진=연합뉴스]](http://www.tfmedia.co.kr/data/photos/20250416/art_17447880003686_f5f45c.jpg)
▲ 우리는 대비해야 하는 건, 이들이 노인이 됐을 때의 미래다. [사진=연합뉴스]
◇ 4. 한국의 복지지출은 중남미 수준
재정적자 관련 정부가 애써 변명할 거리가 하나 있긴 하다. 조세 수입 감소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건장한 사람의 근육이 2㎏ 빠지는 것과 같은 키의 호리호리한 사람의 근육이 3㎏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2022년에 한국정부의 세금 체력은 GDP의 32.0%지만, 2023년에 28.9%로 –3.1%나 근육이 빠졌다. 기재부 추산에 따르면 2024년엔 26.8%로 떨어진다.
한국 명목 GDP가 2400~2500조원 되는 나라인데, 2023년부터 2년간 국가재정수준이 얼마나 떨어졌냐면. 128조원 정도가 날아갔다.
저 중에서 한국보다 조세체력이 약한 나라가 딱 하나 있는데, 미국이다.
워렌 버핏의 말에 따르면, 청소부가 백만장자보다 더 높은 실효세율을 적용받는 나라가 미국이긴 한데, 한국이 미국보다 복지가 괜찮은 나라냐고 묻는다면, 그건 결코 아니다.

미국은 건강‧의료와 사회보장 영역을 합쳐서 GDP의 22.4% 정도를 쓰는 나라인데, 미국은 복지 안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출 수준이 한국의 1.5배다.
저 중에서 한국과 인구‧경제규모가 가장 비슷한 나라가 스페인인데, 스페인은 건강‧의료와 사회복지 합쳐서 한국의 약 두 배를 쓴다(GDP의 27.9%).
그나마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를 찾으려면, 중남미 국가에서 찾아야 하는데 한국과 콜롬비아는 경제규모가 다섯 배 차이가 난다. 저 표에 붙이진 않았지만, 동유럽 국가보다 복지지출 수준이 낮은 게 한국이다.
한국의 전체 공공사회지출 수준은 2013~2017년까지 GDP의 8~9% 수준이었으나 2018년 10.2%, 2019년 11.4%, 2020년 14.8%, 2021년 15.2% 그리고 2022년 16.2%로 크게 상승했다.
이 수치는 현 정부가 예산을 짜기 시작한 2023년 15.4%로 크게 하락했으며, 2024년 15.3%로 주저앉았다.
2020년 코로나 효과로 상승한 측면이 있지만, 23~32%까지 쓰는 다른 주요국과 달리 중남미 수준의 저조한 복지지출 수준을 가진 한국에서는 떨어뜨리면 안 되는 숫자였다.
◇ 5. 동방예의지국? 한국은 노인‧약자의 연옥
사회보장 세부 내역을 보면 상황은 더 씁쓸하다.

한국은 낮은 복지지출 수준과 더불어 노인이나 장애 등 약자에게 가혹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한국에 노인이 적어서 노후지출이 적냐면 그건 아니다.

한국은 아직 위의 나라들보다 젊기는 하지만, 한국보다 젊은 호주보다도 노후 관련 지출이 월등히 적고, 장애 관련해선 3배 이상 차이 난다.
사실 한국이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할 나라는 경제규모‧인구가 비슷한 스페인인데, 표 4에서 보듯이 노후는 3배, 유족은 6배, 장애‧산재는 3배, 보건은 1.5배 차이 난다. 그 결과가 아래 표다.

주요 유럽 국가들의 경우 근로연령까지는 상대적 빈곤율을 10~13% 수준에서 관리하고, 은퇴연령부터는 근로연령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10~14%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보인다. 시장주의를 추종하는 호주, 미국, 일본도 은퇴연령 빈곤율을 20% 초반에서 잡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멕시코나 성장 중인 동유럽권, 튀르키예도 의외로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높지 않으나, 에스토니아만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에스토니아는 IT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는 나라다.
다만, 에스토니아는 한국보다 못하다고 하기까지는 어렵다. 에스토니아는 GDP의 17%를 공공사회지출로 쓰고, 노령 부문에서 우리의 두 배를 쓰는 나라다. 한국은 GDP의 15% 정도를 쓰는 나라다. 젊어도 늙어도 한국인은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
이 결과, 지금 한국인의 현재는 이렇다.
보건복지부의 202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1인 고령가구는 2023년 기준 전체의 37.8%고, 1인 고령가구의 18.7%는 주변 도움조차 받을 수 없으며, 32.8%가 일해야 먹고 산다. 노인 40%가 빈곤층이다.
일각에선 근로연령 인구를 위해 연금 등 노인 보장이 없어지거나 적어도 늘리지 않길 원한다.
그렇게 하면 노후 관련 지출이 줄거나 억제되고, 사회는 개인의 생존은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부자들 역시 그 부에 걸맞은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가장 심각하게 우려되는 건 20~40대의 낮은 혼인율인데, 앞으로 1인 고령가구 비중은 심각하게 늘어날 것이다. 외로움과 빈곤이 OECD 1위 한국의 노인 자살률을 얼마나 올릴지 상상되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http://www.tfmedia.co.kr/data/photos/20250416/art_1744789000496_921d32.jpg)
▲ [사진=연합뉴스]
◇ 6. 각자도생의 현재, 2000~2010년생들의 미래
이번 정부 정책에는 두 가지 나쁜 측면이 있었다. 복지‧공공지출의 뿌리인 조세와 재정 양쪽 주저앉혔고, 복지‧공공지출 수준도 낮추었다. 그리도 부자들에게 거액의 세금지원을 뿌렸다.
부유층과 부유층을 지향하는 이들은 항상 ‘현재’를 원한다.
조세 특성상 감세 혜택은 부유층이 더 받을 수 밖에 없다. 낸 세금이 있어야 감세를 받는데, 중위~저소득자는 소득이 적어 혜택받을 수 있는 폭이 아주 적다.
그래서 부유층들은 그냥 이대로 살든지 아니면 나아가 우리에 대해 감세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세금부담을 추가로 지기 싫다. 부유층에게 있어 복지는, 복지를 늘리지 않는 것이다. 복지를 늘리지 않으면 증세할 일도 없다.
현 정부는 그 요구를 충실히 수행했다.
조만간 새 정부로 바뀌겠지만, 한국에는 다른 선택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대로 2000년생과 2010년생들이 노인이 되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앞서 소개한 조세‧재정‧공공지출 등 지표들이 그대로 유지될 때의 미래다.
인구 구성비의 약 40~50%가 노인이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축소기에 들어간다(골드막삭스, The Path of the 2075).
2070년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빈곤인구가 된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쉽지는 않다.
언론과 기업, 지식인‧중도층은 조세수입과 복지지출을 늘리려 한 정부를 부모 원수 만난 것처럼 물어 뜯었다.
우리는 그 장단에 맞춰, 소수를 위한 선택을 내렸었다.
이제 시간이 없다.
이번 기획기사의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20년도 전에 수많은 학자들이 우려했던 내용이다.
시간은 어영부영 2025년으로 넘어왔고. 2차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1974년생)가 60세 은퇴자가 되는 2035년까지 고작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
이 10년은 그 이후 그 모든 세대의 미래를 결정할 10년이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다수를 위한 정치를 원한다면,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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